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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광개토대왕비 가짜일 가능성은…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3-02-06 조회수 : 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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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광개토대왕비 가짜일 가능성은…" 

[중앙일보] 고대 중국어 전문가 문성재씨 주장

문성재 박사“새로 출토된 고구려 비석은 위각(僞刻)일 가능성이 크다.”

 ‘제2의 광개토대왕비’로 추정됐던 고구려비에 대해 고대 중국어 학자 문성재(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박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고구려를 한나라의 지방정권으로 조작하는 증거로 만들어냈을 개연성이 크다고 했다. 비문 표현과 내용이 기존의 광개토대왕비와 비교해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주장이다.

 ◆‘중국 문물보’ 분석=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이 내는 ‘중국 문물보’ 1월 4일자에 고구려 비석 발견 기사가 실렸다. 문 박사는 ‘문물보’ 내용만 분석해도 비석의 실체와 그들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문물보’에서 이번 고구려비의 양식을 ‘규형비(圭形碑)’라고 규정했다. ‘규형비’는 동한(東漢=후한)시대 시작됐으며 ‘규(圭)’는 다섯 가지 상서로움의 하나라는 설명을 단 후 『설문해자』(說文解字·고대 한자어 사전)를 인용해 “규(圭)는 서옥(瑞玉·상서로운 옥)이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각을 이룬다. 이 규를 가지고 제후에 봉한다”고 적어 놓았다. 고구려가 한나라의 제후국(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를 이 비석을 통해 우회적으로 주입하는 셈이다. [중앙일보 1월 17일자 2면, 31일자 23면]

 이런 경향은 ‘문물보’의 결론에서 재확인된다. “새로 발견된 고구려비는 한자 예서체다. 이는 고구려가 한자 예서체를 정부 공식 서체로 사용해 정책과 외교관계 등을 발포했음을 알려준다”고 했다. 또 “비석의 형식은 동한 이래 상용했던 규형(圭形)으로, 고구려가 중원 문화와 연계됐음을 반영한다”고 확대 해석했다. 고구려에 대한 한나라의 문화적 지배를 은연중 부각시키는 것이다

 ◆빈약한 내용, 세련된 문체=반듯한 예서체를 구사하고 있고 또 고구려 문장으로 보기엔 너무 매끄러운 한문으로 일관한 점도 의문이다. 광개토대왕비에는 ‘忽本(홀본)’ ‘殘國(잔국)’ ‘奴客(노객)’ ‘寐錦(매금)’ 등 알타이어나 고구려어의 특색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어휘가 군데군데 나온다. 광개토대왕비는 어투도 다소 생경해 중간중간 막히거나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온 수묘(守墓) 부분만 이 비석에 중복해 써놓은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고구려 내정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은 둘째 치고 비석을 세운 주체에 대한 헌사조차 없다.

 광개토대왕비는 명백한 왕릉 비석임에도 자연에서 채취한 거대한 원석을 거의 그대로 썼다. 또 전서·해서·예서 등 여러 서체가 섞여 있다. 이번 비석은 연호(烟戶), 즉 능지기의 거주지 인근에 세웠음에도 오히려 석질과 글꼴에 더 많은 신경을 쓴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5세기 때 비석에 6세기 때 쓰인 표현=이 비석엔 ‘천도자승(天道自承)’이란 표현이 나온다.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중국 초기 도교(道敎)의 관용적 표현이다. 중국 도교가 고구려 말기에 수용된 점을 감안하면 6∼7세기 표현이 5세기에 튀어나온 격이다. 고구려의 도교 수용은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보다 한참 후인 보장왕 때로 알려져 있다.

 문 박사는 “이 비석이 진품일 경우 도교의 고구려 전래는 고구려 말기가 아니라 중기라는 말이 되고, 이 비석이 위조일 경우엔 고구려가 한나라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비석을 고구려 스스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비석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함에도 뒷면만 완전히 훼손된 점도 이상하다고 했다. 한국고대사학회 연구이사 윤용구 박사는 “고대 유물의 진위는 한 번은 반드시 검토돼야 하는 문제 ” 라고 말했다.

 ‘문물보’에 따르면 이 비석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지난해 7월 이 지역 주민 마사오빈(馬紹彬)에 의해 발견됐다. 중국 측은 이 비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문 박사는 "이 비석은 획기적인 발견이 아니라 ‘제2의 동북공정’일 가능성이 있다”며 “위조가 아니라면 당당하게 공개하고 외국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 옳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중국 난징(南京)대와 2002년 서울대에서 고대 중국 희곡과 초기 백화 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 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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