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
['교과서 전쟁' 현장에 가다④] 노히라 신사쿠 '피스보트'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1-04-11 조회수 : 2536
파일첨부 :

▲ ▲ 한국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과 수요집회를 벌이는 '피스보트' 회원들. ⓒ연합뉴스 

"다케시마는 일본 땅" = "일본 식민 지배는 옳았다"

['교과서 전쟁' 현장에 가다④] 노히라 신사쿠 '피스보트' 공동대표 인터뷰
기사입력 2011-03-16 오전 8:02:04 

   
지난 3일 찾아간 도쿄 다카다노바바의 '피스보트' 사무실. 상근활동가 몇 명만 모여 있는 보통의 시민단체 사무실과 달리, 서른 명 남짓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이 단체의 노히라 신사쿠 공동대표는 "이 정도면 사람이 적은 편"이라며 "저녁 땐 사람이 너무 많아 산소가 부족할 지경"이라고 웃었다.

피스보트(Peace Boat). 말 그대로 '평화를 실어 나르는 배'를 의미한다. 1983년 문을 연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일본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작은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2차 교과서 파동' 직후인 1983년, 일본의 대학생 200명이 "일본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자"며 첫 닻을 올린 것. 그들의 '역사왜곡 교과서 거부 선언'이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는 국제평화·연대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이후로도 피스보트는 베트남에선 고엽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고, 한국에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수요 집회'에 참여하는 식으로 항해를 통한 '평화 운동'을 이어나갔다. 배 안에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원폭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특강도 열린다. 그런 식으로 26년 동안 세계 180여 개 항구에 정박했고, 현재까지 배에 오른 사람만 4만여 명에 이른다.

1982년 '2차 파동' 이후 또 한 번의 '교과서 전쟁'이 꿈틀거리고 있는 일본.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발표가 4월 초로 바짝 다가온 가운데, 피스보트의 노히라 신사쿠 대표를 만나 일본 현지의 상황을 들어봤다. <편집자>

'평화의 항해' 떠나는 사람들

프레시안 : 피스보트는 평화운동단체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 교과서 문제와도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노히라 신사쿠 : 1982년, 문부과학성이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바꿔 쓰게 하는 이른바 '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다.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면서 외교 문제로까지 불거졌는데, 그 때 당시 대학생들이 "일본 식민지배의 피해자 목소리를 직접 듣자"고 결성된 게 지금의 피스보트다.

그 때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현대사 교육이 거의 없었고, 전쟁 경험도 없는 세대였기 때문에 모르는 게 많았다. 정부의 역사왜곡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항해를 하며 역사의 진상을 밝히자는 취지였다.

대학생 200명이 모여서 첫 출항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평화 항해'가 이제 72회를 맞았고, 배에 탑승한 사람도 4만 명 정도 된다.

프레시안 : 보트를 타고 항해하며 진행하는 평화 운동. 신선한 방식인 것 같다.

노히라 신사쿠 :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에서 학생 운동이 굉장히 강하게 일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정부 정책을 바꾸지 못했고, 분열을 거듭했다. 저 역시 1980년대 대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학생운동엔 관여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일종의 혐오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스보트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일종의 '대안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 국가를 항해하면서 피해자들의 증언도 듣지만, 배 안에서 댄스파티나 운동회를 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세계여행에 관심이 있어 피스보트에 오른 사람도, 항해를 하다 보면 일본 식민지배의 참상이나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첫 출항은 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시작됐지만, 어느 정도 새로운 시민운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당시 일본 사회에 존재했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요즘엔 어떤 활동을 하나?

노히라 신사쿠 : 요즘엔 '100엔 모금'으로 캄보디아의 지뢰를 없애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기부자들이 100엔을 보내면, 반경 1m 지역의 지뢰를 없애 위험한 지뢰밭 대신 축구장을 만들 수 있다. 이 모금에 동참한 사람들이 피스보트를 타고 캄보디아에 가서, 자신들이 모금을 해 지은 축구장에서 캄보디아 아이들과 축구를 한다. 그렇게 '무력한 세대'라고 불리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피스보트의 역할이다.

한국의 386세대는 정치적 민주화라는 승리의 경험이 있지만, 우리에겐 그런 경험이 없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각각의 사람들이 작고 소중한 실천을 할 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日 교과서에 대한 한국의 반발이 '내정간섭'이라고? 억지 논리다"

프레시안 : 사실 일본에서 자국의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노히라 신사쿠 : 교과서 관련한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하고나면 협박 전화나 협박 이메일이 꼭 온다. 당신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웃음)

일본인들 사이에 가장 일반적으로 퍼진 논리가 일본 교과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내정간섭'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역사 교육을 하겠다는데 웬 간섭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억지 주장이다.

조금 다른 예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전투기를 전시하겠다고 했을 때 일본 정부가 강하게 비판했다. 많은 일본인이 원폭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전시하겠다고 하니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은 여기에 반발하면서 식민지배의 피해를 겪은 한국의 반발을 '내정 간섭'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프레시안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교과서가 매번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새역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사회에서 군국주의와 식민지배에 대한 일종의 '향수'가 존재하는 건가. 아니면 단순한 극우세력의 '도발'인 건가.

노히라 신사쿠 : 제국주의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사람은 아주 일부일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우경화나 군국주의의 흐름에 대해 일본인들이 자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과서나 영토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한국과 중국이 민족주의, 반일 감정이 강한 나라여서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를 단순한 '극우세력의 도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사람은 일부여도, 그 주장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같은 사람들은 외국인 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한일병합은 한국이 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하는데도 선거에 나오면 언제나 압승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무자각이 가장 큰 문제다.

"간 총리가 과거사 반성? 큰 기대는 금물" 

프레시안 : 새역모 같은 일본 극우세력이 원하는 게 뭔가. 교과서는 수단 아닌가.

노히라 신사쿠 : 이들의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대를 보유한 '보통국가'로 돌아가는, 최종적으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이다. 교과서는 이런 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론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강한 사람들인데, 새역모도 원래 '반미' 성향이었다가 최근에서야 '친미'로 돌아섰다. 그들은 미국에 대한 열등감을 한국과 중국에 대한 우월감으로 해소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그 우월감이 깨지는 일이자 곧 '자학사관'이 된다.

프레시안 :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이던 지난해엔 간 나오토 총리가 일종의 사과 발언도 했었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일정 정도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발언이 퍼포먼스가 아닌 이상에야, 이번 교과서 검정에서 진실성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히라 신사쿠 :같은 민주당이라고 해도 하토야마 정권과 간 나오토 정권은 굉장히 다르다. 하토야마 때는 일조(일본-북한) 국교 정상화가 논의되기도 했었고, 일미안보조약에 관해서도 대등한 외교를 추구했었다. 이건 민주당 내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축이었다.

간 나오토의 경우 다르다. 종전의 자민당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과서 검정에서 (새역모 교과서를 탈락시키는) 정치적 결단력을 보일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과서를 비롯해 독도 문제나 기타 영토 문제에 있어서도, 지지율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독도, '영토문제'가 아닌 '역사문제'로 접근해야"

프레시안 : 이번 교과서 검정이 한국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독도' 문제가 기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선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독도 관련 영토 교육을 강화시킨다는 지침도 나왔고,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기술된다면 반일 감정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도로 촉발된 '영토 민족주의'는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노히라 신사쿠 : 불행한 일이고, 불행의 악순환이다. 그런 면에서 교과서에 독도 문제가 기술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일본의 교과서 회사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쓰진 못하겠지만, 일단은 독도 기술을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다.

사실 독도는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배를 둘러싼 '역사문제'로 봐야한다. 독도는 일본이 과거 자국의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의 진보진영조차 독도 문제를 단순한 '영토 분쟁' 쯤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내에서도 식민지배 과정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충실히 이뤄져야 한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게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내야 한다. 


/선명수 기자(=도쿄) 필자의 다른 기사 
이전글 ['교과서 전쟁' 현장에 가다⑤] '역사왜곡 교과서 반대' 韓日 공동심포지엄
다음글 日 독도문제 왜곡 정책토론회 개최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