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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배 초기의 역사교육 정책의 실상은 무엇인가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0-12-02 조회수 : 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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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9일 독립기념관에서 개최된 경술국치100년 학술대회 종합토론 모습 

일제 식민지배 초기의 역사교육 정책의 실상은 무엇인가 
독립기념관 경술국치 100년 학술대회 

2010년 11월 26일 (금) 13:14:45 김민경 희망기자 pr@kookhaknews.com 


독립기념관(충남 천안)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 11월 19일 기념관내 밝은누리관에서 “일제 식민지배 초기의 역사교육정책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일본 식민지교육사연구회의 일본인 중견연구자 2명을 초빙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했다. 학술대회는 김주현 독립기념관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총 4주제에 걸쳐 진행되었다. 

제1주제는 ‘한국통감부 교육정책과 역사교육’으로 독립기념관 교육문화부 김경미 박사가 발표하고 연세대학교 장신 교수가 토론하였다. 을사조약이후 통감부에서 편찬한 『국어독본(國語讀本)』과『일어독본(日語讀本)』에 나타난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적 이미지와 실상을 밝히고 그 궁극적 목표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김 박사는 “기록 속의 한국은 ‘독자적인 역사 기원의 불문명한 나라, 문약한 나라, 독립심이 없는 나라’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면『국어독본(國語讀本)』의 단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한국 역사의 기원으로 단군 조선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역사?사실은 불분명 한 것으로 처리했다. 

한편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는 우호적으로 그려졌다. 당시 우리나라는 문학과 공예가 일찍 발달했고 일본은 오히려 유치하여, 우리나라의 학자와 장공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를 개발해 주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왕인(王仁)을 묘사하였다. 일본 황제는 백제 제일 학자인 왕인을 예빙(禮聘,예를 갖추어 초빙함)하였고, 이로써 일본의 한학이 시작되었다. 왕인은 일본에 귀화하여 그 자손은 대대로 사관(史官)이 되었다. 백제는 이와 같이 일본과 문화적으로 우호적인 관계에서 일본에 학문과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제 2주제는 ‘일제 강제병합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명화 박사가 발표하고 충북대학교 박걸순 교수가 토론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고 유포한 병합의 논리를 통해 강제 병합의 이데올로기를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 용어사용과 의미에 혼돈을 일으키고 있는 '합방', '합병', 그리고 '병합'의 차이를 알아보았다. 이 박사는 “합방은 대등한 위치에서의 연방을 의미하고, 병합은 한국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해 사용한 의도적인 유화적 표현이라고 했다. 일방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받는 병탄을 당하면서도 합방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제3주제는 ‘1910년대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식민지 역사교육’으로 일본인 학자 사노 미치오 교수(고도모 교이쿠 호젠 대학교)가 발표하고 배재대학교 강명숙 교수가 토론했다. 사노 교수는 한국어를 능통하여 통역 없이 직접 발표를 하였다. 

미치오 교수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보통학교 국어독본의 원본을 프리젠테이션으로 제시했다. 국치의 절망 속에서 우리 조상이 직접 접했던 자료라 참석자들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집중했다. 

제1주제에서 언급하였던 왕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제2주제에서 다루었던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련 내용도 접할 수 있었다. 국어독본 4권에는 역사의 기원으로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제4주제에서는 와타나베 소스케 교수(사이타마 고교 대학교)가 ‘1910년 전후 일본의 역사교육’중 조선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표하고 경상대학교 권오현 교수가 토론을 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한국병합 당시 이를 바라보는 일본 지식인들의 동향과 일본역사교육 내용을 소개했다. 한국병합에 대한 일본 지식인의 평가를 소개했는데 그중 문학박사 이노우에 데쓰지로는 1910년 <국민신문>에서 “한국 병합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뒤진 감이 있다. 좀 더 빨랐어도 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종국에 목적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실로 유쾌하다. 그리고 한국을 병합했다는 것은 대만 또는 사할린의 절반을 얻은 것보다 훨씬 중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륙의 일부를 얻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반면 제국주의 비판의 선봉자인 사회주의자들「한국병합」에 반대해 또 다른 시각도 존재하였음을 발표했다. 

끝으로 종합토론시간에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상기 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토론 중 박걸순 교수는 “제4주제에서 언급된 일본 국정교과서 편찬위원 ‘기타 사다키?rsquo;는 일본 내에서 한국사 왜곡의 틀을 만든 사람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일본의 한국 왜곡사가 처음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실마리를 볼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와타나베 소스케 교수는 “여러 가지 배경을 고려하여 중요한 지적”이라고만 답할 뿐 직접적인 평가를 피했다. 그러나 그는 답변 가운데ꡒ일본인은 스스로‘천손’이라는 의식이 강하다.ꡓ고 언급했다. 

100년 전 일본은 한국에 총부리를 겨눠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처철한 고통을 남겨주었는데 100년 후 학술대회에서 평화롭게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는 장면이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100년이 지나도 쉽게 누그러질 문제는 아니나 와타나베 교수가 말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은 천손문화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아가 좀더 의식을 확장시켜보면 우리의 뿌리는 지구로서. 지구인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우리 모두는 하나라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건국이념인 홍익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답게 20세기 과거 역사가 주는 교훈은 결코 잊지 말되, 21세기 지구촌 시대 한․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여 상생하는 성숙한 국제관계로 창조해나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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