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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황·제 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치명적인 독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0-11-28 조회수 : 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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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황·제 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치명적인 독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 신화 

김선자 지음 | 책세상 | 542쪽 | 


중국 허난성(河南省) 정저우시(鄭州市) 근처 황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거대한 조형물의 낙성식이 열렸다. 1억2000만 위안(약 148억원)을 들여 완공한 석상과 단(壇), 광장이 그곳에 있다. 그 규모는 실로 무지막지하다. 산 하나를 통째로 자른 뒤 화강암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쌓아 올린 이 석상의 높이는 무려 106m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보다 8m나 더 높다.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를 말하는 염황이제상(炎黃二帝像)이다. 요즘 중국인들이 관용구처럼 ‘우리 민족은 염황의 자손이다’고 말할 때의 그 ‘염황’이다.

고유명사인 황제(黃帝)는 일반명사인 황제(皇帝·Emperor)와 다르다.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에서 ‘오제’의 첫 인물에 해당하는 황제는 지금 중국에서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역사적 인물로 재창조되고 있다. ‘삼황’ 중의 한 명인 염제는 황제와 형제인 것처럼 함께 짝을 이룬다. 이곳뿐이 아니다. 황제의 고향으로 알려진 허난성 신정(新鄭)의 염황이제상, 황제의 무덤이 있다는 산시성(陝西省) 황링(黃陵)의 제사대전, 황제가 대통일을 이뤘다는 허베이성(河北省) 줘루(탁록)의 중화삼조당…. 중국 곳곳에 새로운 기념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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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허난성 정저우시 근처 황하 강변에 세운 염제와 황제의 석상. 높이 106m로, 머리 위에 서 있는 사람(점선 안)이 점처럼 작게 보인다. /책세상 제공


    중국 신화 전공자인 저자는 3년 전 쓴 ‘중국 신화 이야기’(아카넷)에서 중국이 2003년부터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중화문명 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탐원공정’이란 신화와 전설의 영역이었던 삼황오제까지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번 책에서는 고대로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문헌을 살피고 중국 각지를 답사하며 ‘황제’라는 상상의 시조(始祖)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황제’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진 ‘시경(詩經)’이나 ‘상서(尙書)’ 같은 책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른바 ‘황제의 시대’로부터 수천 년이나 흐른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저술할 때 맨 앞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 매우 불확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황제’가 역사 인물인 것처럼 기록했다. 그로부터 ‘황제’는 전쟁을 통해 천하를 통일하고 불·옷·배·문자 등 문명의 여러 상징들을 혼자서 발명해 낸 한족(漢族)의 시조인 것처럼 막연히 생각돼 왔다.

    근대에 들어와 서구 열강의 힘이 중국을 압도하자 ‘황제’는 양계초(梁啓超)·장태염(章太炎) 같은 지식인들에 의해 새로운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되살아난다. ‘황제’라는 하나의 시조를 가진 중국인들이 대단결을 이뤄내 열강의 힘을 몰아내고 새로운 대국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고힐강으로 대표되는 의고파(疑古派) 학자들은 시대와는 반대로 우(禹·하나라의 시조)→요순(堯舜)→황제→삼황의 순서대로 가짜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고증했다. 서주(西周) 공화 원년인 기원전 841년 이전에는 중국사의 연표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 됐다.

    그러나 경제적 성장을 통해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던 1990년대 중반, 중국은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국가’라는 위상까지 거머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 고고학적 발굴들을 신화와 꿰맞춰 ‘역사’로 만들고, 이를 통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의한 새로운 ‘중국 민족’의 단결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1996년 시작돼 2000년에 끝난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斷代工程)’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고대 하나라, 은나라(상나라), 주나라 초기까지의 역사적 연대를 확정하겠다는 시도였다. 미리 정해진 ‘결론’에 맞춰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나라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2070년’으로 못박음으로써 중국사의 기원은 1200년 이상 끌어올려졌다.

    그 다음 단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화문명 탐원공정’이다. 하나라 이전의 삼황오제 시대까지 역사로 만들고 ‘중화문명’의 시작을 5000년~1만년 전으로까지 끌어올리면 중국의 56개 민족은 ‘염황’의 자손으로서 모두 하나가 된다는 시나리오였다. 중국 민족의 연원지로 알려진 허난성의 덩펑(登封), 산시성(山西省)의 샹펀(襄汾) 등이 샅샅이 파헤쳐졌다. 샹펀 타오쓰(陶寺)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유적지는 별다른 근거 없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4100년 전의 천문 관측대’로 둔갑했다.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은 이 같은 거대한 밑그림의 일부였다. 정저우 ‘염황이제상’의 아래쪽에는 거대한 돌판에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휘장과 소개말을 써 놓았는데, 그 속에는 장구를 상징물로 하는 한 민족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족’이다. 한민족 역시 ‘거대 중국민족’의 시조인 염제와 황제의 후손이라는 얘기다. 일부 학자들은 황제의 자손으로 오제 중의 한 명인 전욱 고양씨(高陽氏)의 후예가 고구려라고 우기고 있다.

    저자는 풍요롭고 열린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신화가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문명의 ‘차이’보다는 ‘기원’에만 집착하고 신화를 역사와 뒤섞어버릴 때 그것은 공격적 민족주의나 패권주의로 변신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의 평화적인 공존은 환상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중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더 읽을 만한 책 



    중화주의와‘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대한 면밀한 조망으로는 윤휘탁의‘신중화주의?중화민족 대가정 만들기와 한반도’(푸른역사)를 들 수 있다. 동북공정을 신중화주의라는 넓은 관점에서 비판한 책으로는 윤명철의‘역사전쟁’(안그라픽스)이 있다. 유용태의‘환호 속의 경종’(휴머니스트)은 중화주의를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 인식들의 문제에 대해 쓴 책이다. 송호정의‘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는 신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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