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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고조선의 심장부 가다-제1부 역사칼럼-마케도니아와 몽골, 그리고 대한민국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8-11-06 조회수 : 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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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의 고조선의 자취인 
우리의 뿌리를 찾는 탐방기 ‘고조선 심장부를 가다’를 6회에 걸쳐 실을 예정이다. 

-제1부-       
============마케도니아와 몽골, 그리고 대한민국===========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사이에서 일고 있는 ‘원조(元祖) 마케도니아’ 논쟁은 독자노선을 걸어온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유고연방)의 붕괴를 계기로 일어났다.
1991년 유고연방을 구성해온 6개 공화국 중에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가 독립정부를 출범한 이듬해 헤르체고비나도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독립은 ‘선언’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주변국을 비롯해 세계가 인정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케도니아는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유럽 양대 기구인 EU(유럽공동체)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마케도니아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 이름으로 가입을 추진했으나 그리스가 강력히 반대했다.
그리스는 13개 주로 북쪽 국경선에 ‘서부마케도니아’와 ‘중부마케도니아’ 그리고 ‘동부마케도니아’라는 3개 주가 있으니 ‘마케도니아’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리스의 모태는 도시국가 아테네인데,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패망했고 스파르타는 테베에 병합됐고 테베는 마케도니아에 의해 무너졌다. 
마케도니아는 지금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를 지나 중동, 아프리카의 이집트 지역까지 진출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바로 알렉산더 대왕(서기전 356~ 323)이다. 아테네를 그리스의 모태로 본다면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를 그리스의 일부로 보고, 그리스가 알렉산더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지배했다는 믿음을 반영해 영토 북부에 있는 세 개 주에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이라는 국명으로 유엔에 가입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는 별개의 국가로서 그리스를 포함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배했다고 보며 자국 헌법 제3조에 ‘마케도니아의 영토는 절대로 쪼개져 있을 수 없고 절대로 범할 수 없다(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Macedonia is indivisible and inviolable)’는 조항을 넣었다.

이 조항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케도니아란 이름을 사용하는 그리스 북부의 3개 주를 회복해 통일하겠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과거 알렉산더 대왕이 채택한 문양을 토대로 붉은 바탕 위에 16개의 금빛(태양) 줄기를 쏘는 국기를 제작했다. 
이에 그리스는 “알렉산더는 그리스의 영웅이므로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더 대왕과 관계된 문양을 사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리스의 거센 반발로 마케도니아는 금빛 줄기를 8개로 줄인 새로운 국기를 제작해(1995년 10월5일), 유엔 청사에 게양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영토를 거론한 헌법 조항은 끝내 개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륙국인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중부마케도니아 주에 있는 살로니카 항구를 통해 농산물과 철광을 수출하고 원유를 수입해왔다. 
1994년 2월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살로니카 항구 사용금지 조치를 취했다. 마케도니아는 냉동 창고가 부족한 탓에 수출할 양고기와 포도주가 썩어 대량 폐기하고 원유를 도입하지 못해 경제가 파탄 나는 위기를 맞았다. 
그리스의 항구 봉쇄조치를 EU 재판소에 제소(1994년 5월)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항구 봉쇄를 해제할 수밖에 없게 된 그리스는 국제사회를 향해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사이의 국경선을 보장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1995년 9월14일 마케도니아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제재 해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2007년 마케도니아가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NATO와 EU 가입을 추진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재연되고 마케도니아가 새로 만드는 국제공항을 ‘알렉산더 공항’으로 명명한다고 하자, 그리스는 “동부마케도니아 및 트라키아 주의 카발라에 ‘알렉산더 대왕(Mega Alexandros) 국제공항’이 있다”며, 알렉산더란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마케도니아도 “그리스와의 양자 관계에서는 마케도니아을 하라는 국명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제의했으나, 그리스는 이를 거부했다. 
국제사회는 두 나라의 갈등을 마케도니아 후예 다툼이라며 ‘원조 마케도니아’ 논쟁으로 명명했다.
마케도니아는 경상북도보다 약간 넓은 면적(2만5700㎢)에 210만의 인구를 가진 약소국이다. 
반면 그리스는 한국의 1.5배인 13만㎢의 면적에 1070만 인구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마케도니아는 ‘원조 마케도니아’임을 자부함으로써 대국인 그리스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원조 마케도니아’ 갈등과 비슷한 현상으로 남의 나라 이름을 자국의 지방 이름으로 사용하는 예가 중국과 몽골 사이에도 나타난다. 
중국은 4개 직할시(북경 천진 상해 중경)와 2개 특별행정구(홍콩, 마카오), 22개 성(대만성 제외)과 5개 자치구로 구성돼 있다.
5개 자치구 가운데 하나가 내몽고자치구다. 내몽고자치구는 위구르인이 많이 사는 신강(新疆)자치구(160만㎢), 티베트인이 많이 사는 서장(西藏)자치구(123만㎢) 다음으로 면적(118만㎢)이 한국(9.9만㎢)의 12배이다. 
내몽고자치구 북쪽에 몽골인들이 세운 몽골공화국(156만㎢)이 있다.

중국인은 독립 몽골을 ‘외몽고’로 부른다. 몽골이 ‘중국 몽골(내몽고)’과 ‘독립 몽골(외몽고)’로 나뉜 것은, 만주족이 중국(明나라)을 정복해 청(淸)나라를 세울 때(1644년)부터다. 만주족이 명나라를 정복하기 전 몽골족을 복속시키고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눠 통치한 계기가 몽골이 쪼개진 연유다.

몽골의 분리는 부족장들이 두 패로 갈린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갈라설 때의 충돌로 지금도 양쪽 몽골인들은 합칠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두 개의 몽골이 통일되면 그 면적은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계에서 아홉째로 영토가 넓은 나라가 되는데, 몽골인들은 이를 포기하는 것이다.

마케도니아인들이 알렉산더 시절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대제국을 만들었듯이, 몽골인들도 칭기즈 칸 시절 중국을 넘어 유럽과 서남아까지 진출해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의 위상은 보잘것없다.
그래도 마케도니아인들은 국가의 자존을 지키려 하나, 독립 몽골은 그러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칭기즈 칸의 후예는 알렉산더의 후손보다 못났기 때문인가. 
그런데 우리는 몽골의 어리석음을 바라보고만 있을 처지가 아닌 것 같다. 
한민족도 몽골인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함경북도와 마주한 중국 길림성에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다. 
이를 몽골 사례에 비교하면 그곳은 내몽고, 북한과 한국은 외몽고로, 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조선’이고 북한과 한국은 ‘독립 조선’인 것이다. 
‘독립 조선’인 북한과 한국은 ‘중국 조선’과 하나가 되려 하는가? 
‘독립 몽고’는 하나이지만, ‘독립 조선’은 남북으로 쪼개져 있으니 우리는 몽골보다도 못한 처지가 아닌가?
물론 지금 “간도(間島)를 포함한 만주 땅은 고구려의 무대였고 만주족은 고구려의 지배를 받은 우리 겨레이니, 그들이 살았던 만주는 우리 땅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발언이 된다. 
영토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기보다는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만큼 섣불리 영토 논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뿌리를 찾는 정신적인 싸움마저 포기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중국은 ‘중원(中原)’이라고 하는 황하 중하류에서 일어난 문명이 줄기줄기 이어져 지금의 중국 문명을 이뤘다는 ‘줄기론’을 주장했다. 
그러다 지금은 단일 줄기론을 부인하며 ‘저수지론’을 내놓았다.

저수지는 청탁(淸濁)을 구분하지 않고 물을 받아들인다. 저수지론은 중국을 이루는 광활한 영토 여러 곳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문명이 중국 중심부로 흘러들어와 섞이면서 지금의 중국 문명을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저수지론을 반영한 대표적인 주장이 동북공정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동북공정은 “고조선과 고구려는 지금 중국 땅에서 일어났으니, 이들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지방 왕조 가운데 하나다”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몽골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펼친다. 
몽골인이 중국을 정복해서 세운 원(元)나라는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중국 왕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에 한번 닿기만 하면 모두 중국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중국인의 역사의식이 중국을 대국(大國)으로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털어내기’를 반복해왔다. 이민족과 닿은 역사가 있으면 ‘순수성이 더럽혀졌다’며 배제를 반복하는 외줄기론을 채택함으로써, 한민족은 반도 한구석으로 오그라드는 처지가 되었다.
줄기론이 끼친 해악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단군과 고조선을 설화로 만든 것이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 여러 역사책에 서기전 2333년쯤 단군을 중심으로 한 고대 국가 고조선이 세워졌다고 기술돼 있는데, 강단 사학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역사학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이 고집을 꺾지 않는 주된 이유는 한반도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서기전 2333년쯤 국가를 세운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 역사를 반도 안에서만 찾으면 안 된다. 
반도 안에서만 뿌리를 찾으려는 강단 사학계의 좁은 인식을 ‘반도사관(史觀)’이라고 하는데, 반도사관은 외줄기론과 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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