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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 삼좌점의 청동 고국(古國)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8-09-17 조회수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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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6> 삼좌점의 청동 고국(古國)
서요하 음하강변 석성의 치(稚)<성벽 밖 돌출형 방어시설>, 고구려 것의 원형
빗살·덧띠무늬토기 암각화 적석총 등 성읍 규모 각종 유물
하가점 하층문화 방증 강 따라 큰 세력 존재 우리의 뿌리 닿아



 
  내몽골자치구 츠펑(赤峰)시 인근 삼좌점 유적지에 드러난 석성의 치(雉). 
복기대(맨 오른쪽) 교수가 고구려 석성과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이 곳은 기원전 2000년께 청동기시대 초기 유적이다. 박창희 기자





싱싱한 청동기 유적



내몽골자치구 츠펑(赤峰)시를 벗어나자 붉은 산 하나가 불현듯 펼쳐진다. 홍산(紅山)이란다. 요서지방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홍산문화(기원전 4500∼2500년)가 발원한 곳이다. 중원의 황하문화보다 한발 앞서는 문화 단계다.



"홍산은 나중에 보도록 하고, 삼좌점(三座店)으로 갑니다. 싱싱한 초기 청동기 유적이에요. 고조선과의 연결고리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복기대 교수·46)



츠펑을 벗어난 버스는 내몽골 북서쪽 고원지대를 파고든다. 떨어지는 해를 붙잡아야 한다. 몇차례 길을 물어 40㎞쯤 달려왔을 때, 초두랑진(初頭郞鎭)이 나오고 삼좌점 표지가 나타난다.



서요하의 지류인 음하(陰河)강은 깡깡 말라 있었다. 강변은 댐 공사로 어수선했다. 강 오른쪽에 동자산(洞子山·해발 730m)이 노을에 젖어들고 있다. 서둘러 산등성이를 오른다.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



"타고 넘읍시다!" 동행한 내몽골자치구 오한기박물관의 유해원(劉海元·50) 연구원이 고맙게도 철조망의 틈을 벌려준다. 필요에 따라 공개를 한다는 뜻이겠다. 유 연구원은 츠펑시에서 답사단과 합류했으며, 한족(漢族)이다.



바위 그림이 싱겁게 웃고 있다. 바둑판만한 돌쩌귀에 새겨진 사람 얼굴 모양의 암각화. 왕방울 같은 눈 아래에 꺾쇠 무늬 수염이 그려져 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일까.



4000여 년이란 시공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바위 그림은 마치 삼좌점의 안내자인 양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묘한 조우였다. 이제 막 발굴되어 공개된 이국 땅의 유적은 생경함을 주기 보다 알지 못할 친연성을 느끼게 했다.



"우와…." 진기한 바위 그림을 본 답사단의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주변엔 빗살무늬 및 덧띠무늬 토기 조각들이 널려 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더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졌다.



"어, 저건 석성의 치네!" 누군가 '치'라고 소리치자 답사단이 몰려간다. 치(雉)는 성벽 밖으로 툭 튀어나오게 만든 돌출형 방어시설이다. 복 교수가 궁금증을 풀어준다.



"보시다시피 치가 많습니다. 치는 고구려 석성에 반드시 나타나는 구조물입니다. 이 곳은 하가점 하층문화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늦춰 잡아도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갑니다. 이같은 청동기 유적이 음하강을 따라 30여 개가 있어요. 엄청난 세력이 존재했던 겁니다."







 
  삼좌점의 얼굴 모양 암각화

고구려 치의 원형



삼좌점 유적이 세상에 공개된 건 2년전이다. 지난 2005년 서요하의 지류인 음하강에 댐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되어 2006년 말까지 구제발굴이 이뤄졌다. 발굴 결과는 놀라웠다. 내성과 외성을 갖춘 석성(石城)과 수많은 집터(房址·방지), 뜰담(院墻), 길, 문, 돌로 쌓은 구덩이(石築穴), 돌로 쌓은 창고(石倉), 돌로 쌓은 대(石臺), 돌로 쌓은 무덤(積石塚), 돌함(石函)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성읍'을 방불케했다.



삼좌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서길수(전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경대 교수가 최근 이에 대한 논문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구려 산성 연구의 권위자인 서 교수는 최근 나온 '고구려 연구 31집'에 '하가점 하층문화의 석성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분야의 첫 연구 논문이다. 아직 중국 측에서 발굴보고서조차 제대로 펴내지 않은 석성 유적을 일일이 찾아 GPS(글로벌 위치 결정 시스템)로 위치를 확인하고 사진과 평면도까지 붙여 정리했으니 놀라운 연구 성과다.





 
  삼좌점 덧띠무늬 토기

논문 말미의 '꼬리말'에서 서 교수는 주목되는 학술 고백을 한다. "지금까지 나는 고구려의 치와 옹성이 기원적 형태인 것으로 보았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치와 옹성의 기원이 하가점 하층문화 석성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15년간 고구려 산성을 연구해온 서 교수의 고백은, 고구려 석성의 뿌리가 하가점 하층문화에 있음을 확인시킨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하가점 하층문화의 석성은 서요하의 지류인 음하, 영금하(英金河) 유역에 집중 분포한다. 중국 학계가 파악한 것만 40여 곳이다.



"삼좌점에서 주목할 부분이 치인데, 큰 성에서 15개, 작은 성에서 10개 발굴 되었어요. 이곳의 치들은 평균 간격이 4~5m로 후대의 치보다 짧아요. 고구려 치의 10분의 1 정도죠. 이는 당시 무기의 사정거리와 관계가 있겠지요. 원거리에서 쏠수 있는 활이 발달하지 못하고 창이나 칼로 싸웠음을 말해준다고 봐야죠."(서길수 교수)



삼좌점의 치는 대부분이 말굽꼴(U자형)이다.(고구려의 치는 네모꼴임). 치의 돌벽과 성벽의 돌벽이 서로 맞물리게 하여 빈틈을 없앴고 위로 올라가면서 들여쌓기를 했다. 서 교수는 "하가점 하층문화의 석성에 나타나는 치와 옹성(甕城), 해자(垓字) 등은 모두 기원적인 형태로서 고구려를 거쳐 한반도로 흘러든다"면서 "다만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고구려 석성까지 1500년 남짓한 시간차를 메우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놀라운 과학 기술



삼좌점 유적이 주거지냐, 제사유적이냐, 방어진지냐 하는 것은 뜨거운 관심사다. 어느 경우든, 주목할 부분은 삼좌점 석성 세력의 높은 문화 수준이다. 기원전 2000년께에 돌에 그림을 새기고, 적석총을 만들고 석성을 쌓았다는 것은 고대국가 단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인류학에선 성(城)의 존재 여부를 고대국가 형성의 중요한 요건으로 본다. 돌을 모아 성을 쌓으려면 설계자가 필요하고, 일을 시키는 자, 일을 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지배·피지배 관계가 생기고 계급이 존재했다는 말이다.





 
  삼좌점 빗살무늬 토기

학자들은 이곳의 무수한 집터(房址)를 특히 주목한다. 음하강 유역의 석성에서 336채가 발견됐고, 인근 오한기의 성자산(城子山)에서는 한 성안에 228채의 집터가 무더기로 확인됐다. 청동기 시대에 한 성안에 700~1000명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은 국가 규모의 조직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석성과 치는 당시의 기술력을 엿보게 한다. 공격과 방어를 겸한 치는 고도의 기술이 수반되는 축성술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동국대 윤명철(교양교육원) 교수는 "이곳의 축성술은 중국의 그것과 다르다. 중국은 주로 토성을 쌓거나 만리장성에서 보듯 벽돌쌓기가 많다. 기술적인 면에서 삼좌점의 치가 고구려의 치로 계승된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홑고리 또는 겹고리로 쌓은 원형 집터를 제사유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학자들은 원형의 의미를 중시한다. 원은 하늘, 즉 천제의 후손임을 말해주는 상징이다. 천제단에서 보듯, 원형 제단에서 천제를 지내는 것은 한민족의 고유 풍습이다.



삼좌점의 암각화도 관심 요소다. 암각화의 존재는 그 시대 사람들이 정신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삼좌점에는 윤곽이 흐릿한 마름모꼴 또는 동물 형상의 암각화가 몇 군데 더 있었다. 외성의 동쪽 모퉁이에 새겨진 동물 형상의 그림에 대해 동행한 유 연구원은 "저룡(猪龍)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돼지 모양의 용이란 의미다. 그러나 답사단의 눈엔 오히려 웅룡(熊龍) 즉, 곰 모양의 용으로 보였다.



최근 내몽골 츠펑시 일대의 암각화를 조사하고 돌아온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은 "그곳의 방패형 검파형 암각화는 베일에 싸인 우리나라 암각화의 계통과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암각화의 뿌리가 서요하 상류의 청동기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삼좌점의 주인공은



삼좌점 유적의 주인공을 밝혀줄 뚜렷한 문헌 기록은 없다. 하지만 고고학적 자료들은 그들이 하가점 하층문화인들로서 우리 민족과 연결되고 있음을 전해준다. '삼국유사' 기록에 기대어 접근하면,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울 무렵의 환웅세력을 이와 연관지을 수도 있다. 예맥족의 일파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경성대 한규철(고구려발해학회 회장) 교수는 하가점 하층문화의 원주민을 '전기 숙신(肅愼)'으로 본다. 주목되는 시각이다. "지금까지 숙신하면 흑룡강 중·하류에서 생활한 말갈족의 선조 정도로 알았으나, 전기 숙신의 근거지를 남만주의 요서지역으로 보면 고고학적으로 이들이 신석기 주민이자 하가점 하층문화의 청동기 주민일 개연성이 높아져요. 중국이 주장하는 요하문명권의 뿌리에 숙신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학계 일각에서는 '주신'(Jusin·州愼, 珠愼)이란 토착어가 한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숙신(肅愼)·식신(息愼)·직신(稷愼) 등으로 표기됐기 때문에 '숙신(肅愼)=조선(朝鮮)'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학자들은 이곳 원주민을 상(商)나라 보다 더 윗대의 고왕국일 것으로 이해한다. 요하문명권의 주류는 어디까지나 중원세력이란 얘기다.



논란은 있지만, 삼좌점이 한민족의 뿌리와 관련해 가장 믿을만한 비밀을 감춘 유적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석성과 치, 적석총과 원형 집터, 덧띠무늬토기 등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만에 햇볕을 본 청동 성터. 그곳에 다시 황사가 덮치려 한다. 삼좌점 유적지의 산 밑에 벌써 거대한 댐 수로가 관통했다. "중요한 유적인 만큼 원형을 살려 역사 자원으로 삼는다"는 것이 중국측 입장이라지만, 초대형 토목공사가 유적을 지켜줄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주말 부산 서면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고조선(단군조선) 토론회' 모습.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재관 이성명 이연화 문상철 강상익 오현지 이종덕 씨.

■ 단군조선 토론회 



-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주체적 연구 필요… 민족을 지탱하는 건 역사의식과 정신 때문" 



열린 사고로 역사 바라봐야 고조선 문헌 없어 공부하기 쉽잖아, 상고사 연구 정부의 적극 지원을



지난 주말 부산 서면의 한 음식점에서 '단군조선(고조선)'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본지 시리즈에 대해 '할말이 많은' 독자 7명이 함께 한 자리였다. 참석자는 ▷이성명(53) 부산국학운동시민연합 대표 ▷이종덕(44) 부산동교회 목사 ▷오현지(42) 부산국학원 홍보국장 ▷이연화(39·주부) 씨 ▷문상철(31·부산대 대학원 석사과정) 씨 ▷이재관(52) (주)천리산기 대표 ▷강상익(52) 부산가야고 교사 등 7명.



2시간 가량 이어진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고조선에 대한 의문과 역사교육의 문제, 지도자의 역사관 및 동북공정 등에 대한 대응책까지 다양한 쟁점을 놓고 얘기를 나눴다. 토론 요지를 정리, 소개한다.



▶이성명(존칭 생략)= 공학을 전공했는데, 고조선 역사를 접하고부터 관심사가 바뀌었다. 우리에게 대단한 역사가 있다는 걸을 알고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국학운동에 뛰어들었다.



▶문상철=나의 경우 '규원사화'라는 책에 나오는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다'는 말에 반해 역사전공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책이 위서로 취급되고 있어 안타깝다. 대학에선 '한단고기'같은 책을 언급조차 못하게 한다. 일부 활용가치가 있는데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종덕= 시리즈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단군신화를 역사로 보고 싶다. 단 문헌학적·고고학적 고증이 있어야 하겠다. 한민족이 단일민족인지, 동이족의 뿌리가 뭔지 등은 연구 과제일 것이다.



▶이연화= 얼마전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한국사 출석수업을 했는데, 교수님의 시각이 일제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한사군이 여전히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가르쳤다. 학생들은 가르치는 대로 배운다.



▶이재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천지인 사상이나 홍익철학 같은 것은 세계적인 가치를 품고 있다고 한다. 강단학계 재야학계 구분하지 말고 합심해서 우리 것을 바르게 연구해 주었으면 한다.



▶문상철= 강단이나 재야 같은 말 자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종덕=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개국했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창세기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기원전 2357년에 온 세계가 70개 민족으로 나누어졌다는 거다. 열린 사고로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이연화= 종교는 종교이고 역사는 역사이다. 요즘 아이들은 겨우 엄마 아빠만 알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모른다. 큰 일이다. 역사 공부를 강화해야 한다.



▶강상익= 신채호 선생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는데, 이는 민족 주체성을 강조한 얘기다. 지금이야말로 주체적 역사 연구가 필요하다. 세계화가 될수록 우리 것을 챙겨야 한다.



▶오현지= 역사는 결국 관점의 문제라고 본다. 한사군의 경우 이병도의 학설(대동강 중심설)이 전부인양 알았는데, 최근 논의되는 요서중심설을 접하니 가슴이 뛰었다. 유태인들이 살아남은 건 역사 의식과 정신 때문이라고 한다.



▶문상철= 우리 사학계는 이제 이병도를 80% 정도 극복했다. 고조선은 문헌이 없어 공부하기가 힘들다. 부산대엔 고대사 석사 전공자가 나 혼자다.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지방을 홀대하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



▶오현지= 한국의 교육제도와 지도자의 역사관이 가장 큰 문제다. 학계의 실증주의도 유연해져야 한다. 남아 있는 문헌 자료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국제적 정세 변화를 빨리 읽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재관= 정부가 상고사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이 참에, 기업인들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참여했으면 한다. 상고사 연구를 위해 독지가가 나타나 지원한다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겠는가.



▶이성명 =지금은 혼란기다. 역사적으로 혼란기 때마다 단군이 나왔다. 지금도 뭔가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신적 구심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 츠펑 = 박창희 기자 chpark@kookje.co.kr

  입력: 2008.09.16 19:54 / 수정: 2008.09.1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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