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
정부수립60년 - 한민족의 뿌리 단군조선을 찾아서 2편 (국제신문 연재)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8-08-25 조회수 : 4531
파일첨부 :
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2> 뉴허량의 동이(東夷)문화
5500년 잠에서 깬 女神 '웅녀의 환생' 아닐는지…
뉴허량의 신석기 시대 여신묘 진흙두상은 '몽골 인종'
유물 쏟아진 제단·적석총·석관묘도 동이문화 흔적
곰뼈·진흙 곰 조소상 등은 단군신화와 일맥상통
中 세계문화유산 등재 움직임… 우리도 연구 나서야



 
  랴오닝성 뉴허량 제2지점 유적지 전경이다. 여기서 적석총 석관묘 등 동이문화와 관련되는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중국 당국은 유적지 주변에 철조망을 쳐 외부인 출입을 막았다. 박창희 기자





넓혀진 역사 무대, 다링허



"뉴허량을 못볼 지도 모르겠네요. (중국 당국이) 경계를 많이 하나봐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복기대(고고학) 교수의 말에 답사단원들이 적이 실망하는 눈치다. 뉴허량(牛河梁·우하량)을 못보다니. 여신을 못보고 가는가.



뉴허량은 중국 신석기문화를 보여주는 홍산(紅山)문화의 대표적 유적지다. 중국 고고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쑤빙치(蘇秉琦)는 "홍산문화는 이미 씨족사회 단계를 넘어 국가 형성의 초기단계에 이르렀다"면서 중국 문명사를 1000년 앞당겼다고 평가한다. 이로인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는 황하문명이 뒤로 물러앉을 판이다.



"무조건 가 봐야죠. 가서 못보면 돌아오고…." 답사단은 한가닥 기대를 걸고 버스에 오른다. 답사 사흘째다. 내리던 비가 그치니 날이 덥다. 오전부터 버스가 헐레벌떡거린다.



삼저우시(錦州市·금주시)에서 링위안시(凌源市·능원시)로 가는 길은 온통 옥수수밭이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 강이 하나 나타난다. 다링허(大凌河·대릉하)란다. 우리 역사는 지금껏 랴오허(遼河·요하)를 쉽게 넘지 못했다. 고조선이든, 고구려든 랴오허의 동쪽, 즉 요동까지가 역사 무대였다. 고려 때의 명장 최영이 정벌하고자 한 곳이 요동이다. 이런고로, 한국인들은 한민족 활동 무대의 동쪽 끝을 랴오허로 인식했다. 그런데 지금, 랴오허를 지나, 그것도 아주 서쪽으로 들어온 다링허가 아닌가. "다링허가 우리 역사 무대로 들어온 것은 얼마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들이 여기 모여 있어요. 이곳의 홍산문화는 바로 동이족의 문화라 할 수 있거든요."(복기대 교수)



동이족(東夷族)은 중국 동북부 지방과 한국·일본에 분포한 종족을 중국인이 부르던 명칭이다. '夷'가 뜻하듯 중국은 이들을 오랑캐쯤으로 인식했다. 중화사상이 성립된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동이족이 보편적 명칭이었으나, 진나라 통일 이후에는 예맥족(濊貊族)으로 불렸다. 고조선을 구성하는 최대 종족이 이들이라는 게 통설이다.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선다. "이런, 길이 끊겼어요. 공사를 하나 보네!" 중국인 운전수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별수없이 차를 돌린다. 중국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란다. 1시간 반 가량을 헛달렸다.







 
  ①뉴허량 제2지점의 발굴 당시 항공 사진.

모계 사회의 자취



링위안에서 젠핑(建平·건평) 가는 101번 국도. 야트막한 산야에서 안온한 땅기운이 느껴진다. "여기가 뉴허량입니다. 감시가 있는 듯하니 동작을 빨리 합시다."(복기대 교수)



차에서 내리자 도로변에 '우하량 홍산문화 유지(牛河梁 紅山文化 遺地)'라고 쓰여진 대형 안내판이 보인다. 2006년 7월 1일 링위안시 인민위원회가 세웠으며 중국어와 영문이 병기돼 있다. '…홍산문화의 뉴허량 유적지는 지금부터 5500년 전인 신석기 말기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들(all conditions to be a state)을 갖추었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청동기 시대 들어 비로소 고대국가가 일어난다고 적고 있는데, 중국은 신석기시대에 고대국가가 태동했다고 보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뉴허량의 유물이라고 안내판은 자신있게 밝히고 있다.



실제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유물들이 쏟아졌다. 버스가 선 길 건너편의 황량한 공터가 뉴허량 제2지점인데, 이곳에서 제단과 적석총, 수많은 석관묘가 발굴됐다고 한다. 그런데 외곽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간신히 사진을 찍고 인접한 야산으로 올라갔다. 얼마안가 '여신묘(女神廟)'라 적힌 안내석이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뻔쩍 들었다. "빨리 잘 보세요. 저쪽에서 여신상과 곰뼈가 나왔어요. 주변에 산성터와 제사터가 남아 있고…. 아직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죠. 신석기인들은 여기서 뭘 했을까요." 복 교수의 특강에 답사단의 눈들이 휘둥그레진다.







 
  ②여신묘가 발굴된 뉴허량 제1지점. 보호용 가건설이 들어서 있다.

여신은 누구였을까



1984년 10월 31일 오전. 뉴허량 제1지점은 사각거리는 꽃삽 소리와 함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주실(主室)의 서편에서 한덩어리의 진흙덩어리가 떨어졌고 사람의 두상이 윤곽을 드러냈다. 흙을 살살 지워내니 둥그런 이마가 노출되었다. 5500년 가까이 긴 잠에 빠져 있던 여신(女神)이 깨어나고 있었다.



여신묘에 대한 중국측의 발굴보고서에는 두상의 잔존 상태가 자세히 묘사돼 있다. 두상 높이 22.5㎝, 폭(귀에서 귀) 23.5㎝, 미간의 넓이 3㎝, 코 길이 4.5㎝, 귀의 길이 7.5㎝, 입 4.5㎝…. 얼굴은 선홍색을 띠고 입술엔 붉은 칠(朱漆)이 남아 있고, 머리 뒤쪽 부분은 평평하여 벽에 걸어 놓기에 좋은 형태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왔고, 눈꼬리는 위로 올라갔으며 눈썹은 선명하지 않다. 그런데 코는 접착이 약했던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제법 큰 눈에는 옥구슬을 눈동자로 박아 놓았다.



주변에 흩어진 가슴과 궁둥이 팔 다리 등을 조합하니 영락없는 여인의 자태였다. 중국 학계는 '몽골 인종'으로 결론지었다. 1차 복원된 얼굴은 중국인 같기도 하고, 근대 한국인의 얼굴 같기도 했다.



유적지의 진흙 조각편을 끼워맞추어 보니, 여신은 모두 3명이었다. 이중 한명은 사람 크기의 3배, 한명은 두배, 한명은 등신대로 조사됐다. 중국 학자들은 이를 주신(主神)과 군신(群神)의 관계로 보고, 당시 모계사회에 계급이 존재했을 것으로 해석했다.



뉴허량에서는 이처럼 단(壇)·묘(廟)·총(塚), 즉 무덤과 제단, 신전 등이 3위 일체로 드러나 완벽한 신석기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제단과 신전 주변에는 주거지가 나타나지 않아 신성 영역임이 확인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여기서 곰뼈와 곰발 같은 진흙 조소상과 곰 형태의 각종 옥기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국내 학자들이 이를 '웅녀의 환생'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연 억측일까.





 
  ③이곳에서 출토된 발굴 당시의 여신상(왼쪽)과 전체를 흙으로 복원한 형상(가운데),최근 '중화모조'라 이름 붙여 복원한 모습(오른쪽).

동이족의 맥박



지난 6월 말 중국에서 눈길 끄는 뉴스 하나가 날아들었다. 중국형사경찰학원 자오청원(趙成文) 교수가 지금부터 5500년 전의 여신 두상을 복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다름 아닌 뉴허량 여신묘의 여신을 되살린 것이다. 복원된 얼굴은 현대 여성과 별로 다르지 않았으나, 보면 볼수록 중국인이란 인상이 강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두상에는 '중화모조(中華母祖)'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학계는 뉴허량을 '홍산인(紅山人)의 신전이자 성지'로 보고, 뉴허량의 여신을 홍산인의 조상으로 받아들인다. 뉴허량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계획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정부는 최근 뉴허량을 '성(省) 문화건설의 중대 항목'으로 지정하고, 중국인 선조에 대한 제사와 복을 기원하는 성지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지난 달 답사단이 현장에 갔을 때 뉴허량 제1지점인 여신묘에는 보호용 가건물과 창살이, 제2지점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주요 유적지의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고 경계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올림픽 준비와 연관이 있을 것도 같았다.



중국 학계는 뉴허량의 여신을 중국인의 '공동 조상'으로 보면서도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적석총 석곽묘 석관묘 같은 고고학적 자료로 볼때 이곳은 오히려 '동이족의 신전이자 성지'라고 해야 맞다. 중국의 입장이 대략 난감인 것은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뉴허량의 동이문화에 대해 선문대 이형구(역사학과)교수는 "중국이 여신을 어떻게 복원하고 어떤 이름을 붙이든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건 중국 측의 주장일 뿐이다. 공유할 역사는 공유하고, 우리 것을 우리가 챙기면 된다"고 말했다. 



동이족이 누구냐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요동, 요서, 산동, 그리고 한반도, 일본까지 넓게 퍼져 고대문화를 일군 세력의 통칭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동이족이 신석기 이후 수 천년을 이어내려오면서 역사적 격랑 속에 거의 다 중국에 동화됐지만, 조선족(韓族)만 명맥이 이어졌다는 사실이에요.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니 이 곳의 동이문화를 우리가 확실히 챙겨야죠." 이 교수의 얘기가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단군 영정.

■ 단군신화 새로 읽기



- "단군조선을 한반도로 한정한 건 일제 식민사관의 산물"



'백두산 기원설'은 中·日 주장일뿐 주무대는 발해연안으로 추정…요서지방 신석기 유적 등이 증명



"단군신화 무대가 왜 요서지방인가요? 우린 백두산(태백산)이라고 배웠는데…."



지난 주 시리즈 첫 회가 나간 후 몇몇 독자가 보인 의문점이다.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인의 평균 역사 인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군은 신화이고, 그 무대는 태백산(太白山) 아래 신단수가 있는 신시(神市)' 정도로 배웠다. 여기서 태백산은 백두산을 의미한다. 이런 인식은 일제가 뿌려놓은 식민사관에 기초한다.



단군신화가 소개된 '삼국유사'의 첫머리를 다시 보자. '…고기에 따르면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했다. 이에 환인이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 보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를 열었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환웅천황은 풍백(바람) 우사(비) 운사(구름)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고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어 곰 이야기가 나오고 사람으로 변한 웅녀가 단군을 낳는다. 그가 단군왕검이다. 그런데 일제는 근대 역사학의 사료 비판(실증사학)을 앞세워 '단군=곰의 아들'로 등식 지워 신화임을 부각시켰다. 한국 고대사는 이때 깊은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중국이 전방위 공세로 고조선을 집어삼키려 한다.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 사관은 한 세기 가까운 시차를 두고 있지만, 공격의 초점은 고조선이란 동일한 대상이다. 그들의 공격 목표는 한국사의 영토 잠식에 있다. 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고조선사를 입맛에 맞게 가공하거나 왜곡한다. 일본과 중국의 사관이 침묵하거나 부인하는 부분이 바로 단군조선이다. 역사평론가 이덕일 씨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고조선사는 살아 있는 현대사가 된다"고 말한다.



최근의 문헌학적 고고학적 연구 성과들을 보면, 단군신화는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중국 요서지방 일대에서 속속 발견되는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그걸 증거한다. 고려대 김정배 교수(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는 '고조선과 비파형동검의 문제'라는 논문에서 "단군과 단군조선은 단순한 신화와 달리, 역사적 사실로서의 신화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서 '삼국유사'가 전하는 단군왕검의 출현 연대인 기원전 2333년을 긍정적으로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단군조선의 '백두산 기원설'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백두산은 당시 기후 조건상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라며 고고학적 자료를 볼때 단군신화의 무대는 요서지방의 다링허 유역, 즉 발해연안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우리 상고사는 실로 수수께끼 투성이다. 사료는 빈약하고 쓸만한 고고학 자료는 거의 중국땅에 있다. 환웅족이 어디서 왔는지, 호랑이족과 웅녀족의 정체는 무엇인지, 단군조선(기원전 2333년)과 기자조선(기원전 12세기), 위만조선(기원전 194년 무렵)은 어떤 관계였는지, 또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이러한 의문들은 앞으로 시리즈를 통해 살피게 될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가 전체 구도속에서 어떻게 설정되고,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이길 우리의 비기(秘器)가 무엇인지도 함께 짚어볼 것이다.
이전글 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3> 다링허에 흐르는 아사달
다음글 정부수립60년 - 한민족의 뿌리 단군조선을 찾아서 1편 (국제신문 연재)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