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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중국에 결코 굴복하지 않은 고구려, 내분에 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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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결코 굴복하지 않은 고구려, 내분에 망하다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7

  
승인 2014.08.27 01:35:02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이 환도산성은 중원 세력이 여러 번 쳐들어 왔던 곳입니다. 꾀를 써서 물리치기도 하고 져서 환도성이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

임찬경 박사는 환도산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원과 고구려의 싸움을 설명했다.

"적이 쳐들어오자, 이곳으로 들어와 저항하면서, 한나라 장수에게 잉어와 술을 보내 적을 물리쳤습니다. "

대무신왕(大武神王) 11년(28년) 7월이었다. 한나라 요동태수가 갑자기 병력을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집안으로 천도한 지 25년밖에 되지 않았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다. 대무신왕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위나암성(환도산성)으로 들어가 수십일 동안 굳게 지켰다. 한의 군대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렸으나, 포위하고 풀어주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죄다 굶어 죽을 판이었다. 왕은 힘이 다하고 병사들이 피로하므로 을두지에게 방법을 강구하라 하니 을두지는 이렇게 말했다.

"한 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돌로 된 땅이어서 물이 나는 샘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오래 포위하여 우리가 어려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연못의 잉어를 잡아 수초에 싸서 맛있는 술 약간과 함께 한의 군대에 보내어 군사를 위로하십시오."

왕이 그 말을 따라 잉어를 잡고 술을 보냈다. 글을 주어 말하기를 "과인이 우매하여서 상국(上國)에 죄를 얻어, 장군으로 하여금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 국경에 갑자기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두터운 뜻이 없이 문득 가벼운 물건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이를 받은 한의 장수가 성 안에 물이 있어 갑자기 쳐서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이후 고구려는 점차 힘을 쌓아 강성해졌다. 중원에서는 그런 고구려를 누르고자 군사를 보냈다. 동천왕(東川王, 재위 227~248년) 20년(246) 8월 위(魏)의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母丘儉)이 1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초기에는 고구려의 우세였다. 싸워 거듭 이기자 적을 가볍게 보다 크게 패배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 복원 공사를 하는 환도산성.

"동천왕이 보병과 기병 2만 인을 거느리고 비류수 위에서 싸워 이를 패배시켜 베어버린 머리가 3천여 급(級)이었다. 또 병력을 이끌고 다시 양맥 (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 또 이를 패배시켰는데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것이 3천여 인이었다. 왕이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위 (魏)의 대병력이 도리어 우리의 적은 병력보다 못하고, 관구검이란 자는 위 (魏)의 명장이나 오늘은 목숨이 내 손안에 있다.’고 하고, 철갑기병 5천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였다.
관구검 이 방진(方陣)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우므로 아군이 크게 패배하여 죽은 자가 1만 8천여 인이었다. 왕이 기병 1천여 기(騎)를 거느리고 압록원 (鴨淥原)으로 달아났다."
그해 10월 관구검은 고구려 국도(國都)인 환도성(丸都城)을 파괴하였고 동천왕은 멀리 남옥저(南沃沮) 등으로 피신하였다. 군사가 흩어져 붙잡힐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동부(東部)의 밀우(密友), 유유(紐由)의 계략으로 겨우 벗어났다.
관구검이 물러난 후 환도성은 다시 도읍할 수 없어서 동천왕은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그곳을 도읍을 삼았다. 이때 위나라 장수가 공을 돌에 새기고 환도산에 세웠는데 '관구검기공비'가 그것이다. 이 기공비가 집안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요령성박물관에도 복제품을 전시한다.   
▲ 고구려 대무신왕 때 한군이 쳐들어오자, 환도산성에 있는 연못에서 잉어를 잡아 술과 함께 한나라 장수에게 보내 위기를 모면하였다.

중국 자료에는 관구검의 침략을 길게 설명하는데 그 이유가 짐작이 간다. 관구검이 승리하여 고구려가 중원에 복속되었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비석까지 발견되어 물증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당시 중원은 삼국시대가 끝나가는 시기로 위(魏), 오(吳), 공손씨(公孫氏) 등 힘에 의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었다. 위(魏)는 중원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고분고분하지 않는 고구려를 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가 항복하지 않았는데도 곧바로 철수를 한 건 중원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원래 이곳이 중원과는 다른 사이(四夷)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중국의 영역이었다고 하니, 이런 억지가 어디있을까!

환도산성은 도성이라서 이런 재해를 입었지만, 다른 산성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난공불락, 고구려 산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산성이 도처에 있었다. 이런 산성을 공격하다 포기하고 곧바로 평양성을 공격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평양성이 호락호락한 건 아니었다. 고구려군에게 중원의 군대가 대패하였으니,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이 그 예이고, 안시성 싸움이 이를 말해준다.

산성(山城)의 나라, 고구려.

"고구려가 망한 것은 적의 침략이 아니라 내분에 의해서였습니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아들들이 서로 싸우다, 장남 남생이 당에 투항하여 향도가 되어 당군을 끌어들여 고구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지도층의 분열로 망했습니다. 고조선도 내분으로 망했고, 조선도 고종과 백성이 반대했는데도 을사5적이 병탄을 찬성했습니다. "

환도산성에 앉아 임찬경 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역사에 깊이 빠졌다.

"지도층은 이렇게 문제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국민 개개인이 똑똑하여 잘해나갑니다. " 임 박사는 국민 개개인이 희망을 갖고 깨어나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고구려의 멸망 원인이 내분에 있음을 갈파한 이가 한둘일까.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이를 지적하였다. 견고한 성을 믿고 해이해지는 사이 멸망의 싹이 튼다.

"비록 백성과 물자가 풍부하고 성곽이 견고했으나 마침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압록강 북쪽은 기후가 일찍 추워지고 땅이 몽고(蒙古)와 맞닿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굳세고 용감하다. 또 강한 오랑캐와 섞여 살기 때문에 사면으로 적국의 침입을 받게 되므로 방비가 매우 튼튼했었다. 이것이 나라를 장구히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이다.

평양(平壤)은 압록강과 청천강의 남쪽에 있어 산천이 수려하고 풍속이 유연하다. 그리고 밖으로 견고한 성(城)과 큰 진(鎭)이 겹겹으로 방호하는바, 백암성(白巖城)ㆍ개모성(蓋牟城)ㆍ황성(黃城)ㆍ은성(銀城) ㆍ안시성(安市城) 등의 성이 앞뒤로 잇달아 바라보이고 있다. 이러니 평양 사람들이 어찌 두려움이 있었겠는가.

고연수(高延壽)와 고혜진(高惠眞)이 적(敵)에게 성(城)을 내어주고 항복했으나 이를 문죄하지 않았고, 개소문(蓋蘇文)이 군사를 동원하여 난리를 일으켰으나 이를 금지하지 않았고, 안시성(安市城)의 성주가 탄환만한 작은 성으로 당(唐) 나라의 백만 대군을 막았으나 이를 상주지 않았다.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평양을 믿은 때문이다.
아, 평양은 믿을 수 있는 곳인가? 요동성(遼東城)이 함락되면 백암성이 위태하고, 백암성이 함락되면 안시성이 위태하고, 안시성이 함락되면 애주(愛州)가 위태하고, 애주가 함락되면 살수(薩水)가 위태하다. 살수는 평양의 울타리인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가죽이 벗겨지면 뼈가 드러나게 된다. 이런데도 평양을 믿을 수 있겠는가.
진(晉) 나라와 송(宋) 나라는 남쪽으로 양자강(揚子江)을 건넌 뒤 천하를 잃었으니 이는 거울삼아 경계해야 될 중국의 전례(前例)이고, 고구려는 남쪽으로 압록강을, 백제(百濟)는 남쪽으로 한강(漢江)을 건넌 뒤 나라를 잃었으니 이는 귀감으로 삼아야 할 우리나라의 전례이다.
경전(經傳)에는, “적국(敵國)으로 인한 외환(外患)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 했고, 병법(兵法)에는 이렇게 말했다.

“죽을 곳에 처해야만 살게 된다.”('고구려론')

작금의 동아시아 정세는 우리에게 매우 위태롭게 돌아간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기회가 아닐까. 이를 슬기롭게 이용하여 우리가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환도산성, 언제 다시 와 볼까, 언덕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복원 작업이 한창인데 복원이 끝나면 중국은 이 산성을 어떻게 이용하여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보일는지. 2,000년이 지나도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낼지. 상념에 젖어 내려오는 사이 땀이 옷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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