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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혜의 요새, 환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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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요새, 환도산성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6

  
승인 2014.08.20 00:47:54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7월 16일 오전 집안박물관을 나와 환도산성(丸都山城)을 향해 출발했다. 집안 성북의 고산지역에 있는 환도산성은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서 서북쪽으로 2.5킬로미터 쯤 되는 곳에 있는 환도산에 있는데 현재는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남측성벽과 망대 등 일부만이 옛 산성터임을 말해준다.

환도산성 본래 이름은 위나암성(尉那巖城)-‘삼국사기’에는 위나암성(尉那巖城), 위나야성(尉那也城)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중국에서는 산성이 자리 잡은 산의 이름을 따서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이라 불렀다. 이후 산성자산의 이름이 환도산으로 바뀌면서 현재는 환도산성으로 부른다.

남쪽 성문 쪽에 들어가는 입구를 마련해 두었다. 환도산성을 알리는 표석 앞에서 산성을 바라보며 고구려 시대 이곳을 호령한 고구려인들을 생각했다. 고구려인은 누구이며, 수천 년 후 이곳을 찾아 고구려인을 그리워하는 나는 누구인가.
   
▲ 환도산성은 평지성인 국내성과 더불어 도성 역할을 한 산성이다.


서기 3년(유리왕 22년) 고구려는 졸본에서 도읍을 이곳 집안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위나암성은 국내성에서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산성이다. 고구려의 도성은 평지성인 국내성과 산성인 위나암성이 한 조를 이루어 조성되었다. 국내성은 평상시에 거주하는 평지성이고, 위나암성은 전시에 사용하는 산성이었다. 국내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면 위나암성으로 철수하여 방어를 한 것이다.

  
▲ 환도산성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남옹문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옹문은 남벽 중앙의 안으로 들어간 곳에 있으며, 성문을 나서면 평탄한 통구하(通溝河)에 닿는다. 이 길이 국내성으로 통하던 중요한 통로였다. 이 옹문을 닫으면 대군이 쳐들어와도 막을 수가 있다. 남쪽을 제외한 다른 곳은 산성으로 둘러싸여 올라올 수가 없다. 위나암성 뒤로 가파른 산이 능선을 두루고, 앞으로는 통구하가 자연 해자(垓字) 역할을 한다. 또한 국내성과 압록강까지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적의 움직임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 환도산성 안에 있는 음마지.

고구려 제10대 산상왕(山上王)은 위나암성을 확대하고 대형 궁전을 수리하고 환도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서기209년 산상왕은 환도성으로 천도하였다.

비는 오지 않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 더웠다. 몇 걸음 움직이니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산성안 궁터로 옮겼다. 성내에는 유적지가 세 곳, 저수지가 1곳, 묘지가 37개 있다. 저수지는 음마지(飮馬池), 연화지(蓮花池)라고 한다. 성내 궁전은 주춧돌로 보아 남북으로 길이 96.5미터, 동서로 80미터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성과 더불어 도성 역할을 해온 환도성은 중원 국가의 침략으로 수난을 여러 번 당했다. 서기 244년 위(魏)의 유주자사 관구검(毌丘儉)의 침략으로 환도성이 함락되기도 했다. 서기 343년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은 환도성을 다시 수리하여 이곳으로 천도하였으나 연왕 모용황의 침략을 받아 환도성이 불에 탔다.
음마지를 지나 점장대(點將臺)를 향해 올라갔다. 점장대, 장군이 이곳에 올라 적군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곳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점장대라고 하는데 전망대와 같은 곳이다.

  
▲ 환도산성 안에 있는 점장대(點將臺)


돌을 높게 쌓아 산 아래쪽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점장대 위까지 전에는 올라갈 수 있었으니, 지금은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점장대에서 내려다 보면 국내성과 압록강이 보인다고 한다. 산성에 배치된 군사들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점장대라고 임찬경 박사가 설명한다.

점장대 뒤로 15미터쯤 되는 숲이 병사들의 숙영지 터라고 한다. 숙영지 터에 잠시 앉아서 임찬경 박사의 고구려사 강의를 듣는다.

"이 환도성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남문을 제외하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적이 감히 침범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남문이 유일한 통로라 그 문을 막으면 천만대군이라도 대적할 수 있었습니다." 임 박사의 설명이다.

중원의 군대가 국내성을 함락하면, 왕과 대신들이 환동성으로 피난하여 국내성을 재건한다. 도읍이 함락되어도 결코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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