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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안중근 의사
작성자 : 관리자(test@test.com) 작성일 : 2019-11-27 조회수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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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위해 적의 심장을 쏘다

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한국 침략의 원흉을 처단하여
독립의 희망을 심어준
안중근 의사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상해로 건너간 안중근 의사는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고,
귀국해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해 인재 교육에 힘썼습니다.

또한, 석탄을 채굴하여 판매하는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하여 산업 진흥에도 매진했습니다.

1907년 안 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국내진공작전을 펼치며 대일항전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이후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조직,
왼손 약지를 잘라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던 중, 안중근 의사는 한국의 초대 통감이자 
일제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토를 처단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하얼빈 역.
이토 히로부미가 탄 특별열차가 역에 도착했습니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한 이토가 다시 열차를 향해 가기 시작한 바로 그때,
의장대의 후방에 있던 안중근 의사는 앞으로 뛰어나가며
이토에게 총탄을 명중시켰습니다.

“코레아 우라 (대한 만세)”

현장에서 체포된 안 의사는 연행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후 일본인들에게 심문과 재판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개조를 들며 
거사의 이유를 천명했습니다.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거라”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말에 따라 공소를 포기하고, 
여순감옥에서 「안응칠역사」 와 「동양평화론」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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