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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 유관순열사
작성자 : 관리자(test@test.com) 작성일 : 2019-03-02 조회수 :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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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과거 100년을 넘어 미래 100년을 향한 시작점인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요?

1919년 3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3.1만세운동에 동참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분이 있습니다. 바로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유관순 열사인데요.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가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 이화학당에서 꽃피운 민족애

1902년 12월(양력)에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한 선교사의 주선으로 1915년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으로 편입하게 됩니다. 이후 보통과를 졸업하고, 1918년 4월 이화학당의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하게 된 유관순 열사는 자유롭게 근대 선진학문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선진학문을 받아들이는 한편 민족애 역시 잃지 않았습니다.

열사가 이화학당에서 수학할 시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다음 해인 1919년 1월부터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화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에도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중국 상해에서는 신한청년당, 일본 동경에서는 조선 유학생 학우회를 중심으로 국내외 동포들이 독립운동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거족적인 독립운동이 종교계와 학생들에 의해 각기 추진되었습니다.

3.1운동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점은 동경 한국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이후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2.8독립선언’을 발표했고, 밀사를 파견하여 거사 소식을 국내에 알려 3.1운동 계획을 본격화했습니다.

이때 유관순 열사 역시 이화학당 내의 비밀결사인 이문회 선배들을 통해 3.1운동 추진 계획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열사는 3.1운동이 발발하기 바로 전날 고등과 1학년 학생들과 시위결사대를 조직하고 만세시위에 적극 참가하기로 맹세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결전의 날. 탑골공원을 나온 만세 시위대가 학교 앞을 지날 때 열사는 5명의 시위결사대 동지들과 함께 시위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이후 3월 5일 남대문역 만세 시위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 고향에서도 꽃피운 독립운동의 열기

3.1운동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학교가 만세 시위운동의 계획 추진 기지가 되자 조선총독부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대한 임시휴교령을 반포합니다. 이에 학교가 문을 닫자, 열사는 서울에서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고자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귀향합니다.

열사는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 소식을 전했고, 만세 시위운동의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 결국 4월 1일, 아우내 장날 정오에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됩니다.

4월 1일, 병천면 아우내 장날, 장터에는 약 3,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만세 시위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열사는 밤새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운동을 탄압했고, 이 때 열사의 부모님도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와 시위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압송되었습니다.

선생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 말하며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공주감옥으로 이송될 때에는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독립만세를 연이어 외치며 강인한 독립의지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열사는 일제의 온갖 탄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옥중 만세를 불렀습니다. 특히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열사는 지하 감방에 감금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순국했습니다. 정부는 열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강인한 정신으로 독립을 울부짖었던 유관순 열사.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개를 꺾지 않고 일제에 맞섰던 열사의 희생정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받는 고문의 고통보다 나라 잃은 고통을 더 견딜 수 없었던 1월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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