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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
작성자 : 관리자(test@test.com) 작성일 : 2018-09-20 조회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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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독립운동가로서의 삶

 

연미당 선생은 1908년 7월,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의 부친 연병환은 1919년 3월 3일 북간도 청년들의 만세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다 체포된 독립운동 지도자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운영하던 인성학교에서 공부한 연미당 선생은 학교 졸업 후 청년 독립운동가 엄항섭 선생과 결혼합니다. 

 

▲ 연미당, 엄항섭 선생의 결혼식 (출처: 독립기념관) 

 

당시 독립운동가 남편을 둔 대다수 여성들이 그러했듯, 선생은 남편 엄항섭을 내조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과 상해여자청년동맹에서 맹활약하는데, 이는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임시정부를 지키며 

한인들의 힘을 결집하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키자 상하이에서는 한인 색출작업이 벌어집니다. 선생은 가족을 이끌고 상해를 탈출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고난의 행군을 합니다. 그 와중에도 피습으로 부상을 입은 김구 선생 등 연로한 독립운동가들을 병간호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재건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습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동시기 정부요인과 가족 (출처: 독립기념관)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하자 연미당 선생은 한인들의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혁명여성창립동맹을 발족하고 애국부인회를 재건하여 재중 한인 여성들의 항일 정신과 독립의지를 고취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일본군에 소속된 한인 사병들을 광복군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반일 선전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기념 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은 광복 직후 바로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오지 않고 귀국을 미룹니다. 중국에 남아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연미당 선생

 

지칠 줄 모르는 투지로 독립운동의 토대를 다지고, 재중 한인들의 항일 의지를 독려한 연미당 선생.

그는 한국 독립운동이 깊이 뿌리내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헌신한 독립투사였습니다. 7월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을 기억해주세요.



출처: http://mpva.tistory.com/5198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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