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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 이대위
작성자 : 관리자(test@test.com) 작성일 : 2018-09-20 조회수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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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평남에서 태어난 이대위 선생은 190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선생은 교포들의 도움을 받아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 이대위 선생 (출처 : 독립기념관) 

 

1913년 선생은 미주 한인단체 '대한인국민회'북미지방총회 총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선생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미주한인이 한일 강제병합 이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음을 알리며, 한인들의 국적을 일본인과 구분해 줄 것을 요구하여 이를 관철했습니다.

 

선생은 1914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를 법인으로 등록하여 미국에 입국하는 유학생과 동포들의 보증을 서고 정착을 돕는 영사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대한인국민회 제1회 대표원 의회(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대위 선생) (출처: 독립기념관)

 

▲ 국민회 입회 증서 자료 (출처 : 국가지정기록물 온라인 전시관)

 

또한 「신한민보」의 주필로 활동하며 한글식자기를 발명하여 한인사회의 출판문화를 향상시켰습니다.

 

선생은 미주지역 대표로서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습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신한민보를 통해 독립만세운동의 상황을 동포들에게 알리며,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 대한인국민회가 운영한 클레어몬트 한인학생양성소 (뒷줄 가운데 이대위 선생) (출처 : 독립기념관)

 

▲ 신한민보 (출처: 국가기록지정물 온라인 전시관)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대미외교업무 수행을 위해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노력하던 선생은 과로로 병을 얻어 1928년 서거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이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미주 한인사회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던 6월, 호국보훈의 달의 독립운동가, 이대위 선생을 기억해 주세요.



출처: http://mpva.tistory.com/5139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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