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자료실 >
우리민족 뿌리 찾기에 평생을 바친 - 안호상2(安浩相, 1902 - 1999)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9-10-27 조회수 : 3770
파일첨부 :
우리민족 뿌리 찾기에 평생을 바친 안호상(安浩相, 1902 - 1999)

백제가 진(晋), 송(宋), 제(薺), 양(梁) 때에는 양자강 북녘을 다 차지하다가 후위(後魏: 서기 5세기) 때에는 양자강 남녘인 오(吳), 월(越) 까지를 차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서에선 백제의 서녘 경계선이 월주(越州)요, 남녘 경계선은 왜(倭: 일본)이라 하였습니다.신라의 나라 땅이 처음엔 경상도에서 만주 길림성(吉林省) 오납(烏拉: 목단강 지역)까지인 것을 교과서는 완전히 빼어버리고 또 삼국통일의 국경이 한때 북경지역까지 였던 것을 경상도 만인 것처럼 꾸며 두었는데, 이것 또한 일제의 허위조작에 따른 것입니다. 

신당서(新唐書)에서 말하기를 ‘신라나라 땅이 가로가 천리요 길이가 삼천리며, 또 서녘은 개원(開原)과 철령(鐵嶺: 봉천과 장춘 지역)이다가 무열왕 때에는 이 봉천과 장춘의 서녘에 있는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을 위함으로써 동서가 구백여리요, 남북이 천 여리나 더 넓어졌다”고 하였습니다.신라의 삼국통일 국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당서에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신라가 서부 만주와 북경지역의 고구려와 백제의 땅을 모두 차지한 뒤 거기에 상주(尙州), 명주, 양주, 강주, 웅주, 전주, 무주, 한주, 식주 등 9주를 두었는데, 상주는 길림성인 東京路에 속하였으므로 길림 영안현(寧安縣)이요, 전주는 북경로(北京路)에 속하였으므로 하북성과 열하성 지역이요 강주(康州)는 대능하(大凌河)의 동쪽에 있는 의무여산(醫巫閭山) 지역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箚?구주(九州)를 설치할 적엔 동녘으론 길림이요, 서녘은 북평(東至吉林 西至 廣寧北平) 까지라 하였습니다.그러다가 성덕왕(聖德王) 첫 무렵부터 발해가 강해져서 만주와 북경 지역은 모두 발해에 빼앗기고 성덕임금 35년(당개원 24년: 서기 736년)에 압록강 남녘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였습니다.이와 같이 신라 통일국경이 한때 길림에서 북경까지요 또 이 지역에다 구주(九州)를 두었는데, 중 고의 국사교과서에선 이 구주를 모두 대동강 남녘에다 배치하였으나 이러한 터무니없는 거짓 기록은 어떤 책들을 참고해 썼는지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통일과정에 관하여 국사교과서에선 말하기를 신라는 당의 육군 20만 명을 의정부 부근에서 거의 멸망시켰고 이어서 금강 입구에서 당의 해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리하여 신라는 마침내 당군을 이 땅에서 축출하고 숙원의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국사교과서는 신라의 통일국경을 밝히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국사교과서의 1978년판까지는 신라 통일국경에 관하여 말하기를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냄으로써 비로소 삼국이 통일이 되었다. 신라는 대동강 유역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선을 국경으로 삼았다’하였습니다.이때 우리는 이러한 국사교과서는 모순 덩어리요 거짓투성이로서 신라 삼국통일을 ‘망국통일’로 만들었다고 떠들었더니 중학 국사는 1979년 판부터는 그것을 고쳐서 ‘발해가 대동강 유역에서 원산만 이북을 차지하였다’고 하였고(56면), 고등학교 교과서에선 1979년 판부터 ‘대동강 이남을 당이 승인하였다’고 하였습니다.(고. 52면) 이것은 역사지식이 모자란 사람으로서 그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적은 것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끝으로 드릴 말씀은 현재에 국사교과서가 적어도 단군조선으로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의 기술은 반민족적과 반국가적일 뿐 더러 또 비과학적과 몰상식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첫째로 단군 한배검의 역사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국사교과서는 일제식민사관에 따라 단군 한배검을 신화로 돌려 부정하였는데, 그것은 곧 민족의 부정과 분열을 가져오며 또 우리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김일성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이것은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둘째로 기자조선문제입니다. 이 기자조선이 과거 우리나라에서 한문으로 쓴 역사 기록치고 기자 역사가 안 실린 곳이 없고 또 중국책들을 보더라도 서전을 비롯하여 시전(詩傳),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자치통감(資治通鑑), 주서(周書), 진서(晋書), 양서(梁書), 수서(隋書), 남사(南史), 구당서(舊唐書), 당서(唐書), 통전(通典) 등에서도 기자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중국학자 임혜상도 자기의 저서 ‘中國民族史 上卷’에서 옛 책들에 따라 기자(箕子)가 우리 동이족의 후손인 것을 다음과 같이 똑똑히 밝혔는데, ‘맹자는 순(舜) 임금이 동이인(東夷人)이다’라 하였고, ‘현재 사람들이 은상(殷商)이 동이계에 속한 것을 고증하였으며’, 또 ‘순임금은 은상(殷商)의 조상’이므로 殷(商)나라 후손인 기자(箕子)가 조선에 간 것은 ‘자기의 고국에 돌아간 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3나라의 나라 땅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국의 정사와 또 여러 다른 책들에선 우리 옛 강토가 북경까지 에다가 다시 중국 남경과 상해가 있는 양자강 남녘인 옛 오나라와 월나라까지라 한 것을, 도리어 우리나라 국사가들만이 우리의 강토를 우리 한반도에다 국한시키고 남북 만주와 북경지역에다 설치하였던 신라의 구주(九州)를 대동강 남녘에 있었다 하고 또 우리 강토를 이 한반도라고만 하였습니다. 이 생각과 수법으로 국사를 쓴다는 것은 진리의 말살이요, 학문의 배신이요, 양심의 위반으로서 그것은 우리 민족에 비겁심과 노예성과 타락심만 심어줄 줄 믿는 바입니다.

***진술은 계속되었으나 여기서 그칩니다.***
이전글 스스로 개척한 주인정신만이 안창호
다음글 우리민족 뿌리 찾기에 평생을 바친 - 안호상1(安浩相, 1902 - 1999)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