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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汕耘 장도빈張道斌 선생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6-10-31 조회수 : 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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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汕耘 장도빈張道斌 선생 
1888.10.22 - 1963.9.12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매일신보》논설위원이었으며, 잡지에 항일 논설을 기고하기도 했다. 국사서적 간행과 한국사 연구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단국대학 설립자이며 초대학장이기도 하다.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산운(汕耘)이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에서 봉구(鳳九)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여 가정은 중농(中農)이었다.

할아버지 제국(濟國)의 훈도로 5세에 사서삼경을 통독하여 신동으로 이름이 났다.

▶ 1902년 대한제국의 학부가 관장하던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에 평양감사의 천거로 입학, ▶ 1906년 졸업하였다. 한성사범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던 《황성신문 皇城新聞》의 주필 박은식(朴殷植)의 소개로 ▶ 1908년 봄 《대한매일신보 大韓每日申報》에 들어갔다.

21세에 논설위원이 되어, 8세 위이며 역시 신동으로 알려진 신채호(申采浩) 및 양기탁(梁起鐸)과 함께 논진으로 일하였다.

1906년 한성사범학교, ▶ 1910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입사 몇 개월 후 신병을 앓던 신채호의 후임으로 논설주필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당시 친일내각과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와 맞서 투쟁을 벌였다. 

1910년 일제강점으로 신문사의 명맥이 끊어질 때까지, 한편으로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다녔으며(4회 졸업)이 시절 안창호(安昌浩)·이동휘(李東輝)·양기탁(梁起鐸)의 신민회(新民會)비밀회원으로 가담, 국권회복운동의 선봉과 국사연구에도 몰두하였다.

▶ 1910 - 1912년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 학감과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재직하는 한편, 국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 1912년 105인 사건으로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자 ▶ 1913년 노령(露領)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가까운 신한촌(新韓村)에서 다시 신채호를 만나고, 최재형(崔在亨)·홍범도(洪範圖)·이동휘(李東輝)·이상설(李相卨) 등 독립투사들과 교류하며, 보성전문학교 교수이던 이종호(李鍾浩)의 《근업신문 勤業新聞》에서 논설을 썼다.

▶ 1916년 병고의 몸으로 귀국, 평안북도 영변의 서운사(棲雲寺)에서 요양한 뒤 처음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는 국사 연구를 정리한 《국사(國史)》를 발간하였고, 이를 계기로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 조만식(曺晩植)교장의 초청을 받아 약 1년간 교사생활을 하면서 조선의 청년들이 가져야할 민족혼과 역사의식에 대해 강의 하였다.

▶ 1919년 3·1운동 후 《동아일보》의 발간을 출원하여 허가를 받았으나 운영을 양도하고, 이어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를 설립, 잡지 《서울》 《학생계(學生界)》 《조선지광(朝鮮之光)》 등을 발행하여 민족과 역사에 대한 가르침을 펼쳤다.

 1920 - 1937년 고적답사 및 국사의 연구·저술에 심혈을 기울여 《조선역사요령(朝鮮歷史要領)》 《조선역사대전(朝鮮歷史大全)》 《조선역사록(朝鮮歷史錄)》 등 30여 종의 국사서적을 간행하는 등 한국사 연구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 1922년 조선공제조합(朝鮮共濟組合) 감사, 조선청년연합회(朝鮮靑年聯合會) 집행위원, 민립대학설립(民立大學設立)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 1928년 발간한 《조선역사대전 朝鮮歷史大全》은 식민사가들에게 경종을 울렸고, 《대한역사 大韓歷史》를 통한 기자조선설(箕子朝鮮說)의 반론은 유명하다.

▶ 1932년 《동아일보(東亞日報)》에 66회에 걸쳐 《조선사(朝鮮史)》를 집필·연재하였다.

▶ 1945년 8.15광복 직후 월남하여 9월 1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덕국민학교 뒷자리의 방 3칸에서 《민중일보(民衆日報)》를 창간하고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공산언론과 대항하며 국민계몽활동에 앞장섰으며, 같은 해 10월 조선신문주간회(朝鮮新聞主幹會)를 조직, 대표로 활동하였다. 

▶ 1947년 한국대학(韓國大學), 1948년 <救國>ㆍ<自主>ㆍ<自立>을 창학이념으로 가혹한 일제치하에서 나라잃은 백성의 설움을 겪은 조국과 겨레의 독립은 결국 민족애에 뿌리를 둔 인재양성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단국대학(檀國大學)을 설립하여 초대학장을 지냈고, ▶ 1949년 역사연재물을 많이 간행을 하였던 《민중일보》가 화재를 만나 재건이 어렵게 되자, 윤보선(尹潽善)에게 판권을 무상으로 양도하였다.

▶ 1949년 육군사관학교 국사학교수, 1955년 서울시사편찬위원, 1959년 고등고시위원, 1961년 중앙상훈심의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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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에 《국사(國史)》 《조선역사록(朝鮮歷史錄)》 《조선역사요령(朝鮮歷史要領)》 《조선사상사(朝鮮思想史)》 《조선역사대전(朝鮮歷史大全)》 《조선사(朝鮮史)》 《대한역사(大韓歷史)》 《이순신전(李舜臣傳)》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한국의 혼》 《발해태조(渤海太祖)》 《대한문화고적도(大韓文化古蹟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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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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