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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와 조선족사회 - 허명철 교수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4-07-24 조회수 : 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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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와 조선족사회

                             허명철 연변대 교수

머리말

  1992년은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사회구성원들에게 있어서 획기적인 한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놓고 보면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등소평의 남방시찰강화를 효시로 중국사회는 두 가지 전환, 즉 농업경제체제에서 공업경제체제로의 전환과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에서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하였으며 이는 또한 조선족사회에 경제적으로 궐기할 수 있는 정책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었다. 국제적으로 보면 구소련과 동유럽권의 해체를 계기로 냉전의 종식이 선고되었고 평화와 발전이 시대적인 흐름으로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면서 자국의 대외노선과 발전전략을 새롭게 펼쳐나가던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과거의 불신과 대립을 청산하고 외교관계정상화를 실현하였으며 동북아지역의 안정과 발전을 추진하는 동반자로 되었다. 한중수교는 10여 년이란 개혁개방의 세례를 받은 조선족사회에 경제 ․ 문화 등 영역에서 신속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었으며 조선족사회구성원들이 하루속히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고 자체민족문화를 지켜갈 수 있는 또 하나의 희망을 제시해 주었다. 
  한중수교이후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와의 교류는 과거 단순히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던 친척방문 또는 홍콩을 거쳐 진행되어왔던 소규모적이고 간접적이고 제한적이었던 단순 경제교류 차원에서 벗어나 문화 ․ 예술 ․ 교육 등 각개 영역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선족사회구성원들은 뒤늦게 중국시장 개척에 진출한 한국기업체에 일차적인 인력자원을 제공해 주었고 한국산품의 홍보자, 소비자로 되었으며 한국 또한 정부차원에서 조선족사회구성원들의 고국방문 및 취직에 편리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었고 민간차원에서도 조선족사회의 교육, 예술, 체육 등 제 분야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었으며 양호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요컨대 중국의 기타 소수민족에 비해 조선족사회가 한보 앞서 시장경제의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보다 빨리 중국국내체제전환에 적응하면서 초기 경제생활의 신속한 제고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도전 속에서도 자체민족문화의 거듭되는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사회의 개혁개방정책의 실시 및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일차적인 요인으로 되었겠지만 한국사회와의 활발한 교류 및 한국사회로부터 오는 경제적 문화적 후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하지만 근 반세기에 가까운 단절이 가져다 준 공백과 이데올로기 후유증은 동족이란 “혈육의 정” 하나만으로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은 딜레마 같은 만남의 장에서 나름대로의 문제점들이 노출되었고 상호간의 갈등과 불신도 극으로 치달으면서 “페스카마”호 선상살인과 같은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상호간의 불신과 갈등을 하루속히 해소하지 않고 건강한 인식구조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윈 - 윈 할 수 있는 건전한 교류와 발전을 저애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조선족사회가 범민족적인 네트워크구축에 동참하는 것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이익에 따른 선입견을 포기하고 자아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 동안의 교류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점들을 냉정하게 반성하면서 글로벌시대 우리 민족의 위상을 제고시키는데 유조한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아진다. 

1. 한국사회에 대한 조선족사회의 시각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의 교류는 동족이란 혈육의 정이 끈끈한 유대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상호간의 경제생활수준의 격차와 의식구조의 차이성 등 원인으로 서로에 대한 기대 또는 희망사항과 그 만족도에 따라 평가는 달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놓고 보면 조선족사회가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은 1992년 한중수교를 시점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남북의 분단과 냉전이란 특수한 국제정치구도 속에서 한국과 중국은 대립적인 진영에 소속되어 있었고 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교류는 거의 단절된 상태였기에 조선족사회에 알려진 한국사회의 모습은 중국 관영매체 또는 북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기사가 고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정치적인 효과를 겨냥한 편파적인 홍보에 기초한 조선족사회의 대한국인식은 결과적으로 이글어진 한국일 수밖에 없다. 
  물론 조선족사회가 한국사회에 대한 편파적인 인식은 당시 중국 국내정치기류 속에서 조선족사회구성원들이 택한 생존수단과 무관하지는 않았다고 보아진다. 이를 테면 6.25전쟁 당시 수많은 조선족청년들이 참전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분단된 고국의 남과 북에 대한 타의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사실상 당시 중국 국내에서 벌어진 정치운동, 특히 문화대혁명시기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에 친척이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자아보호 차원에서 한국에 친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극력 부인하거나 덮어 감추려고 했던 것도 본의 아닌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조선족사회의 대외적인 교류는 북한친지방문이 위주였기에 자연히 親北斥南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었으며 조선족 자체가 또한 중국의 한개 소수민족이었던 만큼 한반도의 정세변화나 한국에 대한 평가도 객관적이라기보다 중국 국내 주류적인 정치기후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 시기 조선족사회 다수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그려진 한국의 형상은 빈곤에서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이고 미제에 아부하는 괴뢰이며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갈망하는 진보적인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독재국가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소산의 한국형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개혁개방시대의 서막이 열리면서 조선족구성원들도 점차 이데올로기와 사회제도라는 가치기준에서 벗어나《흘러간 옛 노래》등 대중문화를 매체로 한국사회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KBS와의 서신을 통해 자신이 신청했던 일본어사전이나 기타교본, 음악테이프 등을 받아보면서 한국사회에 대해 다소나마 호의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다. 
  특히 중국의 88서울올림픽 참가 및 자국민을 상대로 진행한 올림픽행사 중계보도는 조선족사회에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신선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중국대표단의 서울올림픽참석은 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교류에서 푸른 등이 켜질 수 있음은 시간적 문제임을 의미한다면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진 “한강기적”은 경제적인 도약을 꿈꾸는 조선족사회에 희망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88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비롯한 특집가요들이 조선족사회에서 애창가요로 되었다는 것은 당시 조선족구성원들의 어찌 보면 88올림픽을 계기로 조선족사회에서 처음으로 동일민족이라는 시각에서 자체의 운명을 한국사회와 연결시켜 보기 시작하였고 그 동안 왜곡되고 사라졌던 고국에 대한 감정, 한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정체의식의 소생이 있었기에 한중수교를 계기로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초기 밀월도 가능했던 것이다.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폭넓은 교류는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인식도 개변시켰다. 근 반세기에 가까운 단절이 가져다 한은 동족이란 원초적인 방식으로 풀리기 시작하였는바 중국에 다녀간 한국인들은 진정으로 중국을 알고 조선족사회를 요해하고자 했고 조선족사회 경제문화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주었고 한국친지방문을 다녀왔던 조선족구성원들도 한국에서 인정미가 넘치는 환대를 받았고 한국의 발전한 모습을 보면서 긍지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한 차례 한국행으로 경제적인 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최소한 동포의 정을 느낄 수 있었고 평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순수한 동족의식과 혈육의 정도 경제이익관계로부터 오는 현실적 충격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친지방문이나 기타 방식을 통해 한국을 다녀 온 사람들의 경험담에서 한국사회의 좋은 면을 알게 되고 우수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산 약을 가져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致富의 秘方도 알게 되었으며 민족적 동질성회복보다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는 秘方에 더욱 마음이 쏠리었다. 가난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유족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는 고국사랑, 혈육의 정을 희석시켰고 한국은 자랑스러운 고국으로부터 단순히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나라로, 짧은 시간 내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나라로 전락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은 조선족이 한국에서의 “성공”과 일부 한국인들의 금전위주의 행위에 의해 점차 현실화되었다. 때문에 혈육 간의 상봉의 기쁨도 순간이었고 그 희열이 채 가셔지기 전에 약장사를 시작했고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사기행각도 주저치 않았다. 일부 조선족들의 위법행위 내지 불미스러운 처사에 대해 한국의 친지들은 물론 한국정부에서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는바 당국으로서는 자연 법적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대해서 조선족은 또한 나름대로 불만을 토로하게 되었고 한국을 동족도 받아주지 않는 몰인정한 나라라고 폄하한다. 이처럼 서로간의 목적과 바람이 다른 만남이었기에 결과적으로 서로의 갈등을 초래했고 불신을 자초하게 되였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에 다녀올 수 있는 사람들이 필경 소수였고 한국기업체의 중국진출과 한국인의 중국관광도 제한적이었기에 부정적 영향력의 사회적인 효과는 파급적이지 못하였지만 일종 불신을 키우는 과도기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절대다수 조선족사람들이 한국에 나가려는 동기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이며 일본이나 러시아장사를 떠나는 것과 원칙적인 차이가 없었다. “앉아서 1년 벌 것을 나가면 한 달 지어 일주일이면 벌 수 있다는데 왜 안 나가” 이것이 바로 한국행을 바라는 조선족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고 박절한 욕망이었다. 이러한 욕망을 실현코자 조선족사회에서는 가짜결혼, 노무송출이 붐을 일으켰고 밀입국사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조선족사회에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행을 원했고 한국에서 불법체류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고국에 대한 미련이나 친지들과의 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돈을 떠난 한국방문이나 한국체류는 너무나도 무의미한 것이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외국인고용허가제나 조선족을 상대로 한 방문취업제 도입에 의해 불법체류현상은 거의 소실되어 가고 있지만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경제적인 격차가 계속 유지되어 가고 조선족사회에 있어서 방문보다 취업이 여전히 일차적인 목표로 되어 간다고 할 때 이러한 인식은 앞으로 상당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아진다. 

2.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교류

  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교류는 모종 의미에서 보면 역사적인 필연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중국사회의 개혁개방정책의 실시와 중한수교 및 탈냉전시대에로의 진입, 혈연적 ․ 문화적으로 이어진 동족의식 등 요소들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교류가 막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과의 교류는 사실 중국조선족사회에 있어서 경제적 부를 창조하고 선진적인 문화를 습득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데 있어서 절호의 기회로 되었다. 조선족사회구성원들은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시야를 넓혔고 시장경제의식을 높였으며 선진적인 기술과 경영관리방식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국내에서는 감이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경제적 부를 이루었고 개체업종에 종사할 수 있는 원시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체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가져오게 되었다. 

(1) 교류가 가져다 준 긍정적 측면
  전체적으로 보면 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교류는 조선족의 경제이익을 포함한 각개 영역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영향의 파급적인 효과는 바로 조선족사회에 휩싸인 “한국붐”이다. 한국과의 다방면의 교류는 조선족사회에 경제적인 혜택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신선감도 가져다주었다.
  우선 문화영역에서의 교류를 통하여 동족으로서의 문화적 공동체기반을 형성하였다. 한국과의 교류는 조선족사회에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으로부터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적인 융합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조선족사회는 한국과의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자체민족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자체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재정립하고 소실되어 가고 있던 민속문화 발굴 및 보존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지금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족 거주지역에는 한국으로부터 전수받은 음식문화(한식), 거주문화(한신아파트 등 회사에서 창도한 온돌문화 등), 복식문화(개량한복) 등 민족전통문화를 선호하는 붐이 일어났으며 사물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선진적인 현대문화와 시민의식도 조선족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었으며 조선족구성원들이 시장경제에 걸맞는 현대의식구조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음, 경제영역에서의 교류와 협력은 조선족사회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에도 디딤돌을 마련하였다.
  연변을 주요 지역으로 하는 조선족들의 거주지는 대부분 교통이 불편하고 경제적인 토대가 빈약한 지구에 분포되어 있으며 중국에서도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속한다. 한국과의 교류와 협력으로 조선족사회의 경제는 점차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주민의 생활수준도 빠른 속도로 호전을 가져왔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투자로 하여 조선족사회의 공업, 농업, 목축업, 서비스업 등 분야가 빠른 증장태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곤경에 처했던 기업들도 한국 기업계와의 합자 또는 합작으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한국산업연수를 통해 자체의 기술수준을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취직한 조선족일군들은 현대적인 기업관리와 기업문화를 접하게 되었으며 이는 향후 조선족사회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술관리인재대오의 형성을 위해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한국기업 또한 중국시장진출에서 조선족사회의 인적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였고 조선족사회는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을 위해 디딤돌역할을 하였으며 한국 기업체들의 중국에서의 정착과 개발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2) 교류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한 분석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본격적인 교류는 시작되면서 서로의 이해와 신임이 깊어가야 할 대신 누구도 원치 않는 불신과 갈등도 상당한 정도로 노출되었다. 초기의 초청사기사건이나 강탈사건으로부터 선상살인사건까지 빚어지고 있으며 이른바 국적포기운동까지 벌어지었다.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은 그 어느 일방의 책임이라 할 수 없다. 
  김재국씨가 《한국은 없다》란 책에서 진단한 “한국병”에도 문제가 있지만 우선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찾아야 할 문제점도 상당히 많다. 자신의 출국 꿈을 이루기 위해 위장결혼까지 마다하지 않는 행실은 어디가나 저주받아야 할 짓이다. 그리고 중국조선족이 한국에서 수모와 천시를 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인들은 또한 조선족사원에 대해 그들로서의 고충이 있다. 중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중국조선족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조선족들은 믿기 어렵다. 기회가 있으면 기업의 재산을 빼돌려 제 욕심만 챙기려 들며 기업정신이 박약하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려 하는가 하면 한국기업 하면 무조건 처음부터 관리직에 높은 보수를 요구한다. 잘못을 승인할 줄 모르고 언제나 변명하려고만 든다.” 이는 양자 간의 교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냉철한 반성이 필요함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지난날 교류과정에 있어서 동일민족이란 전제에 너무 매달려 있었고 거기에 너무나 큰 기대를 가졌기에 동족간의 다른 한 측면 즉 우리가 상이한 사회문화 환경에서 생존해 왔다는 현실을 망각하고 있었으며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화폐의 논리를 벗어나 있었다. 조선족은 비록 한국인과 동족이라 하지만 필경 중국에서 백여 년간 생존해 왔었고 특히 새 중국이 성립된 후 조선족의 가치의식이나 전반 사회생활은 사회주의문화가치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따라서 조선족사회성원들의 가치의식이나 생활양식 등은 모두 사회주의라는 대문화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바 피상적인 면에서는 조선족이나 한국인의 생활방식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내면세계에 들어가 보면 그 實은 매우 相異하다. 
  다시 말하면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던 사회주의문화의 영향은 모국의 전통문화영양을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는 문화적으로 동질성 못지않게 이질적인 면도 강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同族이라는 순박한 동기에서 출발했기에 일단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자연히 두 가지 부동한 가치의식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불법체류로부터 이어지는 산재보상, 노임체불, 직장이탈, 가짜결혼, 사기, 강탈, 살인 등등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물론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인 조정을 거치거나 혹은 외교적인 도경을 통하여 해결을 볼 수 있겠지만 이러한 해결은 어디까지나 외부 환경개선에 불과하다. 서로간의 내심의 불신을 해소하고 상호 신뢰와 이해를 가져오려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또한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는 부동한 체제와 이념을 갖고 있었고 상당한 시기에 교류가 단절되어 있었다. 중국조선족은 오래 동안 사회주의적인 생활방식에 익숙해 왔지만 한국은 전혀 다른 세계이다. 때문에 비록 동일민족이라 해도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사유방식이 다르기에 일상생활에서도 알다 모르게 가치충돌을 일으킨다. 한국사회의 권위주의 의식, 지나친 자아중심주의, 대인관계에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위계질서 등등은 중국조선족들에게 있어서 쉽게 접수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보다 일찍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사회는 특정한 역사 환경으로 인하여 서양문화, 특히는 미국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직장이나 일상생활용어에 많은 외래어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조선족사회에 동족사회 아닌 또 다른 세상이란 느낌을 가져다준다. 
  상술한 역사와 문화적 단절, 상이한 사회제도의 경험, 경제생활의 격차에서 오는 심리적 불균형 등으로 하여 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교류과정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노출되고 대립적인 정서까지 야기되었는바 이는 향후 넘어가야 벽으로 되고 있다. 

(3) 한국사회와의 교류와 조선족정체성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조선족이라는 공식적인 호칭은 단순 혈연적, 문화적 공동체만은 지칭하는 것 아닌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의 소속성원이라는 새로운 속성도 나타낸다. 공동체구성원들의 국적사항변동은 자연히 조선족의 문화귀속 내지는 정체성문제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현재 중국사회라는 생존무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밖에 없는 조선족의 문화가치의식 및 그에 따른 정체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중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조선족은 중국공민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중국조선족이란 낱말 자체가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실 원론적으로 접근해 보면 한 개 사회집단이나 민족의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라는 논리에 따라 주체성을 논의한다면 조선족의 정체성문제도 타민족집단과의 관계라는 틀 속에서 규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따라서 조선족이라고 호칭되는 민족공동체가 지닐 수 있는 정체성은 다원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중국 내 기타 민족과 구분되는 민족 집단으로서 조선족공동체로 상징되고 있으며 국적귀속이란 차원에서 본다면 중국공민이란 정체성도 지니게 되며 국민이란 점에서 중국 내 기타 민족과 동일하게 국가주류문화의 예속을 받게 된다. 다른 일면 역사적, 혈연적 근원과 문화적 맥락을 따진다면 또한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부정해서는 아니 될 것인즉,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조선족은 다원화한 정체성을 소유한 특수한 공동체적 존재이다.
  조선족사회구성원들은 사실적 혹은 법적인 차원에서 중국공민으로 규정받았었지만 문화적,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중국의 한 개 민족이라고 인정하는 주체적 재확인, 나아가서는 중국사회구성원들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받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었으며 조선족구성원들이 자체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정할 수 있는 타자도 주요하게 한족을 비롯한 국내 기타 민족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과의 교류과정에서 같은 민족으로 당연히 같은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해 왔던 조선족구성원들은 오히려 한국인과의 교류를 통해 동일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차이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지어 소외감에서 오는 이질성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은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임을 재확인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른바 중국조선족이란 낱말로 자신을 한반도에 있는 우리민족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공동체라는 논리를 펼치게 되었다고 보아진다.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한족을 비롯한 중국내 기타 소수민족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아정체성을 확인해 오던 조선족구성원들은 한국과의 교류를 시작하면서 "나는 누구인가"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안 찾기에 다시 고심하게 하였다. 소수민족으로서의 엄연한 변계성, 한국과의 교류과정에서 실감한 소외감, 그리고 자신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구성하게 된 정치적 역사적 조건과 관계에 대한 총화에서 얻어진 답안이 바로 중국국민이면서도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중국조선족"이라는 용어이다. 그러면서도 모름지기 중국적이란 점에 비중을 두면서 한국인과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현재 다수 조선족성원들의 심성이라고 할 수 있다.

3. 남북교류와 조선족
  조선족은 혈연적인 유대성과 지역적인 인접성, 그리고 문화적인 공통성으로 인하여 한반도와 끊을 수 없는 연대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의식에 기초하여 조선족은 조선이 어려운 식량난을 겪고 있을 때에도 여러 가지 도경을 통해 식량지원을 하였으며 한국기업체들의 중국진출과 한국산품의 중국시장개척을 위해 열성적인 홍보를 해왔다. 뿐만 아니라 조선족은 자신의 독특한 우세를 충분히 발휘하여 여러 가지 문화체육행사를 조직하여 남북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었고 나름대로 남북교류를 위한 중개자 역할을 담당해 왔다. 
(1) 남북교류와 조선족
  남북의 분단 상황은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가치의식의 갈등을 증폭시켜 왔는바 양자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중개역할도 크게 기대되는데 조선족사회는 이 면에서 자체의 우세가 있다.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장기간 생존해 온 조선족은 사회주의적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사회주의적 문화가치의식이 조선족사회 생활방식의 내용과 형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조선족은 과거에 익숙했던 민족의 전통적 문화가치의식과 추구를 토대로 사회제도적 차원과 이념적 차원의 가치의식을 수용하였면서 이른바 조선족문화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조선족은 현재 남과 북과 다른 자체의 문화권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족문화 내면에는 남과 북의 문화적 정서와 요소가 다분히 담겨져 있으며 이는 조선족사회가 남북교류에서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으로 되고 있다. 
  한편 중국이란 거대한 다민족문화권에서 조선족사회가 자체의 민족공동체를 유지하고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한(조선)반도로부터 오는 “문화후원”과 갈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남과 북의 분단은 냉전시대의 정치적인 요소와 대립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중국 국내정치기류 등의 복합적인 요소와 함께 조선족사회로 하여금 남한과의 정상적인 문화교류를 이룰 수 없게 하였고 남한이란 중요한 민족문화자원을 상실케 하였다. 결국 반도에 있는 한민족구성원들 못지않게 조선족사회구성원들도 냉전이란 대립구도 속에서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별거”중인 양친을 타의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시대적 여건 속에서 건국 후 냉전종식까지 조선족문화 제 분야에 직접적인 문화후원을 보여준 것은 북한이었다. 당시 많은 예술인재들이 북한에 가서 연수를 하였고 북한에서 출판한 문학작품들 또한 건국 후 제1대 문학인들 성장에 훌륭한 밑거름으로 되었으며 “꽃 파는 처녀”를 비롯한 “북류”는 민족적 긍지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족했다. 특히 언어문법규범화는 오늘날까지 학교조선어문교과목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차원에서 조선족문화는 북의 문화와 많은 유사성을 보여주었는바 이러한 유사성으로 하여 조선족구성원들의 삶에서 체현되었던 문화적 요소들은 조선족사회와 남한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남한에서 북한문화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초로 되었다.
(2) 남북교류에서의 조선족 역할 
  비록 남과 북은 분단이 시작된 그날부터 모두 통일을 최대의 정치적 현안으로 보아왔었고 민족의 최대 소원으로 간주해 왔었지만 오늘날까지 서로간의 신뢰를 쌓지 못하고 있고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남북정상회담 및 6.15공동성명과 같은 역사적인 성과를 이룩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북관계는 여전히 진정한 해빙의 기운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단된 역사를 종말짓고 민족의 대화합을 이룩하고자 남북 모두 통일을 제일가는 과업으로 보고 있으며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상당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간의 당국자접촉은 필경 “국가 대 국가”, “정부 대 정부”라는 외교적 색채가 짙은 행위인 만큼 구체적인 정책결정과 실천행위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외교적 관례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민족이라 해도 서로 상이한 국익을 대변하고 있는 만큼 각자의 주권과 이익에 위배될 때 남북교류는 단절의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다. 
  현재 남북 당사자 간의 교류가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차원의 대화와 함께 보조적인 수단으로 민간차원에서의 접촉과 교류를 병진해야 함이 절실히 요청되며 그 대안으로서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적극적인 공조와 역할이 기대된다. 사실 그 동안 조선족은 남북간의 교류를 위해 중요한 매개 역할을 감당해 왔었으며 남북의 만남의 장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그 동안 조선족사회에서 남북한 교류를 위해 감당했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면으로 귀납할 수 있다. 
  첫째, 남북간의 상호 이해를 촉진시켰다. 중개자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우선 그 대상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남북한과 혈연관계를 갖고 있고 아직도 상당수의 조선족이 남북에 친지들을 두고 있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조선족은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은 남북을 드나들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교류의 상대인 남북사회에 대해 단순한 동족의 차원을 벗어난 심층적 이해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울러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조선족은 자신의 중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족과의 접촉을 통해 남한 사람들은 북한 실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며 북한 사람들도 친척방문 기회를 이용하여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상품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남한사회의 발전상황을 실감하게 되었다. 
  둘째, 남북간 “만남의 장”을 마련하였다. 중개자 역할에서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는 “안으로 청해 들이기”인데 조선족은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제․문화교류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모임을 조직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남북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게 되였다. 이러한 “만남의 장”을 이용하여 남북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북은 상호 신뢰를 쌓게 되었고 상대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게 되었다.
  셋째, 남북이 현재 시도하고 있는 문화적인 통합의 “시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실행하였다. 개방이후 남북을 드나들면서 이념과 제도적 차이를 벗어난 가치의식이나 생활방식에서의 여러 가지 갈등을 겪은 조선족의 경험은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한에 있어서 모두 귀중한 자산으로 되고 있다. 
  넷째, 문화이질성으로 발생한 갈등해소와 이를 위한 문화전환역할을 하였다. 중한동포사이 교류와 협력과정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점들은 중국과 한국간의 실제적인 경제생활수준의 격차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놓고 보면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문화가치의식의 차이에서 발로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문화가 조선족사회에 전파해 올 때 조선족사회는 한국문화에 대하여 상당한 착각을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즉 동족이고 같은 문화의 소유자라는 관념에 사로 잡혀 그 문화적인 차이점과 수십 년간의 단절상태가 가져온 후유증, 그리고 제도적 차이로 인한 가치의식의 차이에 대한 준비가 절대 부족하였다. 그 결과 내면적인 교류가 시작되자 조선족사회는 먼저 문화 이질화라는 장벽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과 조선족사회가 혈연적인 관계로 인하여 민족문화근성에서 동질성을 띠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거주국의 속성에 따라 정치이념과 사회제도적 차이로 인해 서로의 이질성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시대성에 기인한 차이성도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대성에는 시간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겠지만 문화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더 짙다. 즉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는 모두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70년대에 앞서 신진공업국으로 전환했고 현대화한 산업문화, 도시문화에 익숙하고 있지만 조선족사회의 다수 성원들은 여전히 농업문화에 젖어있고 시장경제의식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현재 남북을 대조해 본다면 그 격차는 오히려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남북간의 상호교류과정에 있어서 조선족사회가 경험했던 일들이 쉽게 재현될 수 있으며 그 파급적인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어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자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서로의 의사소통을 윤활하게 해줄 수 있는 전환계통이 수요되는바 여기에서의 적임자는 이미 남북과의 교류과정에서 남북의 생활방식과 문화환경에 비교적 익숙한 경험을 갖고 있는 조선족사회라고 지적해도 과분한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 조선족사회는 남북간의 교류에서 자신의 문화전환계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양자간의 시각적인 차이와 표현상의 오해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서로간의 교류와 협력를 보다 활성화하였다.

4. 한민족네트워크구축과 조선족
 
  오늘날 사람들은 이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틀에 얽매인 사유패턴에서 벗어나 가치추구를 위한 문화담론을 즐기며 문화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고찰하고 사고하기를 즐기고 있는데 그 주요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보편적인 인류의 시각에서 지구촌의 운명을 걱정하고 하나의 인류공동체를 위한 자세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또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를 다져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경도 역시 문화협력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국경을 뛰어넘는 경제교류와 문화협력에 주력하는 지역블록이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지역경제공동체나 문화협력체는 이미 국가와 민족이 재생의 길을 모색하는 주요한 방편으로 되고 있다. 현재 우리 민족은 세계 140여 개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 한반도와 주변 강대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부를 창조하고 문화적인 품위를 높이며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민족에 있어서 말 그대로 엄청난 자본과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민족의 인적자원과 문화자원을 보다 효과성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민족네트워크를 권장하고 실천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1) 한민족네트워크에 대한 문화적 접근
  네트워크를 통한 한민족문화의 장은 과거의 정치이념에서 출발하는 민족공동체가 아니고 지리적인 환경에 예속되는 지역공동체도 아니며 현재 인터넷상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가상공동체도 아니다. 우리가 권장하고자 하는 문화적인 민족화합의 장은 정보와 통신을 주요 수단으로 우리민족 개개성원들이 주체적인 자각과 참여로 형성되는 한민족네트워크를 의미하는바 한민족네트워크는 정치적인 이념요소나 민족주의적인 발상보다 문화적인 통합과 협력의 성격이 더 농후하며 우리 민족의 공동한 발전과 번영의 추구를 지향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화합의 장의 마련은 이질적인 문화계통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한민족네트워크 형성에 있어서 첫째가는 필요사항이 바로 문화갈등해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갈등해소는 절대 이질적인 요소에 대한 간단한 배척이 아니라 오히려 이질적인 요소들에 대한 긍정과 수용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이질문화에 대한 포용력이다. 
  범민족적 의미에서 놓고 볼 때 세계 속에 살고 있는 한민족은 모두 동일민족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문화적인 淵源도 같다고 하지만 한반도를 떠나 이국타향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과거의 전통문화에 대해 거듭되는 變異를 거치면서 자체의 독특한 문화계통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의 경우도 사실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사회와 마찬가지로 역시 하나의 뿌리에서 성장한 서로 다른 문화가지에 불과하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한반도를 떠나 중국 땅에서 살아 온지 이미 한 세기가 넘었지만 언어, 문자, 풍속습관, 윤리도덕, 심리기질 등 여러 면에서 한민족의 민족적 정신과 문화적 특질을 고이 지켜왔을 뿐만 아니라 200만 인구가 상부상조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민족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민족공동체로서의 조선족사회는 그 문화적 바탕에는 당연히 주체적인 자각과 유전자를 통해 이어 온 한민족문화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을 근간으로 민족의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수 있고 또한 이를 토대로 중국 신민주주의, 사회주의 문화가치의식을 수용하고 통합하여 적극적인 문화적 변이를 거듭하면서 시대발전에 따라 자기민족의 시대적 정신을 체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구축하였는바 필경 그 동안 한반도와 문화적인 단절이 심했던 만큼 서로의 이질성적인 문화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며 결국 이런 이질성으로 하여 현실 교류에서 우리는 문화적인 갈등을 겪어야 했으며 이러한 갈등해소를 위해 고민해야 했다. 
  그러므로 비록 동족간의 교류라고 하지만 필경 문화적 이질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는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문화적인 융합을 형성할 수 있는 포용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대적 차원에서의 민족문화를 공유하지 못하고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설사 그 어떤 정치적 혹은 물리적인 수단이나 혹은 경제적인 이익의 충동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이룰 수 있다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속에 얽히고 맺힌 한을 소거하고 서로의 사랑과 믿음을 키워가는 화합의 장을 건립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새로운 아픔의 장벽이 세워지게 될 것이며 심리상, 정서상에서 오는 이질감은 실생활에서 오는 충격으로 오히려 대폭 증가할 수 있다. 
  다음,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화합의 장으로서의 한민족네트워크는 우리 민족의 공동한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시대성에 초점을 맞춘 미래지향적인 문화가치의식을 구심력으로 하여야 한다.
  한민족네트워크의 형성에 있어서 문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화는 일종 경쟁력으로서 정치 경제발전의 저변을 이루며 또한 민족생활 단위의 원천적인 본체로서 민족공동체발전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동북아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우리민족의 자연적인 우세를 이용하여 이제 곧 형성될 동북아정치경제무대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우선 먼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을 하나로 결속할 수 있고 전 민족의 지혜를 모아 공동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장을 마련하려면 또한 국가나 지역적인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공동체의식을 양성해야 하는바 이런 공동체의식은 공동한 가치의식을 기초로 형성되어야 한다. 가치의식문제는 결국 문화의 핵심문제이므로 위에서 제기한 초국가적, 초지역적인 장의 형성은 곧바로 공동체문화의식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한민족네트워크는 동북아지역을 중심으로 세계 140여 개 나라와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민족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확대된 민족의식과 새로운 가치의식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이다. 한민족네트워크는 한민족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도 협애한 민족주의적인 것을 벗어난 세계화의 지향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민족네트워크의 핵심적인 기조는 그 어느 특정 지역보다 지역적인 공간을 벗어난 문화적 가치의식이어야 한다. 현재 중국조선족사회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민족은 비록 한민족의 특성과 주체성은 갖고 있지만 거주지역이 부동함에 따라 전통적인 민족문화기반 위에서 거주지역문화와 인류역사문명의 성취를 섭취하여 특색 있는 자체문화를 형성하고 지켜왔고 각자의 특수성을 보유하고 있기에 문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관점과 구상, 방법, 지향이 복합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민족발전을 지향하는 가치의식의 확립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구심력으로 화합의 장을 형성해야 하고 각자는 자기의 특수성에 기초하여 이에 접근하는 도경을 모색해야 한다. 
  총적으로 놓고 보면 한민족네트워크에서 주요한 것은 문화협력이다. 한민족의 문화는 우리의 조상들이 한반도라는 주어진 자연환경 속에서 타민족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된 삶의 방식이다. 한민족문화는 외부와의 접촉으로 외래문화를 흡수 융합하면서 자기의 문화를 성장 발전시켜 왔는바 거주지를 달리할 때 즉 외부의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이 달리할 때 민족문화도 그에 따른 문화적인 변이를 거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문화의 접변이라 하는데 조선족의 경우 중국에 거주하면서 중국문화를 접하게 되고 그 문화를 흡수하고 자기의 것을 변형하여 가는 와중에 오늘의 조선족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한민족네트워크형성은 우리들이 문화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고 공동의 민족적 사명의식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공감대를 확대하고 이질성에 대한 이해와 포옹을 나누면서 협력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동일민족으로 같은 혈통을 이어왔다고 하지만 거주국의 상황차이로 하여 문화적인 측면에서 상이한 점들이 많으며 지어 서로 대립되는 면도 있다. 간단히 비유한다면 우리민족의 문화는 현대에 와서 이미 하나의 뿌리에서 다양한 문화가지를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지에 왕성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한민족네트워크가 펼쳐가야 할 역사사명인 것이다.

(2) 한민족네트워크와 조선족문화
  그렇다면 문화적 화해와 공존, 문화적 가치의식, 민족의 공동발전 추구 등을 기본이념으로 구축되고 있는 한민족네트워크는 조선족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조선족사회는 여기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한민족네트워크는 우선 조선족사회의 문화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조선족사회는 민족언어, 집거지, 경제생활 등 여러 면에서 전례 없는 충격을 받고 있으며 향후 우리가 민족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심상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사회를 단지 한 개의 고립된 사회실체로 볼 때 이러한 우려가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보다 넓게 한민족네트워크 범주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 대안제시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조선족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한민족과의 교류가 활성화됨에 따라 그 동안 단절되고 고갈되었던 문화뿌리에서 또 다시 영양분을 공급받게 되었고 광합작용을 통한 자생적인 영양섭취와 한반도에서 오는 영양공급으로 조선족사회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문화융합을 해야 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문화적인 성격에 대해 오늘날 학계에서는 “중국특색의 조선족문화”라고 이름 짓고 있다. 물론 조선족문화의 기본특징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금후 발전방향의 초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 오늘날 조선족문화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필경 자체의 문화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의 기타 한민족과의 교류가운데서도 그 차이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기왕 우리는 공동의 역사 소유자인 이상 우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소통을 통해 민족을 애착하게 되고 긍지감을 느끼게 되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민족정신의 계승과 발전에 있어서 우리는 목표지향이 일치한 것이다. 이러한 목표지향의 일치성을 위해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동참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중국 내 기타 민족을 의식하고 또 이들을 준거로 자체문화의 성격을 조선족문화로 자각하게 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네트워크를 통한 세계 한민족과의 교류를 통해 조선족문화의 특색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바 이는 조선족문화건설에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다음, 민족문화의 보존과 시장 확장에 유리하다.
  현재 중국사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는 우리들의 생활환경을 크게 개변시켰으며 생존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선족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 조선족사회는 인구이동과 인구자연증장율의 하강 및 교육이념의 공리화 등 원인으로 하여 자체민족문화의 전승에 있어서 전에 없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많은 조선족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 진출했고 인구의 분산과 집거구의 해체, 축소와 상실을 초래하였다. 도시와 해외의 진출은 조선족개개인에 있어서 어찌 보면 좋은 기회로 되고 있다. 우리는 하루속히 중국사회전환에 발맞춰 농경민족으로부터 산업민족으로, 촌락민족으로부터 도시민족으로 전환하여 현대문명의 행렬에 가입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단순한 눈앞의 이익과 고루한 민족보존의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촌락에 안주하여 농경생활에 만족을 느끼면서 보수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문화근거지를 지킨다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계문명에 뒤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조선족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에 따라 우리 조선족의 문화사업도 이전처럼 집거지역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을 상대로 하는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전환을 추진하고 효과성 있는 사업을 벌리려면 조선족사회에 대한 기존의 영토와 거주지 중심의 집거개념을 떠나서 네트워크에 의한 공동체의식을 키워야 하며 네트워크에 의한 문화전승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네트워크에 입각하면 우리는 민족언어 시장을 확대할 수 있고 자기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체민족성원들에 대한 민족의식교양을 실시할 수 있으며 민족의 문화적 생존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민족교육의 실시와 보급에 유리하다. 
  현재 조선족사회에서는 기존의 집거지가 해체되고 인구증장율이 하강됨에 따라 문제시되고 있는 학생래원의 고갈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하여 학교운영이 점차 어려워지고 상당수의 조선족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민족교육위기”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고 이러한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산재지구에서 민족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엄청난 자금난, 학생래원 문제, 학교시설 등 여러 면을 고려해 볼 때 산재지구에서 조선족학교를 새롭게 세우는 것으로 현재의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실제를 이탈한 발상이 아닌가고 생각된다. 사실 민족교육에 있어서 진정한 위기는 민족교육이념에 있다고 보아진다. 즉 민족학교 교육에서 어떻게 조선족으로서의 민족의식교육을 진행하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선 폐쇄된 울타리식 교육에서 개방된 열린 교육에로의 이식전환을 실현하여 사이버시대에 걸맞는 민족교육패턴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상 오늘날 조선족사회교육발전의 진정한 걸림돌은 기존의 민족교육이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직껏 우리가 자랑으로 여겨왔던 민족교육은 우리말과 글로 교수할 수 있는 학교를 운영해 왔다는 것이 전부였다. 교수내용은 기본상 전일제학교교학대강에 따르다 나니 민족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민족의식을 키워줄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조선족학교에 다니는 유일한 장점은 조선말과 글을 배울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네트워크를 통해 현대통신수단을 이용한 교육방식은 학교운영보다 교학 내용이나 방법상에서 보다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있게 되고 학생 자체도 자신의 실제에 알맞는 내용을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정보와 통신의 시대인 만큼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고속도로를 사용하게 되며 새로운 시공간 수립이 필요하다. 우리의 집거구는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되고 네트워크를 통해 교육을 진행하고 생활하게 될 것인바 네트워크는 장차 우리들의 문화교육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한민족네트워크의 형성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는 조선족사회가 세계선진문화를 수용하고 현대화이행에 유익한 것이다.
  민족을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이해할 때 민족의 운명에 대한 관심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특정된 문화의 평화적인 연속, 자주적인 발전과 번영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영은 민족구성원들의 행위를 통해 표현되고 현실화되고 있는바 오늘날 조선족사회에 일고 있는 도시로 해외로의 진출은 농경문화에 대한 반역과 새로운 도시문명과 현대산업문명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가난에서 해탈되고 보다 부유한 삶을 추구하자는 가치전향은 많은 경우 중국사회의 적극적인 진출로 이루어지게 되며 따라서 중국어를 실용적인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족의 동화를 가속화하지 않느냐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에 참여하게 되면 상술한 가치전향을 자기민족언어를 통해서 능히 실현 가능할 수 있고 자기민족언어와 문자를 통해서도 세계의 선진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족사회가 현대문명에로의 합류를 가속화하게 되고 자체민족문화에 대한 애착심도 키워갈 수 있게 한다. 

5.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교류활성화를 위한 대안

  21세기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념대결의 소멸과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달은 국경과 주권의 개념을 점차 모호하게 하면서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 “하나의 일일생활권”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국제화, 세계화가 시대의 조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지구촌에는 화교문화권, 유럽공동체, 이슬람문화권과 같은 생활권과 문화권중심의 새로운 지역블록과 공동체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21세기에 있어서 각 민족, 각 국가의 생존은 이러한 세기적 변혁에 직면하여 어떻게 민족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민족과 국가구성원의 역할을 결집하고 에네지화 하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우리는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선족사회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보면 일반적으로 한국은 우리의 고국이고 한국국민은 우리와 같은 핏줄을 나누고 같은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온 동일민족이라는 것이다. 한국과의 교류에서 조선족사회는 확실히 많은 혜택을 보게 되었고 한국도 중국시장의 진출에 있어서 조선족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근 반세기동안의 단절과 이념대결로 인한 가치의식의 대립은 서로의 교류과정에서 마찰과 갈등을 빚게 되었고 비극도 연출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요소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인 이질성으로 하여 초래된 것이다. 어찌 보면 조선족은 한국을 경제발전국가로 인식하고 한중교류의 증가에 따라 중국조선족사회가 한국의 경제적 도움과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속에 친한국 의식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조선족입국과 국내 불법체류에 대한 한국정부의 단속이 심하고 조선족이 한국에서 받은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 그리고 중국방문에 나온 일부 한국인들의 추태상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 등으로 하여 조선족사회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중국조선족이라는 입지를 더욱 굳혀가게 하였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 인간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키워야 한다.
  근 반세기에 가까운 단절상태는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로 하여금 이질성적인 문화특성을 배출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이질성에 대한 준비부족으로 하여 우리는 현실교류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빚게 되었고 서로의 불신감을 자아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양자간의 경제문화교류를 앞으로 보다 활성화하고 규범화하여 서로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각자의 올바르지 못한 자세와 선입견을 포기하고 오늘까지 진행되어 왔던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문화교류상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며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건전한 문화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1) 윈-위적 시각에서 접근해 보는 대안
  현재까지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와의 문화교류는 그 대부분 인적왕래를 통해 실현되었고 한국인은 조선족을 통하여, 조선족은 한국인과의 만남을 통하여 상대사회를 알게 되고 평가하게 된다. 
  조선족의 경우를 놓고 보면 이들이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접하게 되는 경로를 주로 두 가지로 귀납할 수 있다. 
  하나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을 통하여 한국사회를 알게 되었고 이들을 통하여 한국인의 인품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중국에 진출한 일부 개명치 못한 한국기업인이나 관광객 지어 학자, 교수들의 바르지 못한 행실과 불손한 언사가 조선족사회에 일그러진 韓國像을 그려놓은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국외에 나가면 그 사람 자체가 개인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를 대표하게 되는 만큼 자연히 그 사람의 행실을 통해서 그 나라를 알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 온 일부 한국인들은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공동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먹칠하는 온갖 추태를 연출하고 있다. 중국에 출입하는 한국상공인들은 흔히 “중국에 온 목적은 돈 버는데 있지 않고 중국의 개혁개방과 조선족사회의 향상에 기여하는데 있다”고 하지만 중국조선족을 상대로 이익을 챙기거나 가짜 초청장을 뿌리고 가짜 노무송출을 조작하여 수백만 원을 사기하는 자들이 비일비재이다. 한국인의 사기사건들은 이젠 다시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는 폭탄뉴스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조선족들의 출국심리를 이용하여 사기 치거나 돈 자랑을 하면서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깔보고 지어 인격적인 모욕까지 마다하지 않는 인간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소행으로 인하여 돈만 알고 인정도 동포애도 없는 韓國人像이 조선족사회에 자연히 만연되어 가게 되고 따라서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게 되며 한국은 이제 다시 우리들이 그리던 고국이 아니게 된다. 만약 중국이 부유해지게 되고 일본이나 기타 나라들에 나갈 수 있다면 그 누가 한국을 가려고 하겠는지 정말 의문스럽다.
  조선족사회가 한국사회를 알게 되는 다른 하나의 길은 한국에 드나들었던 사람을 통해서인데 이들이 한국에서 당한 천시와 설음은 한국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균형을 잃게 한다. 중한교류이후 특히는 중한수교이후 한국에 나가는 조선족인수는 급격히 늘어났으며 이들 대부분이 거액의 자금을 들여가면서 한국수속을 밟았기에 국내에서 진 빚만 갚으려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에 입국할 때 이미 불법체류를 각오한다. 국내에서의 사정이 이전에 비해 달라졌기에 출국인원 중 단순히 약을 팔아 돈을 벌려는 사람은 점점 적어지고 자기의 성실한 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비례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부분 3D(힘들고 어지럽고 위험한 일)업종에서 어려운 육체노동을 해야 했고 노동환경의 불량, 노동보호여건 부족, 노동시간연장 등에 의한 체력소모과량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기에 이들이 감수하는 위험과 설음은 누구보다 많고 마음속에 쌓여지는 장벽은 누구보다 두터운 것이다. 이들이 보는 한국은 실로 가깝고도 먼 나라인 것이다. 이들이 귀국 후 대 한국홍보는 상상할 수 있으며 이해가 갈 만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민족적 유대를 돈독히 하는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과 상대하는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족은 한국사회를 자신의 황금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천국으로 생각해 왔고 한국에 가서 항상 동포의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자그마한 마찰이 생겨도 동족차원에서 의식하고 서러움이 적대감으로 변신하여 갈등을 조성한다. 한국인도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해서 가난한 중국동포를 업신여기거나 인격을 무시해서는 언어와 행위는 삼가해야 하며 동등한 인간적인 차원에서 서로의 인격적인 충돌을 피면해야 해야 한다. 
  다음, 양 사회의 언론인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나들이를 했던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겪었던 부당한 대우거나 차별은 양자의 교류에서 또 하나의 장벽으로 되고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그것도 언어가 통하고 생활습성도 모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려는 시도로 갖은 노력을 다해 지어 불법체류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지만 그간 받은 비인간적인 대우로 하여 오히려 한국에 대한 적대의식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을 방문했던 상당수의 조선족동포들은 모국에 대한 자부심보다 한국에 대한 배신감만을 지닌 채 귀국하여 결과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조선족사회의 여론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황승연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을 경험한 후 중국동포들이 막연하게 동경했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잘사는” 고국은 그들을 똑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차별하며 그들 또한 한국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점차 그들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등의 “자집단 정체성의 새로운 확인”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중국동포들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하여 同化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한국을 경험하고 떠나는 중국동포들은 國粹쪽으로 기우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돌아가는 것은 한국에서 받은 부당한 대우 등 현실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결핍했고 사전 정보와 준비부족에 기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언론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건에 대한 세부적인 보도보다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국민의 정서를 이끌어 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경우 비록 언론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서로의 갈등에 부채질하지 말고 한국사회의 현실모습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조선족을 상대로 사실적인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는 조선족사회와 교류에서 중국조선족이 중국공민의 신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양자간의 교류는 단순한 동족간의 교류일 뿐만 아니라 중국공민과 교류하고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중국조선족은 한민족의 혈통과 긍지를 간직하고 우리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나 법적으로는 중국국적을 취득한 중국의 국민이며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중국정부의 법적 보호와 관리를 받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조선족 또한 정서적으로 자신들은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새 중국이 건립된 후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는『평등ㆍ단결ㆍ공동발전』정책을 기조로 소수민족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강화하였고 문화ㆍ교육 등 측면에서도 『민족구역자치법』에 의거하여 소수민족의 풍습을 유지하고 민족언어와 문자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소수민족의 자율권을 존중하고 장려해 왔다. 조선족에 대해서도 중국정부는 연변에 조선족자치주를 설립하도록 승인해 주는 한편 조선족의 언어와 문자교육을 장려했고 조선족 고유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중국조선족들은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에 만족을 느끼고 있으며 또한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 땅을 개척하고 건설하고 보위해 온 선민들의 피와 땀을 심심히 느끼면서 정서적으로 자신들을 중국에 귀속시키고 있는 반면 소수 한국인들이 조선족사회에 끼치고 있는 불손한 행위와 처사에 대해 당혹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조선족은 수십 년간의 사회주의를 경험하고 있었기에 의식구조면에서 한국과는 다르다. 한민족의 전통적인 예절이나 생활풍속들은 유지하고 있지만 많이 개량된 상태이고 남녀평등, 집단주의, 애국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가치의식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민족관과 국가관에 있어서 조선족은 한민족으로서의 동족의식을 갖고 있으며 자체민족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자신의 귀속을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하고 중국을 조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족의 정체의식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순수한 민족적 혈연적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조선족사회와의 문화교류에 있어서 이들이 중국 내 소수민족이고 중국국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중국 내에서의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생활ㆍ문화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예하면 조선족집거지역의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교사연수 기회를 부여하고 교재를 지원하거나 민간단체 및 기업 중심의 도서관 개설 등을 통해 한국 내 실정을 직시토록 홍보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차원의 지원보다는 민간주도의 지원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조선족사회와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사회가 한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전문 조례도 마련되어야 하며 중국에서 기업활동이나 여행을 하면서 조선족을 멸시하거나 차별하고 사기 치면서 한국의 위상에 손상을 주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해외여행 자격 제한 등의 법적 조치도 강구해야 한다.
  조선족을 상대로 한국이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투자를 할 때 조선족사회의 경제가 발전하여 중국사회에서의 민족적 위상이 높아지게 되는 것은 물론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사회 발전에 기여함으로서 한국의 국가적 위상과 영향력도 커지게 된다. 조선족사회가 중국에서 위상이 높아지면 조선족사회를 통한 중국진출도 시장확보도 매우 유리한 것이다. 조선족이 중국에서의 위상 제고와 한국의 국제정치력 향상은 상호 보완하고 상호 추진하는 양성순환의 관계이다. 
(2) 문화적 시각에서 제시해 보는 대안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다져가기 위해서는 각자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엘리트집단의 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토론과 평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를 가동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가 바로 정보의 공개화, 대중화이며 그 어떤 개인이나 모두 자유롭게 자기의 사상을 발표하고 시간 공간의 제한을 벗어나 광범위한 교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는 현실교류에 비해서 이익충돌이 적은 동시에 보다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엘리트들의 포럼을 가동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미래의 공동발전을 지향하는 전략구상을 펼쳐보는 작업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를 활용한 상호간의 문화교류를 진지하게 진행하려면 우리가 우선 갖추어야 할 것은 서로 다른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개방된 자세이고 민족의 미래를 공동으로 탐구한다는 사명의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호간의 이질적인 가치의식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으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갈등의 사회문화배경에 대해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문화적 차원에서 갈등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동시에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해야 한다. 문화학적으로 말하면 문화적인 대립과 갈등은 문화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될 수도 있다. 문화적인 갈등이 일어난다는 자체가 실제상 문화경쟁과 문화비교발전의 과정인 것이다. 문화는 배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융합성도 있다. 부동한 문화를 서로 흡수하고 융합하여 일체화함으로써 문화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 점에서 놓고 보면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간의 현존하고 있는 문화적인 갈등은 우리가 올바르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면 양자 사회발전에 모두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3) 공동체 시각에서 제시해 보는 대안
  오늘날 지구촌시대에서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한민족네트워크의 구축 및 가동이 시급한 과제라고 한다면 이 같은 과제완성을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조선족과 조선간의 특수한 관계를 감안해서 남북문화통합의 차원에서 중국조선족사회와 교류의 전략적 가치와 의의를 부각시켜야 한다. 
  중국조선족은 중국 땅에서 생존해 온지 이미 100여 년이 지났지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조선과 장기적인 인적 왕래를 이어왔다. 중국에 이주한 조선족은 그 대부분 조선과 인접한 중국 동북지역에 거주해 있으며 지리적으로 조선과 강 하나 사이 두고 있었다. 교통의 편리와 중국과 조선간의 이념적인 동질성으로 하여 조선족사회는 한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조선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할 수 있었고 조선족은 자체의 경제, 문화, 교육, 등 면에서 순조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모종 의미에서 조선족문화와 정체성의 확보에 있어서 중국정부가 소수민족 에 대한 정책적인 혜택도 있었겠지만 조선의 지원과 협력도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의 교류 및 조선족이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가능하면 조선에 전파되어 간접적으로 조선사회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을 수 있다. 중한수교이후 조선족은 남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구비하게 되었는바 모종 의미에서 보면 조선족은 한국의 실체를 조선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매개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에게 한국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알리고 이들을 문화적으로 포용하는 작업은 단순한 조선족사회에 대한 정책의 차원을 넘어서 남북문화교류와 통합의 예비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선족사회는 한민족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인적 자산, 남북통일에 있어서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계자로 보고 있다.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사회를 대하는 태도는 동포차원에서 혹은 한국의 민간외교관이라는 기대감에 그치었다. 해외교포의 중요성을 논할 때 이광규교수는 교포란 한마디로 그 나라의 민간 외교관이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해외교포는 “우리 나라의 민간외교관인 동시에 우리제품의 외판원이며 우리 문화의 홍보관인 것이다. 한국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해외교포를 5백만이나 갖고 있다. 이들은 우리 나라가 국제화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인적 자원인 것이다”고 하였다. 이런 인식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조선족사회에 대해 한국은 동포애에 입각한 적극적인 정책을 펴기보다는 남북한의 체제정통성에 대한 확보를 위한 지원세력으로 또는 정책통보나 여론무마대상으로 간주하여 전략적으로 많이 이용한 측면이 드러난다.

맺는 말
이른바 세계화라고 하는 시대에 매개 민족공동체사회에 있어서 열띤 화제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선택과 문화융합문제이다. 왜냐하면 냉전시기에 있었던 이데올로기대립에서 출발한 문화침투거나 경제력, 군사력에 힘입은 강제적인 문화주입방식과는 달리 오늘날은 교류와 대화, 혹은 자선사업이나 인도주의적 차원의 경제지원 등 명목으로 자기들의 가치의식이나 삶의 철학을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포장을 진행한 후 평화적인 방식으로 전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외래문화를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가치의식심처에서는 부동한 문화에 대한 共時적인 수용으로 인한 문화적인 갈등도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복합적이고 다원화한 문화세계에서 어떻게 자체민족의 문화특질을 영위해 나아가고 동시에 현대문명의 성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세계문명의 흐름에 동참해 나가겠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사회에 있어서도 회피할 수 없는 과제로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는 비록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반세기 동안 상이한 체제와 이념 속에서 생활해 왔기에 현재 중국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가 보존하고 있는 문화는 많은 면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그 동안의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우리는 동일민족이란 단지 우리들이 문화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원초적인 근거로 될 수 있을 뿐 현실적인 당위성으로는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사회에서 서로간의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또한 혈통에 근거한 원초적인 통합도 당연히 포함할 수 있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민족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문화적인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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