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자료실 >
제5회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학술대회 - 우리학문으로서의 동학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2-11-29 조회수 : 2575
파일첨부 : 1354182060.hwp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원류


김양식((사)충청역사문화진흥원장)


1. 들어가는 말
우리 역사는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우리 고유의 학문체계를 수립하지는 못하였다. 고려시대는 불교,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지배적인 학문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우리화를 시도하고 자기 나름대로 학문체계를 성립하였지만, 일반 대중이 공감하면서 밑으로부터 순수하게 형성된 학문은 사실상 동학이 유일하다.
그렇지만 1860년에 형성된 동학은 30여년이 지난 1894년에 발발한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사실상 더 이상의 학문적 발전을 꾀하지 못한 채 지난 20세기 서양학문에 밀려 1백년에 걸쳐 분화되고 왜곡되고 굴절되어 왔다. 
이제 20세기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서양학문 중심의 한국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독자적인 우리 학문을 모색할 시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역사상 최초·최고·최대의 혁명적 사건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실패로 단절된 동학을 재성찰하고 ‘우리 학문’으로서의 가능성을 실천에 옮길 때이다.
동학은 처음부터 우리 학문으로 탄생하였다. 동학에서 ‘東’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고유문자이다. 그것은 16세기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지리서인『동국여지승람』, 역사 책인『동사강목』,『동의보감』 등과 같은 책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실제 최제우는『동경대전』에서 동학에 대해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가히 西라고 이름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따라서 동학은 처음부터 우리 학문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에 본 발표에서는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가능성을 전망하는 차원에서 동학 원류와 지류를 우리 역사 흐름 위에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2. 동학의 창시
동학은 1860년 경주 출신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도되었다. 수운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남달리 인생의 무상함을 느기고 참된 진리를 찾아 구도(求道)에 나섰다. 그리하여 조선 전래의 유(儒)‧불(佛)‧선(仙)의 교리를 두루 섭렵하였으나, 기성 종교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음을 개탄하고 천하를 두루 섭렵하며, 음양‧복술‧민속신앙‧서학(西學) 등을 경험하며 세상인심을 경험하였다.
최제우는 32세 되던 1855년 이상한 도인으로부터 얻은 을묘천서(乙卯天書)를 토대로 수도하던 가운데, 1860년 4월 상제(上帝)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이 도를 동학이라 부르며 교도를 모았으나, 곧 관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최제우는 관의 감시를 피해 전라도 남원 은적암으로 거처를 옮겨, 이후 동학의 사상적 기반이 된 안심가, 교훈가, 포덕문, 논학문 등을 정립하고, 1862년 경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 돌아오자 많은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에 놀란 관에서는 그해 9월 수운을 체포하였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관으로 몰려와 수운의 석방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석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동학의 신도는 더욱 급증하였고, 이를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해 접주제를 실시하는 한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에게 도통을 전수하였다. 드디어 1863년 12월 관에서는 혹세무민이라는 죄목으로 수운을 비롯한 그의 제자 23명을 체포하였다. 수운은 이듬해 1864년 3월 대구감영에서 처형되었다.
수운의 동학 창도는 자각된 민중사상과 종교의 등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사람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두 자기 내면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및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 사람이 하늘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 나라를 구하고 민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 사상 등은 새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민중들에게 받아들여져 1894년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으로 발전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해월 최시형은 1898년에 원주에서 체포되어 72세로 교수형을 받았다. 그 이후 도통을 이어받은 의암 손병희에 의해 동학은 천도교로 변모하지만, 동학의 사상과 정신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여러 민족종교로 계승 발전하고 민족운동의 밑바탕이 되었다. 

3. 동학에 대한 지독한 오해
일반인의 동학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많은 사람들이 동학을 잘못 이해하고 우리 민족사에서 올바르게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첫째, 동학은 서학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서술은 거의 모든 초중등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 때문에 제도권 교육을 통해 선입된 동학 이해는 단지 서학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매우 협소한 이해를 할 뿐이다. 물론 동학이 서학에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서학이 지닌 근대성과 보편성을 두루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지닌 제국주의적이며 침략주의적인 성격을 극복함으로써 조선 사람에게 알맞으면서 조선의 역사와 전통에 어울리는 주체적인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적 창조의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둘째, 동학은 기존의 유불선(儒佛仙)의 합작품이다.
이 역시 대부분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며, 제도권 교육을 통해 이해되고 있는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동학은 단지 유교와 불교와 선교(도교)의 장점을 따서 조합한 아류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된다. 독창적인 요소가 별로 없는 하위사상이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이해는 전혀 잘못이다. 오히려 동학은 19세기 현재 길게는 수천년, 짧게는 몇 백년 전해 내려오던 우리의 전통적 사상과 정신 및 숨결을 모아 집대성한 것으로, 그 안에 유교와 불교 및 선도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특히 동학은 기본적으로 뭇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즉 ‘접화군생(接化群生)’하고자 하는 뚜렷한 가치 지향성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사상을 수용하여 이 땅의 새로운 생명사상으로 재정립해 낸 것이다. 
셋째, 동학은 종교이다.
이 역시 잘못된 이해이다. 이는 동학을, 종교화된 천도교와 일치시켜 보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동학은 학문이요, 사상이요, 철학이며 종교였다. 수운 최제우는『동경대전』‘논학문’에서, 동학은 “道로서 말한다면 하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天道요, 學으로서 말한다면 동쪽, 즉 조선 땅에서 받았기 때문에 동학”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동학은 하늘의 길을 밝히는 도학이자, 동쪽 나라 사람들이 배워고 추구해야 할 학문이었다. 
이러첨 동학은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길이요, 실천해야 할 학문으로, 기독교처럼 특정 신을 믿는 종교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한 마디로 수운 최제우가 세운 동학은 “조선의 학문, 조선의 사상”으로써 뭇 생명을 다 살리기 위한 새로운 생명사상, 사회변혁사상, 학문이었던 것이다.

4. 동학의 원류 :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뿌리
동학은 우리 역사 이천년의 저수지와 수원지와도 같은 사상이었다. 즉, 동학은 유구히 내려오던 모든 사상과 종교적 지향이 하나로 합류되어 나타난 것이다.
첫째, 동학은 우리의 고유 사상인 풍류도(風流道=國風)를 뿌리로 삼아 성립되었다. 풍류도는 ‘포함삼교 접화군생(包含三敎 接化群生)’을 지향한다. 모든 사상과 두루 소통하면서 뭇 생명을 다 살려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사상이다. 동학은 이 같은 풍류도를 후천시대의 개벽(開闢) 상황에 맞게 재정립해 부활시킨 것이다.
둘째, 동학은 우리 불교 천년의 역사를 지탱해 온 대승불교(大乘佛敎)라 하겠다. 그 가운데서도 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화쟁사상(和諍思想) 및 실천적 불교운동은 수운의 사상적 고뇌 및 실천과 통하는 바가 많다. 수운 최제우는 모든 다툼(諍)을 조화‧극복하여 화합으로 바꾸려 하였다. 
셋째, 동학은 수운의 부친 근암 최옥(近庵 崔鋈 1762~1840)으로 이어져 내려온 성리학이라는 학문적 전통이 있다. 수운은 어릴 때 부친을 스승삼아 유학을 깊이 공부했는데, 부친 근암 공은 경주 일대 선비 4백여 명과 교류하던 유명한 학자이자 퇴계성리학을 정통으로 계승한 선비였다. 그 때문에 동학의 밑바탕에는 성리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학의 우주론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의 이기론에서 출발한다. 이는 수운 최제우의 학문적 기반이 성리학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학에서는 理를 천주의 개념으로 재해석하고 氣 중심으로 접근하였다. 기의 학문적 뿌리는 성리학의 氣學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동학의 기는 영적인 실재로 보았다. 그것은 동학 주문인 “至氣今至願爲大降”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동학은 心學으로도 불리어진다. 그 이유는 한울님을 모시는 곳이 마음이고, 그 때문에 마음 수행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해월 최시형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운이 마음을 부리는가. 마음이 기운을 부리는가. 기운이 마음에서 나왔는가. 마음이 기운에서 나왔는가. 화생하는 것은 기운이요 작용하는 것은 마음이니, 마음이 화하지 못하면 기운이 그 도수를 잃고 기운이 바르지 못하면 마음이 그 궤도를 이탈하나니, 기운을 바르게 하여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기운을 바르게 하라. 기운이 바르지 못하면 마음이 편안치 못하고, 마음이 편안치 못하면 기운이 바르지 못하나니, 그 실인즉 마음도 또한 기운에서 나는 것이니라”(『해월신사법설』, ‘천지인.귀신음양’).

이와 같이 동학에서는 기와 마음을 밀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성리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리학의 또 다른 이름 역시 심학이다. 이런 면에서 동학과 성리학은 심학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동학의 경우 영적인 기를 강조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해월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심정기하는 법은 효제온공(孝悌溫恭)이니, 이 마음 보호하기를 갓난아이 보호하는 것 같이 하라. 늘 마음을 조용히 하여 성내지 말고 늘 깨어 혼미한 마음이 없게 함이 옳으니라.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한울이 감응치 아니 하고, 마음이 언제나 기쁘고 즐거워야 한울이 언제나 감응하느니라. 내 마음을 내가 공경하면 한울이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수심정기는 바로 천지를 내 마음에 가까이 하는 것이니, 참된 마음은 한울이 반드시 좋아 하고 즐거워하느니라”(『해월신사법설』, ‘修心正氣’).

이와 같이 동학은 성리학처럼 마음 수행을 매우 강조하였지만, 한울과 소통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수운 최제우는 “인의예지는 옛 성인의 가르침이요, 수심정기는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동경대전』, 修德文)이라고 하였다. 
 넷째, 동학은 17세기부터 전래된 서학(西學)의 영향도 받았다. 흔히 서학을 천주교, 즉 종교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오해다. 서학은 서양 학문 또는 서양 문명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를 비롯해 서양 학문, 서양의 정치경제, 서양의 과학기술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는 개념이 바로 서학이었다. 이와 같은 서학은 수운 최제우로 하여금 세상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며, 그 때문에 더욱 올곧은 동학 창시가 가능하였을 것이다. 
다섯째, 동학은 민간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하던 무속(巫俗)은 물론 『정감록』같은 비기도참(秘記圖讖) 사상도 수용했다. 동학은 그냥 저절로 솟아난 것이 아니었다. 유불선 삼교 사상을 사상적 창조의 기반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당시 가장 첨단 사상이던 서학마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런 사실은 동학의 사상적 기반이 매우 깊고도 다양하며, 수운 최제우의 학문적 축적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5. 나오는 말
우리 고유의 민족종교, 즉 증산교, 원불교, 대순진리회 등은 모두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적어도 동학은 우리 고유의 우주관, 생명관, 인간관, 가치관을 재정립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학이 21세기 새로운 우리 학문으로서의 가능성과 가치를 제공하고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음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학은 유교·불교 외에 민간신앙 등을 포함한 모든 역사적 흐름을 뿌리에 두고 성립된 만큼 우리 고유의 인식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
둘째, 동학은 인간 중심의 사상이다. 21세기 인류의 과제는 인간 소외의 극복이다. 그 대안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며, 동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동학은 흘러간 과거 유산이 아니라 창조적인 미래 가치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특히 동학의 시천주사상(인내천사상)은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지향하고 있어 현대적인 종교와도 부합되며, 21세기 수준 높은 영적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동학은 전통적인 三才思想의 연장선상에서 인간 평등과 자연합일을 꾀하고 있어, 오늘날 자연환경 보전과 생태계 복원에도 기여할 수 있다.
셋째, 동학은 실천적 학문이다. 학문이 학문으로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현대 학문의 대세는 융합학문이다. 융합은 학문과 실천과의 소통도 지향한다. 특히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점점 다가오는 지구의 위기는 보다 더 실천적인 학문을 요구하고 있다.
최제우는 사람이 하늘이고 하늘이 사람인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修心正氣’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불교와 성리학의 수행론에 기초한 마음 공부와 전통적인 수행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수행론은 위기에 처한 인간 존재를 새롭게 밝혀줄 방법론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그를 통해 인간의 참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 참고문헌
박맹수 역, 『동경대전』(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김용휘,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책세상, 2007).
오문환 편저, 『수운 최제우』(예문서원, 2005).
김용옥, 『동경대전 1-도올심득』(통나무, 2004).
김양식, 『새야새야파랑새야』(서해문집, 2005).
김지하, 『동학이야기』(솔, 1994)
이전글 독도문제의 ICJ 제소에 대한 학술세미나 - 일본의 ICJ 제소 배경과 전망 - 발제
다음글 제5회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학술대회 - 백포서일의 구국정신과 항일무장투쟁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