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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책임 관점에서 본 1965년 한일협정체제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4-06-11 조회수 : 5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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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책임 관점에서 본 1965년 한일협정체제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대학원 교수/상설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Overcoming of the 1965 Korean-Japan Settlement Agreement Full name of "the 1965 Korean-Japan Settlement Agreement" : The 1965 Agreement on the Settlement of Problems Concernimg Property and Claims and the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Regime and Peace in the East Asia from the Perspective of Japan's Colonial Responsibility.] 

    


목 차



 Ⅰ. 식민지청산 역사전쟁과 신냉전구조로 몸살앓는 동아시아 
 Ⅱ. 일본정부, 1965년 한일협정 체제고수로 식민지 불법통치 책임 거부
 Ⅲ. 식민지 책임관점에서 본 1965년 체제 극복과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출구전략
 IV. 맺는말 



I. 식민지청산 역사전쟁과 신냉전구조로 몸살앓는 동아시아   

  내년 2015년은 한일국교를 정상화 시킨 1965년 한일협정체결 50년 해 이자, 광복 70년 해 이다. 아직도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일본의 불법 식민통치의 미 청산으로 인해 이웃국가 사이에 역사전쟁을 심각하게 치르고 있다. 2013년 집권한 아베정권은 역사전쟁은 물론 군사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 일본평화헌법 변경에 불을 댕기고 있다. 게다가 1948년 이래 66년간 한반도 분단체제는 동아시아의 신 냉전구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식민지배 미청산과 한반도분단체제에 책임있는 주요 우방국인 미국은 국내 예산절감이라는 국내정책과 중국견제라는 동아시아전략 상 현 동아시아 평화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북한핵을 핑계로 군사대국주의를 획책해 상황을 더욱 어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현재 동아시아는 타 대륙에 비해서 지역협력과 지역평화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식민지 청산 역사전쟁과 동북아 군사적 긴장 속에서 2011년과 2012년에 한국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2가지 주요한 (헌법재판소.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하나는 2011년 8월 30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한국정부를 피고로 일본군 위안부와 원폭 피해자에 의한 위헌 심판소원 사건에서 원고인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 정부가 2005년 8월에 1965년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후에는 ‘일본의 잔존책임’을 공식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1965년 청구권 협정 제3조의 ‘분쟁(dispute)“이 발생했는데도 일본정부에게 ’외교적 경로를 통한 해결 및 중재회부 절차 Article III of the 1965 Korean-Japan Settlement Agreement: 
  1. "Any dispute between the Contracting Parties concerning the interpretation and implementation of the present Agreement shall be settled ,first of all, through dipomatic channels." 
  2. “Any dispute which fails to settled under the provisions of paragraph 1 shall be referred for de챠sion to arbitration board composed of three arbitraiors,...."
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위헌(unconstitutional)이라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가 피해자 입장을 지지하고, 한국정부의 부작위 책임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상관없이 식민지배에 따른 불법행위로 피해를 당한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지 70년 만에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받을 길이 열렸다. 일본 국가권력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관련된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일제식민지지배를 합법시하는 전제하에,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를 포함한 모든 것이 종결됐다는 일본 정부와 일본 1,2 심 사법부의 입장을 정면 부인한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강제동원 책임 기업의 책임을 면책시킨 일본의 판결이 우리 헌법의 핵심가치(1910년 한일 강제병합조약의 무효)에 반해 받아들일 수 없으며, 비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고, 소멸시효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장희,"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법적 구제 및 정책과제“ [Global Legal Issues 2012 I ],(공저)(서울: 한국법제연구원, 2012.12.),pp.201-218. 
. 
  
  위 두가지 판결에 깔려있는 핵심적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범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또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 종결되었다고 고집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근본기저에는 일본사회의 일반적 지배적 여론층의 역사정의 인식의 결여, 일본 정부(국회)의 과거사 청산 정책의 소극성, 일본의 사법부가 역사정의를 인식하지 못한 판결의 문제, 한국 역대정부의 식민지 과거사 청산 의지 부족, 미국의 일본 전범처리에 대한 소극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일간에 놓여있는 군대위안부 문제, 원폭피해자 문제, 사할린동포 인권유린문제, 독도영유권 침탈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집단적 자위권 행사문제 등의 핵심원인은 그 밑바탕에 공통적으로 과거 일제식민지 불법성의 미청산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일제식민지 불법성의 미청산은 한일간에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우호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방해물이자,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평화와 지역협력에 큰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일본정부에게 일제식민 불법통치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과 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하고, 나라가 일제식민지의 불법성을 합리화시켜주었다. 
 

II. 일본정부, 1965년 한일협정 체제고수로 식민지 불법통치 책임 거부
 
   일본정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당시의 합법적인 ‘한일병합조약’체결로 성립되었으므로 이를 근거로 한 일제강점과 그에 따른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확고하게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한 자신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Article II of the 1965 Korean-Japan Settlement Agreement :
  1. " the problems concerning property, rights, and interests of the two High Contracting Parties and their nationals(including judicial persons) and claims between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and between theirs ... have been settled completely and finally. " 
로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강변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일제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과 후속 손해 배상조치는 고사하고, 2013년 아베정부 집권 이후부터는 일제식민 지배를 오히려 미화하고, 나아가 과거 군사대국주의 부활을 위해 내각에서 헌법 변경을 통한 일본 평화헌법 제9조 확대 해석이라는 무리한 시도를 강행하고 있다. 일본의 일제식민 불법통치 미청산에 대해서는 제2차 대전이후 전후처리에서 미국정부와 한국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1946년 동경 전범재판소에서 1943년 카이로 선언(조선의 완전한 독립과 조선인의 노예상태 유의) 카이로 선언 중에 조선의 영토주권 회복에 관련된 부분은 “일본은 자신이 탐욕과 힘에 의해 탈취한 모든 다른 영토로부터 일본의 통치권은 축출될 것이다.”(Japan wii also be expelled from all the other terri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라는 구절과 일본군 위안부의 인권과 관련하여 “세지도자들은 조선 인민들의 노예화에 유의하여 ‘적적한 과정(in due course)’을 통해 자유 독립하게 될 것을 결의 한다”는 구절이다." 이 문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독도는 상기 카이로선언에서 “탐욕과 폭력”에 의해 모든 약취된 영토에 속하고, 조선인의 강제 징용은 노예화라고 보고있다..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에 따라 일본의 침략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를 엄격하게 단죄하고 처벌하지 않았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도 피해국가인 한국를 제외시키고 Osamu Ota, "Colonialism and Right to Claim between Korea and Japan in Two Treaties of Peace", Revisiting the fifty years of the agreement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II,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2012,pp.11-37. 
, 독도문제와 불법식민지배 피해자 손해배상문제를 확실하게 명시하지 못하였다. 당시 정권의 기반이 약한 한국의 5.16 군사정권도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 Article 4 of San Francisco Peace Treaty : Signed at San Francisco on September 8, 1951; came into force on April 28, 1952.
  (a)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paragraph (b) of this Article, the disposition of property of Japan and of its nationals in the areas referred to in Article 2, and their claims, including debts, against the authorities presently administering such areas and the residents (including juridical persons) thereof, and the disposition in Japan of property of such authorities and residents, and of claims, including debts, of such authorities and residents against Japan and its nationals, shall be the subject of special arrangements between Japan and such authorities. The property of any of the Allied Powers or its nationals in the areas referred to in Article 2 shall, insofar as this has not already been done, be returned by the administering authority in the condition in which it now exists. (The term nationals whenever used in the present Treaty includes juridical persons.)
의 그 후속조치인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일반 민중의 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로 한일 정상화 협상중에 무상 3억불 및 유상 2억불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압력에 밀려 일본의 식민지배 불법성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명문화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2005년 8월 26일 한일협정의 외교문서공개이후,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는 외교문서 민관합동위의 공식 견해가 표명되었다. 그 결과 한국정부는 일본군위안부, 원폭피해자, 사할린 동포문제에 대한 일본의 잔존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나 2005년 8월에 1965년 한일협정 외교문서공개를 하기 까지 한일 양 정부는 일제의 식민지배 불법성이 1965년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에서 “완전희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식민지 피해자와 관련 단체들은 학자들의 연구에 근거하여 이 문제를 꾸준히 국제적으로 이슈화하고, 나아가 일본과 한국에서 법정투쟁을 통해 2005년 한일협정 외교문서의 법적 공개를 법적으로 강제하였다. 이 2005년 65년 협정의 외교공개문서에서 유무상 5억불은 식민지배 불법성에 근거한 대가성이 전혀 없는 일본이 한국의 독립과 경제개발을 위해 준 “독립축하금” 또는“경제개발 협력자금”이라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다시말해 1965년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에서 양 정부간에 합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은 양국가간의 ‘외교적 보호권'(Diplomatic Protection)의 포기에 불과하고, 일본정부를 상대로 하는 식민지 불법지배에 대해서 피해자 ‘개인의 국제법상 손해 배상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2005년 외교문서공개이후 일본군 성노예문제, 사할린교포문제, 원폭 피해자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본정부의 잔존책임이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 공식으로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5년 이상 방치한 한국정부의 부작위책임에 대해서 2011년 관련 피해자가 헌법소원을 통해 비로소 정부의 부작위책임이 공식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문제에 대해서도 관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와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한국의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어 원심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하였다. 파기 환송심에서서도 2013년 7월 10일과 7월 30일 원고들이 모두 승소하였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대법원에 다시 상고하여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들에게 판결이 나더라도 손해배상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다. 또 일본 정부는 한국이 피해자 개인 손해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대로 주한 일본기업에 강제집행을 하는 경우에, 국제법상 국가책임에 근거하여 한국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III. 식민지 국가 책임 관점에서 본 1965년 체제 극복과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출구전략 

 세계의 중심은 빠르게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시아 미래대예측>을 통해 2050년을 ‘아시아세기’를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것인가하는 두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아시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아시아세기’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174조 달러로 세계경제의 52%를 차지하면서 1인당 평균소득이 4만 8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현재 동아시의 현재 경제력도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미래 전망도 매우 밝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지역협력이 가장 되지 않고 정치, 군사적으로 긴장되고 있다. 동아시의 지역평화와 지역협력은 타 대륙, 유럽, 미주, 그리고 아프리카 주에 비하여 현재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현재 동아시아에는 한일중간의 과거 역사왜곡문제, 영토문제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까지 겹쳐서 군사적으로 신 냉전구조가 재현되고 있다. 반면 유럽, 미주국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은 평화와 지역 협력이 비교적 매우 잘 되고 있다. 이 같이 동아시아 평화와 지역협력이 불안정한 근본 요인은 동아시아 주요국인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세 나라 사이에는 지난 일본의 식민지 불법통치가 남긴 과거 역사청산과 그 깊은 상처가 아직도 올바르게 풀리지 않고 있는데 있다. 특히 한일간에는 일본이 지난 식민지 불법통치의 범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그에 따른 후속 손해 배상은 커녕 오히려 과거의 역사왜곡을 더욱 강변하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문제, 원폭피해자 문제, 사할린교포문제 그리고 강제징용자문제가 식민지 피해 미청산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집권한 아베정권은 지난 1993년 고노담화(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초 강제성 인정)와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식민지피해 최초 반성과 사과)까지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14년 5월 15일 들어 그는 북한의 핵을 빌미로 하여 내각의 결의로 일본 평화헌법 제9조의 변경을 통한 해석 확대로 집단적 자위권를 행사를 가능케 함으로써 과거 군사대국주의로의 회귀를 강하게 획책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이러한 일본의 역사정의 퇴행을 비판하고 그 시정을 권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이 자국이익 중심의 동아시아 외교가 동아시아에서 역사정의 정립을 퇴행시키고, 나아가 신 냉전구조를 조성한다. 이러한 미국의 실책은 중국의 군사패권주의를 자극하는 심각한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북핵문제와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빌미로 하여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일간에 모든 식민지 불법지배 피해 청산은 마무리됐다고 강변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일본은 동아시아의 이러한 정세를 평화헌법을 변경하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적법하다는 전제하에 체결된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식민지책임’을 포함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가 없다. 1965년 체제는 전쟁피해자 국가책임 문제는 다루어도 식민지 피해 국가책임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 2005년 8월에 1965년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에서 명백히 들어났다.

  위의 두 판결 분석에서 식민불법지배 피해자 법적 구제의 핵심문제를 우선 세 가지 면에서 점검한다. 첫째 문제는 일본정부가 구두로는 수차례 사과를 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일제식민통치의 불법성과 범죄성을 법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로 일본정부는 강제징용피해자문제가 1965년 청구권협정 협상시에 “8개 대일청구항목” 제5호에 이미 포함되었기에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에 의해 완전. 최종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2005년 8월 한일 외교 문서 공개 이후에도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해서만은 한국 정부 역시 일본과 유사한 입장이었다.
  셋째는 1965년 체제의 근거인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는 냉전질서하에서 식민지 피해국인 한국을 전후 배상조약에서 배제시키고 식민지 책임과 관련하여서는 한일간 양자 협정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은 미국의 냉전 전략 압력으로 일본의 식민지 책임의 법적근거를 제대로 명시하지 못했다. 이것은 2차 대전 전후 처리 전반에서 미국이 1943년 카이로선언을 엄격하게 집행하지 못한 국제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합법을 전제로한 1965년 협정체제로는 한일간의 식민지배 불법청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식민지배 국가책임 불법청산을 위해서는 해방 70년인 2015년에는 한일간에 새로운 체제의 정립이 필요하다. 식민지 불법청산은 UN이 주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2001년 “인종차별금지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Durban선언에서 21세기의 역사적 청산 과제로 채택되었다. 또 2008년에는 이태리-리비아 식민지배 청산에 대한 양국 우호협정도 좋은 모델이다. 그리고 영국이 구 식민지인 케냐와 과거 식민지 불법청산 협상에 들어났다. 이처럼 식민지 불법청산을 포함하여 식민지 피해 국가책임은 새로운 국제법 발전의 방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확실히 국제법의 발전추세도 1648년 웨스트팔리아 체제에 기초한 “국가주의 중심의 국제법 체제”를 넘어 “개인 인권 중심의 국제법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국제법은 과거 식민지 열강중심의 식민지 국제법 이론(선점/occupation, 결정적 기일/criticak date 등)을 점차적으로 걷어내는 추세이다. 이와 같이 식민지 국제법 이론에서 나온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개정하는 것은 2015년 이후 국제사회와 국제법의 새로운 발전 방향에도 일치하는 것이다. 1965년 체제의 극복만이 한일간의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고, 지속가능한 동아시아 평화를 확립하는 길이다. 이것은 국제법의 목적도 종전의 “소극적 평화”(no war, no intervention)에서 “적극적 평화”(빈곤,국제사회 역사정의 부재. 인권침해 등 분쟁의 근본문제 해결 등) 에로 변화고 있는 새로운 발전추세에도 적극 부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1965년 체제의 한계점의 극복 과제는 한일 양국의 국가이기주의에만 맡겨둘 수 가 없다. 그래서 한일 양국의 평화. 역사관련 NGO가 강한 국제연대를 만들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소속 정부를 압박해야한다. 이미 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2010년 5월 14일 214명, 동년 7월 28일 1,139명의 한일 양국 지식인이 “역사적 정의에 입각한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은 원천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을 서울과 동경에서 발표한 바 있다. 


IV. 맺는말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식민지배 불법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기타 채권. 채무 및 청구권을 주장하는 국가 및 그 국민의 민사상, 재정상 피해문제를 다룬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4조의 하위체제이다. 동 조약 제4조는 양국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식민지 지배 불법성에 기초한 손해배상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 때문에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을 합법이라는 전제하에 맺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은 국가의 정통성을 1919년 3.1정신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에서 근거하고, 1910년 한일 강제병합조약을 불법. 무효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핵심가치에 정면 반하고, 대한민국의 국가정통성에 반한다. 그리고 1965년 청구권협정에는 일본이 과거 식민지지배에 대한 명백한 법적 책임인정과 사과, 그리고 그에 대한 청산 약속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1965년 청구권 협정 체제가 존속하는 한 식민지 불법통치의 범죄행위와 불법행위를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극복할 수 없고, 동아시아의 역사전쟁은 장기화로 이어져 동아시아의 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에서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과 2012년 대법원의 판결은 1965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매우 의미 있는 용기 있는 첫 판결이다. 한일 양국가는 물론이고 미국은 국가차원에서 1965년 협정체제의 극복과 동아시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위 두 판결이 실효성을 얻도록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이를 위해서 한일 양국의 국민적 차원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신뢰관계 또는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좋은 예로서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은 원천 무효를 전제한 201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이고, 또 대한변호사협회와 일본변호사협회가 역사왜곡과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문제에 대해 2014년 4월 7일 대한변협 인권재단 회의실에서 ‘일제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한 한일변호사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두 판결은 중국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95년 3월 Until 1995, it did not make its position clear on this question. On March,1995, then vice-minister and foreign minister, Qian Qichen, observed that " the claims renounced in the 1972 Joint Communique do not include those held by individuals." 
까지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중국은 최근 2014년 들어서 적극적으로 "1972년 일중 공동코무니케" 1972년 Joint Communique between PRC and Japan: :
  "5. The Govern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declares that in the interest of the friendship between the Chinese and the Japanese peoples, it renounces its demand for war reparation from japan"
에서 전쟁범죄 손해배상을 포기한다고 이미 합의해준 것인데, 중국 법원이 자국 국민 개인피해자가 일본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전쟁피해 손해배상 요구를 수락하고 있다. Reuters, "Chinese Wartime Forced Labourers Sue Japanese Firms",(Feb.26.2014): " A Beijing court accepted a lawsuit on Wednesday demanding copensation for Chinese citizens made by the Japanese to work as forced laborers during World War Two, state media reported." ; Reuters," RPT-Refile-Insight-Hundreds of Chinese families seek wartime compensation from Japan"(May 12,2014). 
이와 같이 1965년 체제 극복을 위해서는 역사정의와 동아시아 평화를 사랑하는 피해 주변국과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NGO) 및 국민사이 신뢰에 기초한 강한 국제연대가 매우 필요하다. 한 예로 이 문제를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가입과도 연계시켜 동남아 피해국가와 함께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ADB의 <아시아 미래 대예측>도 ‘2050 아시아 세기’를 성공시키는데 동아시아 역내 국가간의 협력과 평화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그것의 출발은 일제 식민지 불법성의 청산이고, 이를 위해서 1965년 한일협정체제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체제의 출범이 필요하다. 새로운 한일협정 체제는 식민지 범죄와 불법지배의 국가책임을 명시하는 내용을 가질 것이다. Jang-Hie Lee,"Reexamination of Korea-Japan Agreement on Right of Claim and Economic Cooperation and its Amendment", Lee Jang-Hie(ed.), International Legal Issue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ASRI Press, Seoul, Korea,1998,pp.56-61.  
 동아시아의 평화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 일본 정부의 용기있는 역사적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의 진실을 진정으로 일본은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 Jochen Bittner, "What Germany Can Teach Japan", The New York Times(April 16,2014)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일간 진정한 화해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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