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자료실 >
UN안보리의 ICJ 제소 권고와 독도문제-발제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3-03-27 조회수 : 3682
파일첨부 :
제3주제 발제】
‘UN 안보리의 ICJ 제소 권고와 독도문제’

이 장 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목 차

 Ⅰ. 문제제기
 Ⅱ. UN헌장 제36조와 ICJ 권고 해결 분석
 Ⅲ. Corfu Channel 사건과 UN 안보리의 ICJ 해결 권고   (ICJ, 1947-1949)
  1. 사건의 개요
  2. 법적쟁점
  3. 판결
  4. 평석
  IV. 1976년 에게해 대륙붕 사건과 UN 안보리 의 ICJ 해결 권고
  1. 사건개요
  2. 판결요지
  V. Minquiers-Ecrehos 제도 사건
  1. 사건개요
  2. 판결요지
  Ⅵ. UN 안보리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권고에 대한 대응 방안 검토



Ⅰ. 문제제기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이후 일본 정부의 독도문제 ICJ 제소가 한일 독도문제 전면에 화두로 들어섰다. 일본정부의 독도 제소 제의는 1954년 1954년 9월 25일 일본정부는 우리 외교부에 최초로 공식으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의를 하였다. 이때 1954년 20월 28일 당시 변영태 외교부장관은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두 한민족의 완고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일본이 독립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 1962년에 있었고, 1965년 한일협정이후 50년 동안 거의 없다가 이번 이명박대통령 독도방문으로 제소 제의가 다시 등장했다.  일본의 보수 우익정부는 지지세력을 의식하여 공동제소, 단독제소 그리고 당분간 제소 유보 등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여왔다. 조용한 외교를 지지하는 일부 한국의 논자들은 일본의 독도 ICJ 제소 제의가 이명박 대통령의 무모한 독도 방문에 있다고 강변하는 등 여타 실효적 지배조치 강화에도 제동을 거는 돌파구로 삼았다. 실제로 이를 빌미로 이명박 대통령 독도방문 후 당국은 독도주변에 진행되고 있는 해양과학기지 사업을 중단시켰다. 홍문표의원(에산.홍성)은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후 2009년부터 실효적 지배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360억원의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고 1년 후면 완공될 독도 해양과학기지 등의 사업이 중단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정부 방침의 철회를 촉구했다.  대전일보,2012년 8월 26일자.  
그래서 한국이 독도문제에 대한 실효적 지배조치를 강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일본의 “분쟁수역화 전략. ICJ 제소” 인 것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래서 역대정부는 “분쟁수역화전략. ICJ 제소”라는 걸림돌로 인해,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교과서 왜곡, 불법적인 독도영유권 침탈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항상 조용한 외교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로 일본정부는 국제사회와 UN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한일관련 주요문서상의 독도에 대한 역사적 권원이나 국제법 조약의 해석에서 한국의 독도 영유권 실효성을 심하게 훼손하곤 했다. 본고는 한국이 최근 독도 주변에 실효적 지배 (Effect Control)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란 어느 국가가 문제의 영토에 대하여 평화적(peaceful)으로, 공공연하게(publicly), 실제적(actually)으로, 계속적(continuous)으로 그리고 충분(sufficient)하게 국가의 주권을 행사하고. 표시(display or exercise)하는 것으로 정의 내려 질 수 있겠다. 그리고 실효적 지배란 영토에 대한 물리적 단순한 정착 점유가 아니라, 국가기능의 실제적 표시 및 행사가 있어야(국가의 입법․사법․행정권이 독도에서 온전하게 행사돼야) 한다. 우리 국가원수가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온하게 독도를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독도가 국제법상 섬이라면 독도주변수역에 영해나 배타적 경제수역을 일본정부를 의식하지 않고 당당히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우리 정부가 독도에 대해 위와 같이 온전하게 해양주권을 충분하게 공공연하게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장희, “독도 영유권관련 국제법적 쟁점에 대한 검토”,독도논총,제6권 1호(2012.6),독도조사연구학회, pp. 217-218. 
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과연  UN 안보리 권고조치를 통한 [분쟁수역화-독도 ICJ제소]라는 일본 전략으로 연결되는가에 초점을 둔다. 언제 부터인지 일본의 독도 제소 문제가 등장하면, 한국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안보리의 일방적 ICJ 해결 권고 조항 제36조를 들먹인다. 더우기 2011년에 출판된 독도관련 모 소설은 일본해상자위대 독도침탈-국제분쟁화수역화-UN 안보리에 의한 ICJ 해결 권고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분쟁수역화 작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적극적 대응을 못하게 했다. 그 때문에 한국의 독도의 적극적 실효적 지배조치 강화는 UN헌장 제36조에 따라 UN 안보리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일방적 권고한다고 경고한다.  뿐만 아니라 ICJ 국제판례까지 동원해서 UN 안보리 일방적 해결가능성을 제시하여, 적극적 실효적 지배 조치 강화를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ICJ 제소 제안에 대한 지나친 과민 반응 이다. 그래서 한때 ‘실효적 지배’ 강화 용어를 쓰지 말고, 영유권 강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여론이 권장되곤 했다. 뿐만 아니라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의 개념의 지나친 과거식 해석으로 현재 독도의 실효적 지배조치 강화 사업의 무익성을 부각시켜 차질을 빚곤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ICJ 규정 36조 1항, 2항,3항 UN 헌장 제36조 2항: " 안보리는 당사자가 이미 채택한 분쟁해결절차를 고려하여야한다.” ; 제36조 3 항: “ 안보리는 이 조에 의하여 권고를 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법률적 분쟁이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에 따라 당사자에 의하며 동 재판소에 회부되어야 한다는 점도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은 UN 안보리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ICJ 제소 권고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 한.일간 독도 문제에도 적용할수 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일부 논자는 Corfu Channel case와 에게해 대륙붕 case 국제사법재판소 ICJ 판례에서 나타난 확대 관할권(forum prorogatum) [확대관할권]이란 처음에 국제사법재판소 절차에 제소할 의사가 없는 분쟁당사국이 상대방 당사국의 일방적 제소가 있은 이후, 국제사회에 있어서 복잡한 국제정치적 관계의 진전과정에서 ‘수동적 당사자의 비정형적 동의’가 추정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 관할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Malcolm N. Shaw, International Law, 5th Edition,(2003, Cambridge),pp. 975-978.   
를 오해하고 강변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UN 헌장 제36조에 의한 UN안보리 ICJ 해결 권고 및 ICJ 판례 분석을 통해 일본의 독도문제 제소에 대한 UN안보리의 개입 가능성을 검토해본다. 

II. UN헌장 제36조와 ICJ 권고 해결 분석 
  국제사회에서는 분쟁해결에 있어서 분쟁당사자의 의도와 별도로 국제기구가(UN안보리) 직권으로 분쟁해결에 개입할 수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UN헌장 제33조 2항 UN헌장 제33조 2항: “안보리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당사자에 대하여 그 분쟁을 그러한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요청한다". 
과 제34조 UN 헌장 제34조: ”안보리는 어떠한 분쟁에 대해서도 또는 국제적 마찰이 되거나 분쟁을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어떠한 사태에 대하여 서도,  ... 조사할 수 있다.” 
(직권조사권)에 기초한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관련 하여 UN헌장 제36조는 1항은 “ 안보리는 제33조에 규정된 성격의 분쟁 또는 유사한 성격의 사태와 어떠한 단계에서도 적절한 조정절차 또는 조정방법을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제36조 3항은 “ 안보리는 본조에 의하여 권고를 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법률적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에 정한 바에 따라 당사자에 의하여 동 재판소에 회부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로 분쟁당사국의 의지에 관계없이 결국 국제사법재판소에 분쟁이 제소된 ICJ 판례로서  Corfu Channel Case(1946), Haya de la Torre Case(1951) Haya de la Torre Case(colombia/peru), ICJ Reports(1951), p.71 
등이 있다. 제36조 3항은 UN의 주요 국제사법기구로서 ICJ를 확인하고(제92조), 둘째로 국제법과정의에 따라 UN의 주요목적인 평화와 안전 유지(UN 헌장 제1조 1항)를 가져오는데, ICJ의 기능, 즉 국제법에 일치하게 평화적 해결( ICJ 제38조 1항)이 가장 명백하고 적합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Bruno Simma(ed.), The Charter of United Nations, A Commentary, 3th edition, Vol.1, (Oxford ,2012)pp.1136-1138. 

 또 제36조 3항이 “ In making recommendations under this article the Security should also take into conderation that Legal disputes should as general rule be referred by the parties to the ICJ in a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the Statute of the Court." 라는 규정을 두고 해석도 분분하다. 
  이 조항은 안보리가 어떤 분규에 관하여 권고를 함에 있어, 법률적 분규는 일반적 관례에 따라서 분규당사국들이 ICJ에 회부하도록 하는 것을 고려함이 마땅하다(should)는 취지이지, 반드시 회부하여야 한다(must)는 강제 규정이 아니다. 나흥주, “소위 ‘독도문제’의 ICJ회부 불가피성에 대한 일부논의 비판”, 독도논총, 제6권 제1호,(독도조사연구학회, 2012.6),pp.129-130.  
  그 이유는 33조 1항의 모든 분규당사국은 평화적 분쟁해결 수단으로서 우선 협의,심사,중개,조정,중재재판,사법적 해결, 지역적 기관 또는 지역적 협정의 이용 또는 당사자가 선택하는 다른 평화적 선택의 길을 열어 놓고 있다. 더구나 UN 헌장 제2조 1항은 회원국의 주권평등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볼 때, 여기서 의무사항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실효적 지배조치 강화가 국제평화 안전의 유지를 위태롭게 하는 분쟁으로 발전하여, 안보리가 독도의 영유권분쟁을 ICJ에 제소하라는 권고적 결의를 할 경우에도 이를 의무사항으로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III. Corfu Channel 사건 , (United Kingdom v. Albania),[1949(Merrits)],ICJ Report p.4. 
과 UN 안보리의 ICJ 해결 권고 (ICJ, 1947- 1949) 영국 v.알바니아. ICJ Rep 4, ICJ Rep 15. (정인섭 외 [국제법판례 100선], 김대순 [국제법론] 참고)

1. 사건의 개요
 1946년 5월 15일 영국해군은 알바니아 본토와 Corfu섬 사이에 위치한 Corfu 해협(폭 3-23km) 북부에 2척(오리온호와 수퍼브호)의 군함을 파견하였다. 항해중 군함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알바니아의 포탄공격을 받았다. 당시 Corfu 해협은 1944년 10월 소해(掃海)작업이후 아무런 기뢰도 발견되지 않아 기뢰안전수역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양국간의 교환각서를 통하여 영국정부는 사전 통보 및 허락없이 Corfu해협에서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알바니아는 외국선박은 사전통보와 자국의 승인하에 서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영국은 알바니아의 태도를 시험하기위하여 1946년 10월 22일 순항함 2척과 구축함 2척을 Corfu 해협에 다시 보냈다. 해협의 알바니아 영해를 항해중 구축함들이 기뢰와 충돌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승무원도 44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을 입었다. 영국은 5월사건 이후에 알바니아가 국제해협인 Corfu해협에 계획적으로 기뢰를 부설하였다고 의심하였다. 
  한편 알바니아는 당시 인접 그리스와 긴장관계인 특수관계인 상황에서 외국 군함의 자국 영해 통과를 규제할 권한이 있으며, 사전 허가 없는 영국 함대의 Corfu해협 통과는 국제법 위반 동시에 당시에 영국함대의 통항은 무해통항에도 해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 사고이후 영국은 알바니아에 외교 서한을 보내 자국이 코르푸 해협에 설치된 수뢰를 제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알바니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월 12-13일 영국은 Corfu 해협에 함대를 파견하여 掃海작업을 벌인 결과, 22개의 수중 機雷를 제거하였다. 그 중 2발은 몰타로 옮겨 조사해보니, 독일제 GY 型 기뢰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영국은 기뢰부설이 알바니아 측의 협조로 가능하였으며, 적어도 알바니아 정부는 자국 영역내에 기뢰가 있음을 타국에 사전 고지하지 않아 1907년 제8헤이그 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영국은 알바니아 당국이 영구함대의 접근을 탐지하였고, 기뢰지역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Corfu해협과 같은 국제수로를 무해통항하는 외국선박의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주장하여, 이에 대한 보상으로 825,000 파운드의 인명피해 및 기타 비용으로 50,000파운드를 배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알바니아는 영국군에 피해를 입힌 기뢰를 알바니아가 설치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알바니아를 대신하여 제3국이 설치한 증거도 전혀 없고, 알바니아의 지원, 인식 또는 고의에 의하여 설치된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 한 당시 알바니아는 예외적인 상황(그리스와의 긴장관계)에서 동해협을 통과하는 외국군함의 통과를 규제할 권한이 있으며, 이러한 규칙은 Corfu 해협에 적용되어야 하고,사고 당시 바로 이러한 상황에 있었다.  따라서 영국함대는 알바니아의 영해통과 전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1946년 10월 22일 영국함대 Corfu 해협통과는 그런 절차가 없으므로 국제법 위반이며, 따라서 문제된 군함의 해협통과는 무해통항으로 볼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알바니아는 군함파손 후 1946년 11월 12-13일 실시된 소해작업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영국은 1946년 10월 22일의 사고에 대해 알바니아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 문제를 UN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다. 알바니아는 당시 UN회원국이 아니었으나 알바니아가 UN회원국의 의무를 수락한다는 조건하에 안전보장이사회는 이 문제의 토의에 알바니아가 참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안전보장이사회는 1947년 4월 9일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 문제를 양국이 ICJ 회부하여 처리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영국은 1947년 5월 22일 일방적으로 알바니아를 상대로 ICJ에 제소했다. 알바니아는 7월2일 ICJ에 서한을 보내 자국이 ICJ에 출정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했으나, ICJ의 재판관할권은 부인하였다.

2. 법적쟁점
 1) 절차적 문제- ICJ 재판관할권 인정여부
당시 UN회원국이 아닌 알바니아가 이 사건에 대한 ICJ의 재판관할권을 부인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인이 정당한가의 문제이다. 이 사건에 대한 영국의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에 대하여 알바니아는 조건부 수락을 하였고 뒤이은 영국의 일방적인 ICJ 제소행위에 대하여는 출정의 의사가 있음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알바니아는 ICJ의 재판관할권을 부인하였다.

● 영국의 주장
영국은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안을 통해 이 사건을 ICJ에 의해 처리하도록 했다는 점, 알바니아가 안전보장이사회의 토의에 참가한다고 수락했는데 안전보장이사회는 알바니아가 UN회원국의 의무를 수락한다는 조건하에 이러한 초청을 했다는 점, UN헌장 제25조에 따라 회원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따라야 하며, ICJ가 재판관할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한 점을 이유로 ICJ가 이 사건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알바니아의 주장
알바니아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안은 이 사건을 ICJ에 회부하는 데 있어서 영국과 알바니아가 특별협정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영국이 일방적으로 제소한 것이므로 ICJ의 재판관할권은 부정된다고 주장하였다. 

2) 수뢰폭발사고에 대한 알바니아의 책임여부
알바니아에게 자국영해 내에서의 1946년 10월 22일의 수뢰폭발사고에 대한 국제법상의 책임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더불어 80여명의 사상자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까지 그 인정여부가 문제된다. 

● 영국의 주장
영국은 폭발한 수뢰가 알바니아에 의하거나 혹은 알바니아의 묵인에 의하여 유고슬라비아가 매설한 것이라 주장했다. 나아가 알바니아는 이러한 위험의 존재를 영해를 지나는 다른 나라에 알리고 경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해태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있거나 그에 대한 입증책임이 전환된다고 주장하였다.

● 알바니아의 주장
당시 알바니아는 그리스와의 긴장관계인 특수상황이었음을 주장하였다. 즉, 그러한 긴장상황에서 외국군함의 자국 영해통과를 규제할 권한이 자국에게 있으며 수뢰의 존재와 매설주체에 대한 영국의 주장은 증거 없는 허구라 주장하였다.

3) 영국의 수뢰제거행위에 대한 국제법 위반여부
영국해군이 1946년 11월 12일과 13일에 알바니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뢰제거작전을 실시한 것이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인가의 문제이다. 

● 알바니아의 주장
코푸르해협 북부지역이 지리적으로는 해협이기는 하나 이 해협 외에도 통과할 수 있는 별도의 항해로가 있으며 이 지역은 알바니아 국내 운송을 위해서만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알바니아의 동의도 없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국가주권에 대한 간섭행위로 위법행위라 주장하였다.

● 영국의 주장
영국은 이러한 조치는 국제위법행위의 증거를 채집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추가적인 위해를 제거하기 위하여 부득이 하게 취해진 자기보호조치라는 주장하였다.

3. 판결
1)관할권 판결: ICJ 재판관할권 인정여부
 우선 알바니아는 1947년 7월 2일 ICJ에 보낸 서한에서 출정의사를 분명히 밝혔으므로 이로써 ICJ에 이 사건의 관할권을 부여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았다. 즉, 알바니아의 주장과 같은 분쟁당사국간의 특별협정에 의하지 않더라도 두 개의 독립적인 행위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영국의 제소- 알바니아의 ICJ에 대한 서신 발송) ICJ의 재판관할권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2)본안판결(1): 수뢰폭발사고에 대한 알바니아의 책임여부
수뢰의 매설주체에 대한 영국의 주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배척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자국영역 내에서 국제법에 위반된 행위가 발생한 경우 이러한 행위를 몰랐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피해국은 사실의 추론 및 정황증거에 의해 이러한 국제법 위반행위가 발생한 국가에 대해 이러한 국제법 위반행위에 대한 국가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전제하였다. 알바니아의 책임여부에 대하여, 알바니아는 자국 영해의 이러한 수뢰의 존재에 대하여 전 세계에 알릴 의무가 있고, 다가오는 영국 군함에 대해사도 긴급한 위험을 경고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즉, 알바니아가 일응의 책임이 있거나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국제법의 확립된 일반원칙인 인도의 존중, 항해통신의 자유를 바탕으로 자국의 영토가 타국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 국가책임에서의 주관적 책임을 인정하였다. 

3) 본안판결 (2) : 영국의 수뢰제거행위에 대한 국제법 위반여부
 먼저, 해협에 대한 알바니아의 주장에 대하여 ‘해협이란 두 개의 공해를 연결하며 국제항해에 이용되는 지역으로, 대체항로가 있다고 하여 해협인 점이 부정되지 않는다.’ 고 설시하고 코르푸해협 북부지역이 해협인 점을 명확히 하여 무해통항권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1946년 10월 22일 이 지역을 통과하는 영국군함의 항해는 무해통항에 걸맞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1946년 11월 12-13일에 걸쳐 영국이 알바니아의 동의 없이 이 지역에서 수뢰제거작전을 실시한 것과 관련하여서는, 영국이 알바니아영해 내에서 행한 이러한 간섭조치는 무력행사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행위는 국가주권원칙을 위배하여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4. 평석
 이 사건은 여러 가지 국제법상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로 관할권 판결에서, 분쟁당사국간에 별도의 특별한 형식에 의하지 않더라도 제소에 응하겠다는 의사표시만으로 ICJ가 응소관할에 의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국제해협에서 군함의 무해통항권을 인정하여 후에 제3차 유엔해양법 회의 결과 채택된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의 ‘무해통항 및 통과통행권에 대한 원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둘째로 본안 판결에서, 알바니아가 영국 군함에 사전 경고를 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태만을 인정하여 영해 및 해협 통과 시 연안국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확인하였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영국의 알바니아 영해에서 행한 행위는 국제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인 영토 주권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무력행사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한 점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IV. 1976년 에게해 대륙붕 사건 Aegean Sea Contentinental Shelf Case(Greece v. Turkey),[1976],Request for the indication of Interim Measures of protection, ICJ Report, p.3.
과 UN 안보리 의 ICJ 해결 권고
1.사건개요 
 1974년 터키정부는 그리스 정부가 자국섬에 속하는 대륙붕지역이라고 주장하는 에게해 해저에서 석유탐사를 개시했다. 이에 그리스가 항의하고 협상이 실패한 후 그리스는 동 사안을 UN 안보리와 ICJ에 상정하였다. 법원에 사건을 부탁하면서 , 그리스는 ICJ 의 재판관할권의 근거로 1928년 일반의정서와 1976년 공동성명을 내세웠다. 
 그리스는 또한 법원이 본안을 판단할 동안 ICJ 규정 제41조 하의 잠정조치를 내려주도록 요청하였다. 특히 그리스는 문제의 해역에 대한 양국의 더 이상의 탐사와 조사활동을 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 판결요지
 당사국간 회복 불가능한 손상(irreparaable prejudice)이 야기되지 않는 한 잠정조치의 요청을 거부할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터키가 한 행위는 해저의 지질학적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기위한 작은 규모의 해저탐사이다. 그리스는 이러한 형태의 인공지진에 의한 탐사가 해저나 하층토 또는 그곳의 천연자원에 물리적 손상을 가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터키가 분쟁지역인 대륙붕의 실제적인 점유나 기타 천연자원의 이용을 내용으로 하는 어떠한 계획을 착수했다는 주장도 없었다. 그리스와 터키는 UN 회원국으로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안보리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였고 양국 모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무 존중을 거부하리라고 추측되지 않는다.
  요컨대 ICJ는 그리스가 주장하는 것 처럼 계쟁중인 침해위험성을 발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잠정적 구제조치의 요청을 허용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 사건에서도 ICJ는 1928년 의정서와 1979년 공동성명을 근거로 응소관할을 했다.      

V. Minquiers-Ecrehos 제도 사건 (United Kingdom v. France/1953/ICJ)
1. 사건개요 
 1) 이 사건은 프랑스 해안 근처 영국해협(English Channel)에 있는 Minquiers와 Ecrehos제도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간의 영유권 분쟁이다. ICJ Reports 1953,p.46; Harris 1991,pp.187-190; L. C. Green International Law through the cases. 4th ed. Toronto, Carswell Company Limited, 1978, pp.8-13. 
Minquiers 와 Ecrehos는 영국령 Channel 군도의 하나인 Jersey 섬과 프랑스령 Chausey섬 사이에 위치한 섬(islets)과 작은 다수의 바위(rocks)로 구성된 작은 군도이다. 인간의 거주가 가능한 섬은 Minquiers 2개섬과 Ecrehos 3개의 섬 정도이다. 
 19세기 말 이후 프랑스가 영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양국간에 그 귀속에 관한 다툼이 있었다. 또한 프랑스는 제2차 대전이후 Mont St. Michel만에서 조력발전소 건설계획관계로 이들 두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양국은 1950년 12월 29일 특별협정을 체결하고 이 문제를 1951년 12월 5일 ICJ에 제소하였다.
 2) 청구내용은 Minquiers 와 Ecrehos의 도서나 암초가 영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그 영유권은 양국 중 어디에 귀속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양국은 원시적 권원 및 실효적 점유에 의한 권원에 기초하여 영유권의 존재를 주장하였지만 재판소는 증거 조사 후 영국의 실효적 점유에 의한 권원을 인정하고, Minquiers 와 Ecrehos에 대한 주권이 영국에게 귀속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2. 판결요지
  ICJ는 두 섬의 주권에 대한 양국의 상반된 주장에 있어서 상대적 강도(relative strength)에 근거하여 평가하였다. 
 1) 양 당사국 모두 Minquiers 와 Ecrehos에 대한 원시적 권원을 가지며 그 권원은 계속 유지되었으며 상실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 사건은 無主地의 주권 취득에 관한 분쟁은 아니다. 영국은 1066년 노르망디公 윌리엄에 의한 영국 정벌로부터, 프랑스는 1204년 노르망디 정벌로부터 자국의 권원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러나 양국이 동시에 원용하는 중세의 제 조약은 어느 측의 주장도 입증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영국은 古文書에 의거하여 문제의 군도를 포함한 해협(Channel) 군도가 대륙의 노르망디와 구별되는 실체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하며, Minquiers와 Ecrehos에 대한 주권 문제는 이들 군도의 점유에 직접 관련하는 증거에 의하여 추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프랑스는 영국 왕은 프랑스의 家臣인 노르망디公의 자격으로 프랑스왕의 봉토를 보유하고 있었고, 1202년 프랑스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영국왕이 보유하는 모든 봉토가 몰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은 노르망디에 관한 프랑스 왕의 봉건적 권원은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위 판결을 다투었다. ICJ는 이 역사적 논쟁을 다시 할 필요가 없음을 인정하였다. 가령 프랑스 왕이 Channel 군도에 관하여 봉건적 권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고 그 권원은 1204년 이래 여러 사건의 결과 실효하였음에 틀림없고, 후대의 법에 근거한 유효한 권원에 의하여 대체되지 않는 한 오늘날 어떠한 법적 효과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세의 여러 사건에 기초한 간접적 추정이 아니며, Minquiers 와 Ecrehos 군도의 점유에 직접 관계하는 증거이다. 
 2) 그와 같은 증거 판단을 위한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에 대해서 영국은 분쟁이 구체화된 1950년 특별 협정의 체결일을, 프랑스는 1838년 영불어업조약의 체결일을 주장하였다. 
   재판소에 의하면 1839년 양국간의 조개어업에 관한 분쟁에 관하여 의견의 차이는 있었지만, 당시 문제의 군도의 주권에 관한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한 분쟁이 발생한 것은 프랑스가 처음으로 주권을 주장한 1886년(Ecrehos)와 1888년(Minquiers)이다. 그러나 본 사건의 사정상 그 후의 행위라도 관계 당사국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이 아닌 한 재판소에 의하여 고려되어야 한다. 
 3) 어업조약과 영토주권문제외의 관계 
  1839년 8월 2일 양국은 Jersey 섬과 프랑스 연안사이의 해역에 있어서 굴채취에 관한 어업협약을 체결하였다. 문제는 이 1939년 어업협약이 Minquiers Ecrehos 에 대한 주권문제에 영향을 미치는냐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 및 독도영유권문제와 관련 된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여기서 양국이 주장이 다르다. 프랑스 정부는 이 어업협약이 어느 정도 그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하였다. 전순신,전순신 편저, 판례연구 국제사법재판소(I), 세종출판사,1999.10. ,pp.156-159; 이창위, “영국과 프랑스 간 멩끼에.에끄레오 도서 사건”,Strategy 21, Vol.7, Winter,2004 No.2 해양전략연구소,pp.112-114 참조. 

  재판소는 합의된 공동어업구역이 당사국이 이 소도에 대한 주권의 표명을 수반하는 그 후의 행위를 원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효과를 반드시 가진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ICJ Reports,1953,p.58. 
이 판결은 어업협약이 영토주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4) 두 섬 영유권에 대한 양당사국의 주장과 ICJ의 입장 
  (1) Ecrehos에 대한 양 당사국의 주장을 검토하면 Ecrehos는 제13세기 초 영국 왕 소유의 봉토인 Channel군도의 구성부분으로서 다루어졌으며, 14세기 초에 영국 왕이 재판권과 과세권을 행사한 기록도 있다. 19세기 초부터 조개 어업의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Ecrehos와 Jersey섬과의 관계는 다시 긴밀해졌다. 그 이후 Jersey당국은 동 섬에 관하여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 적이 있으며 그러한 사실들 가운데 특히 사법권, 행정권, 입법권 행사에 관한 행위(형사재판의 실시, 교구세․ 지방세의 징수, Ecrehos 암초를 Jersey섬의 범위 내에 포함하여 취급한 조치 등)에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반면 프랑스는 1866년 주권을 주장할 때까지 유효한 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대립하는 주권 주장의 상대적인 효력을 평가하면 재판소는 Ecrehos에 대한 주권이 영국에 귀속한다고 결론 내린다. 
  (2) Minquiers에 대한 양 당사자의 주장을 검토하면 Minquiers는 17세기 초 Jersey 섬에서의 누와르몽(Noirmont)領地의 일부로서 취급되었으며 재판권이 행사된 기록이 있고, 또 Ecrehos에 대해서 제출된 것과 동일한 성격의 다양한 증거로부터 영국은 19세기내 상당기간 및 20세기에 Minquiers에 관하여 국가적 기능을 행사하여 왔다고 인정된다. 
  프랑스는 Minquiers가 프랑스령 Jersey섬의 부속 도서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인정될 수 없다. Minquiers 암초 외측의 부표 설치를 포함하여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행위는 이 군도의 주권으로서 행동하는 프랑스 의사의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으며, 또한 국가적 기능의 발현을 포함하는 표시로 간주될 수 없다. 프랑스가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1888년부터이다. 이와 같은 사정에서 Minquiers에 대한 주권은 영국에 귀속하는 것으로 판결한다.
5) 따라서 1953년 11월 17일 ICJ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세시대 사건으로부터 이끌어낸 간접적인 추정이 아니라 Minquiers와 Ecrehos 諸島의 영유에 직접 관계가 있는 증거이다”라고 하여, 이 섬에 대한 상대적으로 우월한 증거를 제시한 영국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Ⅵ. UN 안보리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권고에 대한 대응 방안 검토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은 원칙적으로 임의관할권이라, 양 당사국의 서면에 의한 명시적 재판 관할권수용 합의 없이는 성립이 되지 않고 진행 자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선택조항(option clause/ ICJ 규정 36조 2항) 수락 및 재판조약, 재판조항이 있는 세가지 경우에 ‘강제관할권’이라는 예외가 인정되어 진다. 
 그런데 위의 국제판례는 임의관할의 일환으로 확대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다. 당사자의 명백한 의사표시 없이 묵인으로 재판과할권이 성립되는 경우이다. 
 일부논자가 원용하는 1976년 에게해 대륙붕 사건과 1949년 Corfu 해협사건에서 UN안보리가 소집되어 ICJ에서 해결하라고 권고 하였고, 실제 그렇게 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오는 피상적 분석 평가이다. 실제는 위 사건에서 법적 분쟁 당사국간에 사전에 특별한 법적 합의 및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 것을 간과하고 있다. 1976년 에게해 대륙붕 사건 Aegean Sea Continental Shelf Case(Greece v. Turkey)(1976), Request for Indication of Interim Measures of Protection, ICJ Report p. 3. 
은 내막은 이러하다. 1974년 터키정부는 그리스정부가 자국섬에 속하는 대륙붕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에게해 해저에서 석유탐사를 개시하였다. 이에 그리스가 항의하고 협상이 실패한 후 그리스는 동 사안을 UN 안보리와 ICJ에 상정하였다. ICJ에 사건을 부탁하면서 그리스는 ICJ의 재판관할권의 근거로서 1928년 일반의정서(General Act)와 1976년 공동성명(Joint Communique)을 내세웠다. 그리스는 또한 ICJ가 본안을 판단할 동안 문제의 수역에서 모든 추가탐사나 연구활동을 금지하도록 명해줄 것을 요청하는 ICJ 규정 제41조 이하의 잠정조치(interim measures of protection)를 요청하였다. 그런데 그리스의 요구는 기각되었다. 그 거부사유는 문제의 대상인 터키의 탐사 및 연구활동은 일시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해저.심해자원에 대한 손상을 입힐 위험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양국간의 긴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고, 또한 국제평화를 위협한다는 사유는 UN 안보리가 판단할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1949년 Corfu 해협사건 Corfu Channel Case, U.K. v. Albania,1949 ICJ Reports 4. 
에서 1946년 5월 15일 영국해군은 알바니아의 본토와 Corfu 섬 사이에 위치한 Corfu 해협 북부에 2척의 군함을 파견하였다. 항해중 영국 군함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알바니아의 포탄공격을 받았다. 영국 정부는 사전 통보 및 허락없이 군함도 Corfu 해협을 무해통항(innocent passage)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알바니아는 외국선박은 사전승인과 자국의 승인하에서만 통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영국은 알바니아의 태도를 시험하기위하여 1946년 10월 2차로 순향함 2척과 구축함 2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하였는데, 해협의 알바니아 영해를 항해중 기뢰가 폭발하여 구축함 1대가 손상을 입었고, 이것을 예인하던 구축함도 심한 손상을 입었다. 재판이 영국의 일방적 제소로 개시되었지만, 알바니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ICJ는 재판관할권을 인정하였다. ICJ는 관할권의 근거로서 1947년 7월 알바니아 정부가 ICJ에 제출한 서한이었다. 이 서한에 의하면, 알바니아는 분쟁이 ICJ 규정에 따라 본 재판소에 부탁되어야 한다는 UN 안보리의 권고를 완전히 수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위의 두 case에서 한 국가의 ICJ 일방적 제소에 대해, 특별한 재판관할권 수락에 대한 법적 근거하에 ICJ가 일방적 관할권을 행사하였고, 보통의 일반적인 경우에는 분쟁 당사국 간의 서면합의 없이는 관할권행사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우리정부는 2006년 4월 18일 UN 해양법협약상의 ‘강제분쟁 해결’절차를 배제하는 선언서를 UN에 기탁하였다. 이로써 일본의 UN해양법재판소에 강제적 제소근거를 차단시켰다. 해양법 협약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나 해양과학조사, 군사활동과 관련한 분쟁의 경우에 어느 한당사국이 다른 당사국의 일방적 제소만으로는 국제재판에 회부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그 즉시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이 이를 선언하지 아니하면 해양법협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분쟁과 관련해 다른 나라가 제소하면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해양법 재판소, 중재재판소, 특별중재재핀소 등에 회부될 수 있다. 2006년 4월 18일 이전까지는 일본이 이번사태와 관련하여 언제든지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이 열러 있었던 셈이다. 동아일보,2006년 4월 21, “측랑선 나포때 일 제소근거 차단”; Ohmynewsw,(2006년 4월20일자). “독도분쟁,국제재판소 회부 불가능”.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체결시 합의된 <분쟁해결에 대한 한일 양정부간의 교환각서 >에 의하면, 양국 정부간의 별도 합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 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을 시에는 양국정부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의하여 해결을 도모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에 의하면, 한국이 합의하지 않는 한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독도에 전쟁에 준하는 무력행사가 일어나지 않는 한 UN 안보리가 일방적으로 UN헌장 제36조에 의한 ICJ 강제관할권을 권고할 수가 없다.  이 법리를 일본 정부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보수정부는 지지세력을 의식하여 일본정부가 ICJ 제소를 운운하지만, 이는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 주춤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지나치게 우려하며 우리의 주장을 당당히 펴지 못하고 무대응과 묵인으로 ‘조용한 외교’를 폈다. 이는 일본의 잘못된 독도에 대한 주장에 대해 국제법상 묵인 효과를 유발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제대로 강화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신한일어업협정(1998) 체결과정에서도 결정적 실수를 했고, 이를 옹호하는 일부 논자들이 국제분쟁수역화 외교문제를 지나치게 우려해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대해 국제법적 역사적 논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독도의 실효적 관리 측면에서 볼 때, 독도의 명칭조차도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이 부르는 ‘다케시마’로 왜곡되어 대부분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또 최근 1965년 한일 협정의 교환공문의 회의록의 공개에 의하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포기한 것으로 양해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교환문서상 “분쟁”(disputes)속에 독도문제를 포함시키는 것에 끝까지 합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도문제가 현안이 될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일본 비상각의는 마침내 양해하였다. 김동조, 냉전시대의 외교(김동조 전 외교부장관의 회고록, 회상 80년), 문화일보사, 2000년, p.198. 
이것은 독도문제에 관련하여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국제법적으로 차단이 되고 명백히 법적으로 제한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기존 국제판례는 영유권 권원(title)의 생성과 그 지속은 별개의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권원생성이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영유권을 평화적이고 지속적으로 제대로 관리하여야만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ICJ 국제판레와 국제법 법리를 종합해서 보면, 독도의 실효적 지배조치의 평화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데는 다음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다.

  첫째, 상기 세가지 국제판례는 분쟁당사자의 명백한 재판관할권 합의 없이는 ICJ도 재판 관할권 인정에 매우 신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둘째, 최근 ICJ의 추세는 영유권 결정의 결정적 근거로서, 국제조약이나, 역사적 권원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실효적 지배를 더욱 중요시하고 인정하였다. 이 점에서 실효적 지배강화조치를 평화롭게 지속하는 방안을 치밀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실효적 지배조치 강화가 평화적으로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여 독도의 분쟁수역화로 발전되지 않게 의연하고 치밀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국지전이나 전쟁에 준하는 무력충돌이 독도에서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
 다섯째, 결정적 기일의 개념은 고정된 것은 아니고, 최근 국제판례에서 계속 변화하고 있다. ICJ는 모든 영유권분쟁에서 결정적 기일을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국제학술회의에서 독도의 경우에 ICJ가 이를 결정적 기일을 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 주장이다.  
 여섯째, 일본의 ICJ 제소 제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응소 관할권의 빌미를 보여서는 안된다. 
 일곱째, 우리는 일본의 불법적 법리 주장에 대해 치밀하게 법리적 객관적 논리를 착실하게 보완하고 준비해야 한다. 
 여덟째, 우리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법리가 국제사회와 국제학계에서 중심논리로 인정받을 수준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한 예로 1910년 한일 강제병합조약의 원천 무효성과 불법성의 논리를 국제학계에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김영구, “지금은 한일 외교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때다",독도논총, 제6권 1호, 2012년 6월, pp. 55-57.  
 이러한 작업은 일제침탈 36년 일본의 독도 점유는 명백히 불법이라는 법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전글 UN안보리의 ICJ 제소 권고와 독도문제 - 토론
다음글 독도문제의 ICJ 제소 회부에 대한 국제법적 쟁점 검토- 토론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