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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의 비밀- 신채호 주장 등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6-07-07 조회수 :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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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 고찰

한나라 복생이 쓴 [상서대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기자가 옥에 갇혀 있는 것을 주 무왕이 석방해 주었다. 기자는 자신이 무왕의 손에 의해 풀려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조선으로 갔고, 무왕이 이를 듣고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 기자는 그 후 무왕을 찾아와 홍범구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이 기록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 거의 같은 시대에 쓴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에는 전혀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신채호의 『조선사연구』기록을 참고해 보자.
『...고조선이 B.C 3세기에 이르러서는 번조선(기자조선)의 기후가 왕이라 칭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삼조선 분립시대가 되래하였다. 즉, 진조선은 B.C 4세기부터 후국을 다스릴 힘을 잃고 쇠잔하여 번조선과 막조선은 진조선의 간접통치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국가가 되었으며 번조선 왕 기준이 위만에게 정권을 빼앗겼을 때 진조선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글을 비교해 보면 신채호의 주장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위의 두 기록을 비교 연구해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기자조선에 관한 기록은 중국에는, [상서대전], [사기], [한서] 등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모두 기원전 3세기경에 쓰여진 책으로 한나라가 고조선(번조선-위만조선)을 멸망하고 나서 중화사관에 의해서 조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기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미화되고, 부풀려진 것은 사실이나 [기자] 자체가 100%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단기고사]에도 기자조선이 상세하게 나온다. 하지만 [환단고기]에는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다행히도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공통적으로 서술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서우여(서여, 또는 수유)다. 서우여는 기자의 다른 이름이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서우여는 번조선의 30대 왕으로 나오고 [단기고사]에는 기자조선 1대 왕으로 나온다.(서여로 나옴) 
 [단군세기]에는 서우여가 번조선왕을 찬탈하다시피해서 왕이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2.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에 기자에 관한 언급이 있고 북한 평양에도 기자묘가 있고 기자에게 이씨조선 대대로 제사를 지낸 것을 보면 기자는 실존했던 인물로 추정된다.

3. 다만, 종래의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순으로의 연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기자조선]이야기는 신채호의 언급대로 번조선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4. 중국사서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사서는 후대에 조작되었거나 조작된 사서를 그대로 베껴 쓴 것이 많으므로 역시 우리는 [환단고기] 위주로 분석해 봄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한 방법인 것 같다. 
(참고로, 재야 사학계 중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연구를 한다는 평을 받는 coo2.net의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

5. [환단고기]에는 기자에 관한 언급이 몇군데 보이는데, 기자를 [서우여], [수유] 등으로 묘사했다. 번조선 30대 왕이 서우여이며 서기전 1048년에 번한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때의 진조선 단군은 색불루다. 참고로 은나라는 서기전 1046년에 망했다. 따라서 서우여가 은나라로부터 망명한 시기와 일치한다.
(청주한씨 족보에도 상세히 내용이 보임)

6. [환단고기]에 의하면 번한의 70대 왕이 기후(B.C 324년 즉위), 71대가 기욱, 72대가 기석, 73대가 기윤, 74대가 기비, 75대가 그 유명한 기준인데 기준은 B.C 194년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한반도로 건너와 마한을 일으킨다. (청주한씨 족보 등에 의함)

7. 따라서 서기전 11세기경, 번조선왕을 찬탈하다시피한 서우여(기자)의 후손이 다시 700여년이 지난 후에 번조선 왕이 되며 6대 약 100여년 동안 위만조선에게 나라가 망할 때까지 3조선 중의 하나인 번조선을 통치했다. 그 마지막 왕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준(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김)

8. 번조선 마지막 6대에 걸친 왕들은 기자의 후손이지만 이미 조선화된 부족들이었으며 은나라가 동이족의 나라이므로 기자 또한 동이족이다.

9.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중화사상에 의해서(또는 기자의 후손들에 의해서) 기자조선으로 잘 포장되어(기자가 현인이니, 문화통치를 했다느니, 홍범구주를 주나라에 전했다느니..하는) 역사왜곡이 된 것이며 이러한 역사왜곡을 유교사관에 물든 유학자들이 뻥튀기듯 왜곡하여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판단된다.

10. 참고로, 기자묘는 황하남쪽 하남성 [서화]라는 곳에 실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집해정의> 라는 책에도 기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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