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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의 [천부경] [삼일신고] 위서 주장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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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1468211404.jpg [ 45KB ]

단재 신채호의 [천부경] [삼일신고] 위서주장 관련 자료


신채호의『조선상고사』총론 『단재신채호전집(개정판)』 上 1079,55쪽)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我國은 고대의 진서를 분기한 때(이조 태종의 분서같은)는 있었으나 僞書를 조작한 일은 없었다. 근일에 와서 『천부경,『삼일신고』 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辨이 없이 古書로 信認할 이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我國 書籍은 各氏의 族譜 중 그 선조의 事를 혹 위조한 것이 있는 이외에는 그리 眞僞의 辨別에 애쓸 것이 없거니와, 다음의 接壤된 隣國인 지나/일본 양국은 교제가 빈번함을 따라서 우리 역사에 참고될 서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위서 많기로는 支那같은 나라가 없을 것이다. 僞書를 辨認치 못하면, 인증치 않을 기록을 我史에 인증하는 錯誤가 있다.

위의 신채호 글을 보고 신채호가 [천부경] [삼일신고]가 위조되었다고 주장을 한 것이라고 조인성은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신채호가 처음에는 [천부경] [삼일신고] 위서론을 주장했지만, 나중에 주장을 번복하고, [천부경]의 가치를 인정했다.


위의 신채호 글을 보고 신채호가 [천부경] [삼일신고]가 위조되었다고 주장을 했다고 해석한 이가 이만열, 조인성 등이다. 그러나 박성수는 반대로 해석했다.

확실한 것은 단재 신채호가 [천부경] [삼일신고]를 단정적으로 위서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며 보는 이에 따라서 다소 애매하게 표현했다.

따라서 위의 내용으로만 보아서는 현대인들 누구나 신채호가 주장한 것이 무엇인지 쉽게 해석할 수가 없다.


이숙화는 그의 논문에서 신채호가 처음에는 “ [천부경] [삼일신고]가 위조되었다고 주장했지만, 후에 이를 번복하고 [천부경]의 가치를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숙화 논문내용 - 5쪽
역사학계에서 천부경을 위서로 분류한 것은 단재 신채호의 글에서 시작했다. [천부경]을 비판하는 연구자들은 [조선상고사]에 기록된 「위서의 변별과 선택에 대하여」라는 내용을 두고 신채호가 [천부경]을 위서로 분류했다고 주장한다.“위서를 辨認(변인 - 분별.구분)치 못하면 認證(인증 - 인정)치 않을 기록을 我史(아사- 우리 역사)에 인증하는 착오”를 범한다는 신채호의 실증주의적 역사탐구라는 태도를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형래는 이에 관해 반론을 제기했다. 신채호는 [천부경]을 1925년과 1931년 두 번에 걸쳐서 언급했는데, 처음에 [동아일보]에 발표했을 때는 위서를 주장했지만 1931년 [조선사연구소초]에서는 천부경의 가치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박성수 역시 신채호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천부경위서론을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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