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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國學)과 한국학(韓國學)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2-04-18 조회수 : 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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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18일 (수) 07:55:57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culture@kookhaknews.com 


  국학은 대개 한국학이라는 용어와 구분 없이 사용되는데, 여기서부터 큰 오류가 있다. 국학은 한국학이지만, 한국학이라고 해서 모두 국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는 없다. 현재 한국학에는 우리 국학에서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진정한 가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국학의 사전적인 의미를 밝혀보면 이러하다. '외국문화에 대한 자국의 고유한 역사, 언어, 풍속, 종교, 문학, 제도 등 민족문화 전반을 연구하는 학문'. 국학은 말 그대로 각 나라의 고유한 민족문화에 대한 연구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나 유교처럼 외국에서 들어와 한국화한 외래문화를 제외한, 외래문화로 혼탁해지기 전의 본래적이고 순수한 우리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반면에 한국학은 국학의 범주에 한국화한 외래문화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말한다. 

삼국시대에 들어온 불교가 국가가 장려하고 민중이 성원한 덕에 수많은 유물과 유적을 남기고 찬란히 꽃피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가정과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고 하지만, 불교나 유교가 국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학의 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 뿌리는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외래문화로 혼탁해지기 전의 순수한 우리 민족문화를 찾기 위해 탐구해간 길에서 만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단군왕검의 고조선과 그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우리 한민족 고유의 선도문화였다. 

이 시대야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사상과 철학이 완성과 상생의 문화로 찬란히 꽃핀 한민족 최고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선도가 개인의 완성을 위한 수련법으로서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국가를 유지해주는 사회 규범으로 기능했다. 

이에 대해서는 신라의 석학이었으며 천부경을 발견하고 해독하여 우리에게 전한 고운 최치원 선생 또한 일찍이 밝힌 바가 있다. 아래에 난랑비 서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祥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일러 풍류도라 한다. 이 가르침의 연원은 선사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불선 3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이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

선생은 이 비문에서 유불선 3교는 인류 시원의 이 가르침(풍류도)에서부터 갈라져 나가 제2의 고등종교(유,불, 선)로 발전한 것이며, 유, 불, 선의 사상을 포괄하고 그 모체가 된 철학이 우리 한민족에게 예로부터 있었다는 것이 명확하게 적어서 전했던 것이다. 

여기서 선사는 선가仙家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역사서로 이해하기도 하고, 18대 한웅천황을 배출한 신시배달국의 역사서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해석이 결국 한가지인 것이, 우리 한민족의 상대 문화가 바로 선도문화였기 때문이다. 최치원 선생이 말한 풍류도가 바로 신선도이다. 

선도문화의 진정한 뿌리는 우리 한민족에게 있다. 우리나라의 선도는 수련을 통해 자기 실체를 깨닫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국조단군이 나라를 열며 건국이념으로 세운 뜻이 홍익인간 이화세계였던 이유는 우리 한민족 고유의 선도문화였기 때문이다. 

단군시대의 홍익인간 이화세계는 건국이념인 동시에 정치, 종교, 문화, 생활의 철학이었는데, 그 시대의 철학은 그 시대의 문화에서 파생된다. 개인의 깨달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평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는 성통공완의 정신이 선도문화의 핵심이다. 이것을 천화사상이라고 한다. 이 천화사상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은 신선도가 아니다. 

사람이 목숨을 다한 것을 표현하는 우리말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로 세상에 태어나 득은커녕 주위 사람들에게 해악만 끼쳤을 때 우리는 '뒈졌다'라고 표현한다. 이 말도 원래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되어지다'에서 나온 말이므로 속된 표현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큰 해악도 없이 득도 없이 목숨을 다한 사람은 '죽었다', 주위사람이 크게 애통해할 만큼 덕을 베풀고 살았다면 '돌아가셨다', 임금이 죽었을 때는 '붕어하셨다'라고 표현했다. 마지막 한 가지 표현이 바로 '천화하셨다'이다. 영적으로 완성되어 홍익인간의 삶을 살아다 생을 다하는 사람만이 '천화하셨다'라고 표현되었다. 

우리의 선도는 수도해서 어느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중요시하여 이 세상에 얼마만큼 유익한 일을 했는가를 중요시했다. 저울로 깨달음의 무게를 달 수 있겠는가? 그것이 혼자만의 착각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무엇으로 검증할 수 있겠는가? 오직 그 깨달음을 세상에 전해서 얼마나 인간을, 세상을 이롭게 했는가만이 깨달음을 검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신선도를 전하는 경전이 천부경이다. 

천부경과 천지인사상,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을 정수로 가진 국학이 바로 우리의 얼이다. 얼을 가진 사람이 인생관이 있는 사람이요, 얼을 가진 국민은 국가관을 가진 국민이라 할 수 있다. 얼이 회복되어야 진정한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다. 국학 속에 얼이 있다. 국학 속에 정신을 찾고, 그 정신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개인과 국가와 민족의 큰 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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