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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제3회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홍산문화 한, 중 국제학술회의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8-11-06 조회수 : 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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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홍산문화 한, 중 국제학술회의

올해로 3회째를 맞는 한중국제학술회의’가 8월 22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역사는 과거만의 사실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고 또한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최근 독도와 이어도에서 절실하게 실감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고고학과 상고사학 전문가와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그 어느 때보다 성대했다. 

중국 요녕사범대학 역사학원 전광림(田廣林)원장은 ‘사(祀)로부터 예(禮)에 이르기까지의 동북 고대 玉과 예제(禮制)문명’을 발표하며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고 임금과 스승을 존중하는 것은 상(商) 주(周)시기 국가정치생활의 기본이었고 최고의 윤리원칙이었다며 그 근본원인은 국가가 탄생되기 이전의 옥기(玉器)를 기본 틀로 하는 신사 제사(神事 祭祀)체계에 뿌리를 둔다고 했다. 

따라서 중국전통문화인 옥문화와 예문화의 민족특성이 근래 요서(遼西), 요동(遼東), 길림(吉林), 흑룡강(黑龍江)의 4개 지역에 분포한 선사시대 유적지의 옥기 발견을 예로 들며 홍산문화 전승이라고 보며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와 대소 능하(凌河)유역의 내몽골 동남부와 요녕성 서부지역에서 출토된 옥기가 중국 내에서 가장 오래일 뿐만 아니라 발전체계의 연속성과 기능상의 전승(傳承)성도 갖고 있다.

홍륭와 문화의 건축물과 무덤에서 발굴한 옥기 76건, 부신사해(阜新査海)의 어린아이 무덤 등에서 옥결, 옥비, 옥관, 玉錛, 玉斧(옥도끼))등 30여건, 석본포능(錫本包楞)유적의 장방형 무덤과, 내몽골 적봉 남태자(赤峰 南台子)유적외 성자산(城子山) 요녕성의 동산취(東山嘴)의 제사터 등 수많은 유적지를 거론하며 8000-6000년 전의 홍륭와문화, 조보구(趙寶溝)문화와 홍산 초기문화 옥기가 중국 옥기의 초기 발전단계를 대표한다. 

 홍산문화 중, 후기(6000-5000년 전)는 동북지역에서 번성했으며 종류도 많아지고 각종 玉龍(용), 玉鳥(새), 玉龜(거북), 玉魚(물고기), 玉蟬(매미) 등의 모형은 신께 제사지내는 예기(禮器)였다. 
“禮”의 상고문자 본래의 뜻도 그릇에 옥을 담아 신령(神靈)에게 봉헌한다는 뜻으로 예물과 신령의 마력(魔力)을 바꾸려한 것이다. 

본래 신이 없었으나 인류가 자신을 모형으로 창조하고 일정한 의식을 통해 예물을 주고 복을 내려 달라고 했으며 이러한 행위가 禮로써 일만 년 이래의 중국역사를 살펴보건대 내부모순해결과 외래침입에 저항하며 신권(神權), 왕권(王權)과 민권(民權)의 3단계로 발전했다.  
이로써 중국고대의 기본 정치제도는 제신예의(祭神禮儀)로 천지와 조상에게 제사 지내며 왕권을 존숭하는 것이 중심이고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왕권을 신화하는 두 받침대로서 이런 제사문화를 마땅히 최고의 철학이고 최고의 논리이며 동시에 최대의 정치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대련대학 한국학연구원 설지강(薛志强)교수는 ‘홍산문화의 연원에 대한 개술-흥륭와문화를 중심으로’에서 홍산문화보다 2~3천년이 더 앞선 서요하( 西遼河)유역 흥륭와문화를 집중 연구한 결과, 인류사회 초기단계의 무속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제사전통을 갖고 있는 중국이 무속이념과 일맥상통함을 생태적 환경과 자원, 사회조직, 원시무속, 옥과 용, 한자 등 다방면으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홍산 諸문화 장례풍속의 변화 발전 및 中原문화에 대한 영향’을 발표한 중국 내몽고자치구 고고학연구소 탑랍 소장은 약 8000년 전 내몽골 동부지역의 흥륭와취락 집터유적과 사해취락 집터유적의 거실무덤 형태와 부장품을 살펴본바 당시 특수한 자는 거실 안에 매장되고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그 집에 살며 죽은 자를 숭배하고 제사 지내는 무속이나 종교색채를 지닌 특수한 장례풍속이 있었다며 홍산문화 초기단계에 이미 신분과 지위가 형성된 사회라고 했다. 

특히 흥륭와의 M118 유적의 부장품에서 암수 2마리의 돼지 뼈와 토기, 석기, 골기, 옥기외 조개기물과 압제 석엽(壓制 石葉)등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한 쌍의 옥결(玉玦)을 차고 머리위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돌도끼는 권력을 상징하고 오른손을 덮고 있는 직경 10mm의 원형 조개장식품은 법기(法器)로 보고 715개나 되는 석엽은 사회직위가 존귀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위도 남들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그는 흥륭와취락의 수령인물로 신권(神權)과 정권을 한 몸에 지닌 부락의 존장(酋長) 혹은 대무(大巫)라고 판단하여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에 이미 사회계층 및 사회분화가 진행되었다고 본다.

사해집터유적의 거실무덤은 어린이였다. 목과 가슴, 복부에 대, 중, 소 3쌍의 옥비(玉匕)가 잇어 권력가의 자식으로 추정하며 같은 시기의 중원지역에서는 없고 앙소문화 후기에서야 보인다. 

거주와 제사라는 이중기능에서 발전하여 白長汗유적에서 보듯 산봉우리에 단을 설치하고 무덤을 쓴 후 돌로 봉하는 적석총이 출현하고 장례형식이 발전해서 홍산 우하량(牛河梁)의 단(壇), 묘(廟), 총(冢)이 되었으므로 초기의 거실무덤이 제일 원시적이고 제일 간단한 “종묘(宗廟)”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제도화 된 장례풍속, 장례제도와 신비롭고 장중한 옥기문화인 흥륭와문화가 중원 남북문화와는 2000여년의 차이가 나지만 홍산문화가 중원문화에 끼친 영향은 확실하고 홍산문화의 적석총과 일정한 전승(傳承)관계가 있다고 했다.

충남대학교 권태원 명예교수는 서요하강(시라므른강)과 라오허강(老哈河)일대에 형성된 홍산문화권은 중국문화와도 관계가 있겠지만 고인돌과 적석석관묘 등 청동기문화권이 형성된 고조선문화권과도 동일문화권에 포함된다며 선사시대는 각 민족의 강역이 분명치 않다 하더라도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 지명학과 언어 강역을 통하여 그 분포를 살필 수 있다며 서기전 7세기 때의 관자(管子-管仲지음)를 비롯한 각종 고서나 현 부사년(傳斯年)예일부(芮逸夫), 손진기(孫進己), 시라도리(白鳥庫吉), 아유가이(鮎貝房之進), S.M.Shirokogoroff, 김상기(金庠基), 이용범(李龍範)과 권태원(權兌遠)등 중국 측 고전사료와 러시아, 서구, 일본의 문화인류학계와 여러 고고・문물학계의 연구 성과를 예로 들었다.

우하량유적은 객좌동산취(喀左東山嘴)유적과 같이 적석총 묘역의 중심부에서 동・서・북 세 방향의 돌담장(石壘墻)을 동일문화권으로 보고 요동 강상묘(崗上墓)역시 막돌로 방사형 돌담장을 조성하고 묘지 둘레 역시 원형담장을 쌓고 있다. 
이는 후일 한반도 남쪽 산청군 화계리에 전하는 금관가야 말왕으로 전하는 구형왕(仇衡王)의 무덤과 동일한 구조다. 
이는 선사시대 환호부락(環濠部落)에서 외부공세를 막는 기본방어 개념에서 발원한 것이며 후일 궁성을 비롯하여 묘역보호를 위해 외부에 설정한 해자(垓字) 개념에서 조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말의 발원이 원시부여어(原始夫餘語-부여, 고구려,백제) 혹은 예맥어(濊貊語)와 원시한어(原始韓語-신라,삼한)가 있다며 우리 옛말이 알타이어계와 친근 관계를 연구하고 북방에 건국한 몽골, 터어키등 알타이어계 몇 개의 족단 문화를 통해 중국동북지방, 만주대평원에 발원해서 태양을 숭배하는 큰 규모의 석총문화권을 형성한 고대한민족은 천신의 왕국 고조선 및 부여국을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및 고대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일계 민족에 의해 동일한 문화권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순록유목(馴鹿遊牧)과 홍산문화 - 치우(蚩尤) · 조선(朝鮮) · 고리(槁離)의 기원(起源)문제를 발표한 세종대학교 주채혁 교수는 부족의 이동 루트를 따라 답사한 결과를 토대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베이징은 한랭 고원 건조지대인 몽골스텝에서부터 수천 년 북방유라시아 목·농 복합형 유목제국이 있던 곳이라고 했다. 
습기가 많을수록 잘 자라는 순록치기들은 서시베리아에서 동시베리아 쪽으로, 남러시아 초원에서 대서양과 북극해 쪽으로 각각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한 갈래가 朝鮮 겨레라고 보고 몽골리안 루트와 일치할 것으로 보이는 민족이동루트 Lichen Road(라이켄 로드) 선(鮮)의 선로(蘚路), 이끼의 길을 답사했다.

순록은 이끼가 주식이라 북유라시아 수림툰드라나 툰드라지대에서 습기가 유지되는 만주 쪽 초원을 택했을 수밖에 없었다며 순록을 치며 레나강을 따라 남하해 제야강(현재의 嫩江아무르= 黑龍江) 상류에 이르고 순록의 먹이를 찾아 다시 치치하르를 거쳐 할빈과 소흥안령 끝자락에 자리 잡은 금국(金國)의 초기 수도, 아성(阿城)에 이르렀다. 
무릇 유목제국은 농경지대와 스텝의 접점 요지에 수도를 정하는 것이 통례인데 북경과 적봉이 그렇고 
셀죽 투르크제국의 수도 페르시아 고원의 바그다드도 그렇다. 따라서 아성이 적봉과 함께 선후로 고조선 태반기의 첫 수도였다고 비정했다. 
그러므로 하가점 상층문화를 청동기, 철기시대와 같은 시기로 볼 때 하가점 상층문화 이전의 홍산문화는 순록유목문화로 본다. 
수천 년의 장구한 순룩유목 제국사가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시킨, 근래 발굴된 스키타이 유물 순록의 황금뿔 탈이나 우리말을 그 증거로 들었다. 

‘朝鮮’의 뜻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아니다. 
‘朝’는 순록유목민을 가리키는 몽골말 차아탕(Chaatang)의 ‘차아(Chaa)’나 축치족말 차오추(Chaochu)의 ‘차오(Chao)’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압록강만 넘으면 누구나 조선의 ‘朝’를 ‘아침 조’자 자오(Zhao) 로 읽지 않고 ‘찾을 조’자 차오(Chao) 로 읽는다. 
Chaochu는 ‘순록을 가진 자’이다.
鮮은 타이가와 草原의 스텝 및 시베리아 벌판으로 이어지는 한랭 고원 건조지대의 지형이다. 선비(鮮卑)와 조선(鮮朝)의 본고장이라 할 훌룬부이르 몽골스텝과 길림성 일대에서는 각각 이끼 선(蘚)으로 읽히고 있다. 
이는 ‘작은 동산 선(鮮)’자라고 해야 옳다. 

러시아의 슬라브인들도 ‘鮮’은 곧 小山의 ‘Sopka(Сопка)’라고 하고 大山은 ‘Gora(Гора: 현지 발음은 <가라>)’라고 구별해 불렀다. 따라서 鮮은 ‘鮮’이 아주 많은 스키토-시베리안의 현지어로 시베리아 원주민의 말, 곧 상고대 토박이 조선겨레말 이름이다. 
이 외에도 단군 출현 이전의 朝族(Chaatang)의 汗(Khan)은 순록치기의 본 명칭인 ‘축치’일 수 있는‘자오지(蚩尤)로 보는 등 현지 중국 학자들이 홍산문화권의 치우 세력이 燕山山脈에서 중원에 진격하는 과정에서 탁록대전이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제기해보는 사실은 각별히 주목해봐야 할 획기적인 시각이라며 고원지대를 무대로 하는 山獺 貊系 순록치기의 결합체 또는 鮮族과 朝族의 통합체 주도로 목·농을 아우르는 순록유목제국을 세웠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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