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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독립군 후손이자 우리의 핏줄-고려인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08-11-06 조회수 : 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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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우즈베키스탄 탐방기

==========독립군 후손이자 우리의 핏줄 - 고려인==========

연해주에 정착하여 살던 우리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 허허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연유는 일본과 전쟁을 치르던 러시아가 일본인들과 외모가 흡사하여 조선인을 구분하기 어렵고 간첩 등으로 활약하는 이들이 있다는 판단에 의해 1937년 20여 만 명의 조선인을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은 마소나 실어 나르는 화차에 짐짝처럼 실려 살을 에는 동토의 땅에 내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지 70주년이 된 작년에서야 눈물과 피로 고난을 견디고 일어선 고려인들이 그들의 과거 사실들을 기록하여 한권의 책으로 남겼다.

우즈베키스탄 동포들에게 한민족의 얼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도착한 우리 일행(필자외 안중근기념관 김호일관장, 한승용 일지아카데미운영이사)은 다음날 아침, 고려인문화협회(문화원 기능)를 방문했다. 옛 소련 미들급 국가대표로 고려인 영웅으로 불리는 신 블라디므르가 이곳의 회장이다. 귀중한 (책 이름) 책을 선물 받고 이 문화협회의 곳곳을 들러보며 고려인들의 처절하고 고생스럽던 70년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3일째, 우즈백의 고도(古都)이자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아무르티무르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에 도착했다. 티무르제국은 징기스칸제국에 이은 제2의 제국으로 6천년의 역사와 유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수많은 세계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 자체가 인류문화유적인 셈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티무르의 무덤과 고대 이슬람신학교, 고대 성벽 등을 관람하였지만 그 무엇보다 내 머리 속에 깊숙이 박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고대 궁전의 아프라시압 벽화다. 
그 벽화에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의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이국 땅 벽화에서 고구려인을 보는 순간, 북받치듯이 뭉클함이 끓어오르는 그 무엇은 한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그리움의 감정, 바로 한일 것이다. 
바로 그 한을 경험했던 것이다. 

벽화를 보면, 이곳이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고 고구려의 강력한 외교력과 경제활동이 눈에 보인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사마르칸트에 가려면 비행기로 8시간, 기차로 5시간을 꼬박 달려가야 하는 거리인데 ‘고구려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차림과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이곳을 방문했을까’ 경외감마저 든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비단만 전해진 길이 아니라 도자기, 제지술, 인쇄술이 전래된 길이며 또 종교가 전래되었고 칭기즈칸에게는 전쟁을 위한 길이었으며, 지중해에서 태평양까지 연결된 인류 문명교류의 큰 길이다. 

이렇듯 고구려와는 먼 거리에 있는 로마까지 우리 선조들이 실크로드를 통하여 교역하고 왕래했음을 알 수 있고 실크로드 곳곳에 고구려의 자취가 어려 있음에 자못 뿌듯해졌다. 

우즈백에는 러시아 언어와 우즈베키스탄 말이 사용되지만 시장처럼 일반인들이 활동하는 곳에서는 러시아말이 통하지 않는다. 영어도 호텔이나 젊은 대학생들과 약간 통할 뿐, 타쉬겐트(우즈백 수도) 이외의 도시에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마르칸트, 부하라에서 관광할 때 우리는 영어통역 안내인에게 설명을 들어야 했다. 

‘구일륙’이란 재래시장에는 고려인들이 많아 우리말이 약간 통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두부와 콩나물, 떡, 고구마, 느타리버섯, 청포묵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많고 대부분 고려인들이 팔고 있었다.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홀레보" 빵은 달지 않고 맛있는데 주식이라고 한다. 
가격도 아주 싸서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20-30원이면 살 수 있다. 
시장에서 보자기에 놓고 파는 모습이 다소 불결해 보이긴 하지만 먹는다고 크게 탈이 나지는 않는다.

4일째 날에, 우리는 타쉬켄트에서 17년 동안 한글을 가르치는 허선행님이 교장으로 있는 세종한글학교를 방문했다. 
우리는 비싼 댓가(화물료)를 지불하고 가져 간, 영문 한국사와 고구려관련 서적과 기념품을 교장에게 전달하고 김호일 단장님이 나이 많은 고려인 1세대와 2세대에게 [한국 근대사와 고려인 이주사]를,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한승용 강사가 각각 1시간 30여 분씩 강연했다.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참가자들은 임진왜란과 독립운동 등 주로 일본과 관련된 역사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했다. 이주 고려인의 역사가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주름이 쭈글쭈글한 1세대와 2세대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시골 노인들과 형태는 다를 게 없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는 듯 보인다. 
먼먼 타국 땅에서 70년을 살아서일 것이라고 애써 변명거리를 연상하지만 심란한 마음은 감출 길 없다. 

우즈베키스탄 방문 5일째부터 7일째까지가 우리방문단이 이곳에 온 주목적을 발휘하는 기간이다. 
한국교육원에서 150명에 달하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츠스탄의 한국어 관련 교수와 선생들에게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고 동북아 역사 갈등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였다.

“여러분들은 우즈베키스탄 국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모국은 대한민국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서 모국이 역사 갈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의심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핏줄은 어찌할 수 없는 고려인이고 조선인이며 한국인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고려인으로서, 잘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훌륭하게 한 몫을 하는 국민이 되십시오. 
다만 타고난 혈맥을 생각하셔서 주위 분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역사 갈등문제가 나올 때 당당하게 발언하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의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먼 타국 땅까지 왔듯이, 그 후손인 여러분들도 고국을 잊지 마십시오. 
이 부탁을 드리러 같은 후손인 제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마지막 강연을 맡았던 필자는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마음이 착잡했지만 차마, 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터, 목이 메어 가까스로 마무리했다. 

그들이 비록 한국어에 관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들의 한국어 실력은 우리나라 초등생 수준이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를 하느라 애는 먹었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하여 보람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몇 시간 전, 우즈백 현지에서 활동하는 고려인들과 대사관 직원 그리고 한인회 회장단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다 같이 아리랑을 부르고 동포애를 다지며 가까운 훗날 다시 만나서 좋은 일을 논의할 것을 기약하고 일정을 마쳤다.

이번 우즈백 방문 일정이 힘들고 바빴지만 그곳의 많은 사람을 만난 덕에 8월27일부터 서울에서 실시되는 ‘제1회 동북아 대학생 역사체험 발표대회’에 세종한글학교 허선행 교장 이하 5명의 대학생이 출전하기로 했다. 

고려인들의 역사의식 부재에 선조들에게 죄지은 듯 했고 그들의 열의에 가슴 뭉클했다. 
그들에게 역사교육을 심어주는 일은 관민이 함께 추진해야 할 대 사업임을 새삼 느꼈다. 고려인 70만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가야할 귀중한 동포인 동시에 21세기를 사는 국제사회에서 우리에게 그들은 귀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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