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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국민강좌 - 국가철학 정립을 위한 <천부경적 사유>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1-06-28 조회수 :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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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철학 정립을 위한 <천부경>적 사유

        노중평

현 우리나라는 국가철학이 없다.
남북이 대치한 채로 60년이 넘은 우리의 국가적 당면과제는 남과 북의 대립해소와 공생을 위한 국가철학 정립이 최우선이다. 그동안 자유당정권은 부정선거, 군사정부는 독재, 민주당정부는 국가재정파탄, 김대중 노무현정부의 안보주의 등 역대정권은 국민에게 국가철학을 가르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희석시켜왔다. 이로 인해 오늘날 철학적 측면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주체철학을 갖고 있는 북한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으며 국가철학을 가질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

우리역사를 훑어보면 우리에게 철학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우리민족에게는 마고(麻姑)시대의 ‘부도(符都) 유토피아’란 국가철학이 있고 한인(桓因)시대에 용도(龍圖)문명이 있었다고 본다. 예로부터 풍이족이 용을 숭배하며 용도(龍圖)문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龍’자의 고어는 ‘巳’이며 巳는 한인 안파견의 巴에서 발생되어 그 형상을 상징한 문자가 龍圖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인시대에 삼소(三蘇)를 두었다고 하는데 천부경의 일석삼극체제로 인한 제도로 보이며 이때 이미 장손과 지손제도가 확립되었다. 장자는 제를 올리므로 성씨에 巳를, 차자는 벌레(충)을 썼다고 하니, 풍이문명시대는 지손족이 널리 퍼졌음도 알 수 있다.

한인시대를 이어 한웅시대의 태백문명은 현실정치를 반영하여 확립된 ‘제세이화의 도’란 철학이 있다. 우리는 제세이화가 단군시대철학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배달국시대에 도덕과 국가기강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단군시대는 사행(四行-금목수화)철학을 확립한 덕교문명과 ‘홍익의 도’가 실현되었다. 이렇게 각 시대를 관통하는 국가철학의 바탕은 바로 천부경의 선도문화다. 한인시대는 천부경을 용도문자로 기록했을 것이고 한웅시대는 녹도문자, 단군시대는 가림토문자로 전해졌다고 본다.

비록 삼국시대부터 불교와 유교가 이 나라 땅을 지배하였지만 이맥의 태백일사에 있는 ‘소도경전본훈(蘇塗經塼本訓)’에 의하면 조선 중종조까지 조의선인(皁衣仙人)이 국선의 소도를 관리하여 천부경의 맥을 이어왔다. 이후, 조의들이 천부경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선도의 자연철학이 공리공론을 일삼는 유학의 인문철학에 배치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문화정신을 해혹복본하려면 한자를 연구하여 글자에 반영되어 있는 역사를 끄집어내야 한다. 후한시대의 설문자전 편찬이전의 한자는 분명히 우리 문자이고 중국사서는 왜곡이 심하여 믿을 바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蘇塗經塼本訓’이란 문자에서도 우리는 역사를 유추할 수 있다.

장자(莊子)는 ‘巳化而魚’라 했는데 이는 뱀이 물고기로 변한 것이 아니라 뱀을 아이콘으로 쓴 족속의 한 지파가 물고기를 아이콘으로 썼다는 의미이다. 뱀은 풍이족(風夷族)이니 ‘蘇’씨도 풍이족의 후예로써 벼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진주 소씨 족보에 의하면 서기전 2392년 소풍(蘇豊)이 소성(蘇城)의 하백에 봉해졌으며 기장농사를 지었고 이 기장은 제상에 올려졌다.‘豊’자의 제기 두(豆)에서 보듯 제를 올렸다. 塗자 역시 황하를 관리한 여곤이 오행의 土로써 치수했다는 의미로 본다. 그리고 제를 지낼 때 죽간에 기록한 천부경을 낭송했을 것이다.
지금의 홍산문화를 한국시대 유물로 추론하는 것은 유물이 옥으로 된 용 문화이며 전형적인 ‘巴’의 변형문자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조의집단이 <천부경>을 계승하여 왔다.

단군조선 백성은 2세 부루단군의 명으로 청의를 입고 변발辮髮을 해왔는데, 제사를 지내고 천부경을 가르치는 조의집단은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상투를 틀고 백의를 입었기 때문에 쓴 말이 조의선인이다. 소도에서 칠성님께 제사지내기 위해 입는 흰 장삼이 皁衣다. ‘皁’는 ‘皂’로도 쓰는데 칠성이 들어있으며 지금은 칠성거리 굿을 하는 무당의 복장에 남아 있다.

천부경이 전해진 경로를 따지면 우리역사에서 민족의 이동경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삼국 이전의 삼한 역사를 잘 모른다. 우리역사에서 신라를 세운 소벌도리를 빼면 삼국이 성립하지 않음에도 교과서에 소벌도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바로 삼한시대가 성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의 삼조선을 천부경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일석삼극의 분화론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천부경의 숫자는 논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1, 3, 9, 27, 81에서 1은 道 3은 方 9는 州 27은 部 8은 家로써 三蘇는 방이고 9주가 있고 치우의 장수가 81명인 것도 당시 천부경이 있었다는 증거다.
전 인류는 집단무의식적으로 조상으로부터 받는 사유체계가 있다. 중국은 2와 8을 좋아하는데 지나의 특성이다. 우리의 두드러진 사유체계는 단연 하느님과 삼신, 칠성님일 것이다.

조선이 망하고 삼한에 있던 牟國이 제나라에 망하고 추국(鄒國) 역시 사라진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시호가 추모왕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구려가 卒本에 세워졌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백제도 우리는 온조의 한성백제를 운운하지만 중국의 양직공도(梁職貢圖)에서 전하는 백제는 래이족으로 마한이라 했다. 백제를 세운 소서노의 아버지는 하백(河伯) 연타발이다. 河伯은 황하일대를 지배하는 관리다. 민족분쟁이 일어났을 때 민족 간의 중재를 맡고 진압해 주며 질서를 세우는 일로, 요즘의 유엔군사령관과 비슷한 직책일 것이다. 백제가 한반도로 넘어올 때 연타발의 근거지는 연주였고 백제가 제수를 건너왔다 했는데, 이러한 역사 속의 지명들이 산동반도에 모두 들어있다.
그리고 한반도로 건너와서 세운 나라가 우체모탁국인데 마한 53국 중 하나이다. 진수가 쓴 <삼국지>에 오늘의 부천(富川)을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이라 했는데, 牟는 조선시대 산동반도에 있던 牟國을 의미하고 涿은 탁록涿鹿으로 치우천왕과 황제의 격전지이다. 따라서 우체모탁국은 산동반도의 태산 동쪽에 있었던 모국 출신들이 세운 나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모르는 오늘날 경기도 부천시는 優體牟涿國을 쉴 休, 더러울 濁으로 바꿔 優休牟濁國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상고사 연구자들은 지명 빼고 무당이 하는 굿 문화와 천문도 빼고 오로지 중국이 남긴 역사서만을 갖고 우리상고사를 추적하는데, 그것은 중국에게 천년만년 놀아날 수밖에 없다.

조선 멸망 후에 한반도에 처음 진출해서 소도를 세운 곳이 인천 소래(蘇萊)라고 생각한다. 소래에서 부천으로 오다보면 산이 3개가 있다. 소래산과 성주산, 할미산(老古山)이다. 5백여 년 전 명종 때 남사고선생은 이 산을 삼신산이라 했다. 현재의 직위로 말하자면 기상청의 국가공무원정도 되는 사람이 느닷없이 삼신산이라 한 것이다.
그가 예언하기를 성주산에서 소울음소리가 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 다른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가이지 예언가가 아니다. 소울음소리를 한자로 쓰면 牟다. 모국이 울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소 울음을 지진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근래 진도 3의 지진이 있었다. 
더 기막힌 것은 진원지가 소래산과 성주산 사이의 와우(누워 있는 소)고개 바로 밑에 마을 대야(大也)동이었다. 최초의 소도가 있던 곳 마고신이 깃든 곳이 아닐까?

필자는 바로 소래 소씨가 천부경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도를 관리했던 소씨 성을 가진 대표자가 소벌도리다. 우체모탁국에서 경주로 갔을 것이다. 소벌도리가 박혁거세를 세워 신라를 세웠고 6부 촌장의 성씨 소, 최, 이, 설, 손, 등이 나오는데 신라 말 최치원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사실 최치원의 조상은 소씨 기성이 나온다.

국가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국가정체성 확립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정체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이상한 국가가 되어 있다. 

일석삼극 수리체계에서 사유체계로 의미전환을 하려면 의미나 이미지를 대입시켜줘야 한다. 의미의 대입이 삼신이고 이미지 대입이 천부삼인이다. 삼극 삼태극 음양조화 삼판양승 등이 천부경 사유체계에서 필연적인 의미일 것이다. 삼국시대 가락국을 빼 버린 일도 우리민족의 집단무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천부경의 이미지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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