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게시판 >
연변조선족의 시조 ‘웅녀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3편]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3-07-15 조회수 : 1536
파일첨부 :

연변조선족의 시조 ‘웅녀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역사속 한중 화해 협력 사례지역 답사기 [3편] 

   
승인 2013.07.14 11:16:40 우대석 사무처장 | kaebin@ikoreanspirit.com


답사팀은 길림성 왕청현 십리평 등 북로군정서 옛 영지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잠시 시간을 냈다. 왕청현 만천성 국가산림공원 내에 조선족 시조모로 세운 웅녀상을 보기 위해서다.

연길에서 약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이곳의 정식 이름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 국가산림공원의 백의신녀 신녀봉공원>이다.

   
가야하라는 강의 댐에 의해서 생긴 천성호 안에 삼면으로 둘러싸인 용구도라는 섬 안에 웅녀상을 비롯하여 곰, 호랑이 마늘 쑥 등을 곳곳에 조성하여 마치 단군설화 테마공원처럼 느껴졌다.

이 웅녀상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천현에서 조선족의 정체성을 위하여 단군설화를 주제로 조성한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웅녀상과 관련하여 국내 몇몇 학자들이 또 다른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때 많은 논란이 되었던 곳이다.

동북공정의 하나 VS 조선족 정체성의 상징

동북공정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단군설화가 테마인 공원 안에 정작 단군상, 환웅상 등이 없다는 점, 안내표지판 등을 보면 웅녀의 후손인 조선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웅녀상을 세운 것은 동북공정이 아니라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당국과 조선동포 중에서 조국을 아끼는 영향력있는 분들이 힘을 합쳐서 조선족의 자긍심 고취를 위하여 공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원의 조성목적은 당연히 조선족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세워주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답사팀 구성원 간에도 약간의 의견차이를 보였다. 임찬경 박사(연변대 역사학과)는 동북공정의 하나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다른 사람들은 별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과연 임 박사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서 만천성풍경구의 변천사를 한번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만천성풍경구는 1995년 중국정부로부터 성급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다. 2001년에는 국가관광국으로부터 AA급 관광구로 비준받았다. 이어서 2004년에는 국가삼림국으로부터 국가삼림공원으로 비준받았다. 곧이어 2005년 6월 25일에는 드디어 <만천성국가산림공원 제막식>을 치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눈에 띈다. 웅녀상이 조성된 만천성풍경구는 단순히 연변조선족자치주 길림성 왕청현 지방자치정부가 단독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조선족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심어주려는 뜻으로 단군설화를 테마로 한 웅녀공원 조성을 시작했을 수도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앙정부가 관여하는 대규모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앙정부의 정책이 반영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의 중앙정부는, 웅녀상이 세워지기 전 왕청현 시내에 있던 웅녀상을 철거했다고 한다. 그러면 왜 18미터의 520톤이나 되는 대규모 웅녀상을 조성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관광할 공공장소에 조선족의 시조인 웅녀상을 대규모로 조성하는 것을 허가한 중국의 중앙정부 의도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단군설화의 핵심인물이 단군인데 정작 단군상은 공원에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이 대해서 일부 국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선족 소수민족을 끌어안으면서 그들의 시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웅녀는 당시에 중국 북방의 토착민이었고 환웅은 외지로부터 새로이 유입된 부족이었다. 따라서 웅녀는 중국 북방의 토착민이므로 웅녀와 그 후손인 조선족은 중국민족이다.”

   
중국은 조선족의 시조인 웅녀를 인정해 주면서 결국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라는 논리로 웅녀를 끌어안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 증거의 하나가 웅녀공원을 설명하는 안내표지판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안내표지판에 맨 끝 부분에 중국조선족(中國朝鮮族)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필자의 눈에는 <중국조선족>이라는 다섯 글자가 유독 크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동북공정에 민감함에 생긴 필자의 피해의식일까?

중국은 조선족을 중국조선족이라고 부른다. 고구려도 그냥 고구려가 아니라 중국고구려로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의 동북동정 논리를 파악할 수 있다. 웅녀가 조선족의 시조이지만, 그 웅녀가 중국인이라는 논리다.

우리는 용두도 수천 개의 계단을 올라가 웅녀상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 중간에 단군설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하여 머물렀다는 굴을 상징하는 터널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실 단군설화는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아니라 곰족과 호족의 여인이 수행을 통해서 본성을 밝혀 홍익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수행에 성공한 곰족(웅족)이 천손족인 환웅과 결혼(부족간 연합체)하여 1대 단군왕검을 잉태한다는 이야기다.

단군왕검은 우리가 잘 아는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이다. 이 단군설화는 많은 은유와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천손족과 지손족간의 결합체 의해서 탄생하였고 고조선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위대한 철학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단군설화가 신화로 왜곡되어 동물로서 곰과 호랑이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멀리 중국 북만주 연변조선족자치주 단군공원에서도 곰과 호랑이,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살았다는 굴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수천 개의 계단을 지나 웅녀상이 조성된 정상에 섰다. 웅녀상은 왼손에 마늘을 들고 오른손에 쑥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만천성 인근에서는 볼 수 없는 질 좋은 하얀 대리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조각솜씨는 매우 세련된 것으로 보였다. 정성을 많이 들인 것 같은데 관리가 안 되어서 주변에는 풀이 무성하고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국립공원 답지 않게 관리는 매우 허술하였다. 뿌듯한 마음보다 무언가 아쉽고 허전하고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정리=윤한주 기자)

4편에서 계속됩니다.

< 저작권자 © 코리안스피릿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전글 고조선 제후국, 읍루의 천제단을 만나다! [4편]
다음글 역사 속 한중 화해 협력 사례지역 답사기 [2편]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