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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고구려비(集安高句麗碑) 조사 보고서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3-04-12 조회수 :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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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고구려비(集安高句麗碑) 조사 보고서 관련하여 
󰡔集安高句麗碑󰡕(集安市博物館 編著, 吉林大學出版社, 2013.1)

2012년 7월 29일 중국 지안시 馬線鄕 馬線村에서는 고구려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발견되었다. <지안고구려비>로 명명된 비석이 그것인데, 이 자료의 가치는 고구려인이 남긴 생생한 기록물 하나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 머물지 않는다. 여기에 담긴 주요 내용이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과 그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광개토왕릉비>에 王陵의 守墓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새로 발견된 비는 우리가 알고 있던 수묘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면서 <광개토왕릉비> 기록에는 보이질 않던 사실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실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비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올해 1월 중순이었다. 비문에서 확인이 가능한 글자가 140자이며 주요 내용은 수묘제에 관한 것으로 광개토왕이 세운 비로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비문의 탁본을 찍은 사진 1장과 발견 장소를 알려주는 지도 1장이 자료로 보도되었지만, 비 발견 소식에 흥분한 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정보였다. 비문에서 140자를 확인했다는데 다른 글자는 없는지, 혹은 읽어냈다는 140자는 확실한 것인지, 정말 고구려 당시의 비라고 볼 수 있을지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등등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궁금증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중국 측의 공식 보고서를 기다려야 하였다.
이제 소개하려는 󰡔지안고구려비󰡕가 바로 기다려왔던 조사 보고서이다. 지난 월요일(4월 8일)에 발간되었다고 한다. 보고서는 214쪽의 분량으로 ‘集安高句麗碑出土紀’‧‘集安高句麗碑調査’‧‘集安高句麗碑釋文’‧‘集安高句麗碑文書體比較’‧‘集安高句麗碑的價値’‧‘集安高句麗碑技術保護報告’‧‘集安高句麗碑日誌’의 본문 8장과 4편의 부록을 담고 있다. 내용별로 보면 여러 벌의 탁본 소개·발견 상황 기술·현장 조사의 내용·판독문 등을 살필 수 있다. 탁본은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면서 작업자에 따라 나오는 결과물이 조금씩 다르다. 이 점에서 중국 연구진이 한 사람의 탁본자료가 아닌 여러 명에게 탁본을 제작케 하여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비문을 검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고서에는 이들 탁본 사진을 게재하고 있어 비교 검토도 가능하다.
이 보고서는 비의 발견 상황을 자세하게 기술하여, 이 비를 둘러싼 여러 가지 궁금증에 대해 답하고 있다. 비는 고구려 무덤군이 밀집되어 있는 곳의 하나인 마선구에서 이곳을 흐르는 하천 마선하의 서쪽 강기슭에서 발견되었다. 이 비가 사람들의 눈에 띠었던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 최근이어서 그 무렵 내린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비가 강기슭으로 밀려나왔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로써 비문의 상태에 대한 의문도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비는 윗부분의 오른쪽 귀퉁이가 깨져 나갔다. 이에 발견 장소의 부근을 조사해보았지만 깨져나간 부분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또한 비석은 화강암으로 부근의 채석장에 동일한 재질의 돌이 있음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보고서의 내용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판독문일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연구진은 새로 16자를 더하여 모두 156자를 읽어냈다. 이들 판독문 외에도 읽어낸 글자들이 더 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서는 참여 연구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여 보고서에는 수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연구진은 156자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글자에 대해서는 개인 의견으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체 글자 수는 218자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60여 자에 대해서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 두었던 것이다. 기존의 판독과 비교해보면 ‘靈祐護蔽((추모왕이 세운 고구려가)신령의 위호를 입어)’ ‘以此河流((수묘인 등이 사시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이 강가에서)’와 같이 해당 부분에 대해 좀 더 분명한 뜻을 파악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보고서는 비를 세운 이가 광개토왕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우선 비의 발견 장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왕릉이 千秋塚이라는 점이다. 이 비는 천추총과 관계가 있는데, 천추총은 광개토왕의 부왕 故國壤王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광개토왕릉비>는 왕이 선조 왕들을 위해 무덤에 비를 세웠다고 언급하였는데, 인근에 왕릉이 있으며 수묘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비가 바로 왕이 세웠다고 하는 비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본다. 이 비가 바로 광개토왕이 부왕을 위해 왕릉 곁에 세운 비라는 것이다.
비문에 따르면 수묘인의 주요한 임무로 ‘祭祀’가 언급되고 있다. 앞으로 왕릉의 제사와 수묘의 관계에 대한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왕릉 수묘는 ‘戊□’의 간지를 가진 어느 해에 반포된 ‘律(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역대 왕의 무덤에 비를 세우고 烟戶頭 20명의 이름을 기재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광개토왕릉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한편 이번 보고서의 발간으로 우리는 그동안 진행해온 비문 검토 작업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재단의 후원 아래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여 비문의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두 차례 열린 비문 판독회를 통해 중국 연구진이 판독한 글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새로운 글자를 판독해 냈던 것이다. 그 결과 읽어낸 글자가 170여 자였다. 보고서의 판독문과 비교하여 대개의 판독에 오류가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읽어낸 글자들을 신뢰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파악한 판독문을 자료로 삼아 활발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 내용에는 아쉬운 대목도 있다. 고구려인의 기원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고구려가 중국 고대종족의 하나인 高夷族이라고 한 단편적 기록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으며 고구려의 건국에 대해 玄菟郡의 관할 아래 정권을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고구려를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으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지안고구려비>가 보여준다. 비문의 서두에는 시조 鄒牟王이 하늘과 신령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가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사 이해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여전하다는 점은 사실 새롭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안고구려비>와 이번 보고서가 한중간 학술교류로 확대 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비의 조사와 보고서 제작에 참가한 중국학자들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여 비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는 등 그동안 중국학자들과의 소통이 중단되어 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이는 한중간 학술교류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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