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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뿌리내린 아랍인 많다는 기록 여럿
작성자 : 관리자(pooh@designardor.com) 작성일 : 2013-04-12 조회수 :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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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뿌리내린 아랍인 많다는 기록 여럿”실크로드 연구 권위자 정수일 한국문명연구소장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 제315호 | 20130324 입력 

경상북도가 야심찬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경주와 실크로드 사이의 두터운 관계’를 세계에 알리려는 것이다. 20일 오전 10시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는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 국가 사업화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21일에는 제1차 탐험대가 실크로드의 중요 지점인 중국의 시안(西安)을 향해 출발했다. 이 프로젝트의 기획에는 한국 최고의 실크로드 연구자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도 참여했다. 출발에 앞서 20일 정 소장을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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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는 뭔가. 
“통일신라와 실크로드의 관계를 제대로 밝혀내고 조명하자는 것이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단 기점(起點)이라는 것을 알리자는 것이다. 통일신라와 서역 사이에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이 왕성했지만 우리는 그 시절 한반도가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고 연관을 가졌는지 잘 모르고 있다. 실크로드는 동·서 소통의 길이자 우리의 뿌리가 있는 길이며, 이는 미래 한국의 역사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존중하고 연구해야 한다.”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쪽 기점이라는 주장이 좀 과한 것 아닌가.
“경주가 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중국 시안이 가장 중요한 도시인 것은 맞다. 그러나 경주가 동쪽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사실 비단길은 여러 갈래의 길로 나뉘어 있다. 3대 간선, 5대 지선이라는 망사형 경로다. 간선로의 동쪽 기점이자 종착점이 바로 ‘금빛 찬란했던 도성’인 금성, 즉 ‘경사스러운 고을’인 경주다. 지금껏 학문적으로 비단길에서 한반도가 제외돼 왔다. 중국에만 연구가 치우쳐 왔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각종 유물과 기록들을 보면 비단길은 한국과 서역·남미까지도 연관돼 있다는 게 밝혀졌다. 실크로드를 학문적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유물이나 기록 같은 역사적 증거들이 있나.
“일본 학자 요시미즈 쓰네오가 쓴 『로마문화의 왕국-신라』에서는 신라를 로마 문화의 왕국으로 묘사한다. 로마시대 때부터 서역과 신라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유물과 사료로 입증된다. 예를 들어 문관 토용(土甬)이나 무인(武人) 석상 등 지상 유물들을 보라. 모두 로마, 페르시아, 아랍과 관련된 유물이다. 신라 문화에서 보이는 연꽃·당초 문양 벽화나 고대 그리스 문양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이슬람권, 서구 유럽에도 지대한 학문적 영향을 미쳤던 이드리시(Abu ‘Abdallah al-Idrisi, 1100~1165년)가 1154년에 제작한 세계지도에는 신라가 중국의 해안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나라 중의 하나로 묘사돼 있다. 옛날부터 신라가 실크로드를 통해 알려져 있다는 기록이다. 통일신라의 승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도 역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신라가 아랍권과 직접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나.
“당연히 있다. 대부분 기록들이 신라를 이상향으로 보고 있다. 845년께 아랍 역사학자 이븐 쿠르다르비가 쓴 『왕국총람』에는 ‘중국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아홉 명의 왕이 다스리며 금이 많고 살기 좋은 아름다운 나라다. 그래서 신라에 가면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사는 우리 동족이 많다’는 기록이 나온다. 무슬림 지리학자 마크디시(al-Maqdisi)가 966년에 쓴 『창세와 역사서』에도 ‘중국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공기가 맑고 부(富)가 많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신라에 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썼다. 경주의 괘릉(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 앞에 서 있는 무인(武人) 석상이 신라에 온 아랍인을 보여준다.”

-보다 더 직접적인 교역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장식 보검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5∼6세기 때 로마에서 지중해를 통해 신라에 온 것이다. 한국에서만 발견된다. 또 아랍계, 서역계 유물도 많다. 대표적인 게 유향(乳香)과 안식향(安息香)을 비롯한 아랍산 향료, 신라 고분·사찰에서 출토되는 각종 유리 기구, 일반 서민들까지도 애용한 슬슬(瑟瑟·서역산 보석)이나 구슬 같은 기호품, 단검이나 토용이 있다. 통일신라도 서역으로 물건을 수출했다.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는 역사지리서 『제(諸)도로 및 제 왕국지』(845년)에서 비단, 검, 사향, 침향, 말안장, 초피, 도기, 범포(帆布), 육계(肉桂) 등 11개 품목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로 실크로드가 경주까지 이어졌나.
“이미 육로와 해로 모두에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육로를 입증한 사료는 연(燕)나라(BC 323~BC 222)에서 만들어진 화폐 명도전(明刀錢·사진)이다. 명도전은 고조선·고구려·발해에서 주로 발견되고 경주와 남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발굴되고 있다. 이는 육로를 통한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증거다. 이런 유물을 보면 비단길이 한반도까지 이른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실크로드 한반도 연장설’이 잘 알려지지 않았나.
“제대로 연구를 하고 이를 알리려는 노력이 없었다. 2000년 ‘이스탄불-경주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지도에다 비록 점선이지만 비단길을 표현해 전시했다. 경주에서부터 시안까지를 ‘실크로드’라고 홍보하고 있다. 요즘은 좀 더 당당하게 노력한다.”

-일본도 ‘실크로드 연장설’을 주장하는데 무슨 근거가 있나.
“많이 노력한다. 그러나 일본은 섬이다. 한반도를 통해 일본까지 갔겠지만 육로는 아니다. 일본은 우리처럼 매몰 유물, 지상 유물이 없다. 일본 나라(奈良)현 도다이지(東大寺)에 있는 왕실의 유물 창고에 가면 신라 유물이나 서역 유물들이 있다. 일본 측은 거기 있는 신라 유물도 서역과의 교류 증거라고 주장한다. 실크로드 지도도 따로 만들어 해로가 일본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한반도는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는 점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실크로드와 관련된 국가나 국민 및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며 문명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의 활성화에 세계사적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실크로드는 사막이나 바닷물에 묻혀버린 죽은 길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길이다. 길가의 풀 한 포기, 깨진 토기 한 조각, 빛 바랜 벽화 한 장, 무너진 집터 등…. 모든 것이 무언(無言)으로 어제를 알려주고 오늘을 깨우쳐 주며 내일을 바라보게 한다. 실크로드는 멀고도 가까이 우리 속에 있는 길이다. 고행과 낭만이 함께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뜻을 깊이 간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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